일본 차세대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와 그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원 안).
하지만 고이즈미 신지로가 유독 관심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다름 아니라 아베 정권의 입장과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다는 점이다. 비록 자민당에 몸을 담고 있지만, 그의 생각은 곳곳에서 아베 정권과 부딪친다. 특히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와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현재 일본은 야당이 지리멸렬한 탓에 이러한 신지로의 행보에 기대가 집중되고 있는 상황.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신지로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에겐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 아베 총리를 대적할 만한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 고이즈미 신지로 열풍을 따라가 본다.
“아베노믹스 체감하십니까? 아니요. 고개를 흔드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일본 야당 의원의 연설이 아니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의원인 고이즈미 신지로의 연설이다. 지난해 12월, 일본 총선에서 가장 눈에 띈 인물은 고이즈미 신지로였다. 1981년생. 이제 불과 33세인 신지로는 선거 유세 현장에서 아베 총리보다 훨씬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의 이름을 딴 ‘신지롤’이라는 케이크가 나왔을 정도. 신지로는 지역구인 가나가와 11구에서 총 16만 8953표를 얻어 ‘최다 득표자’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반면 아베 총리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장기 독주 체제를 굳히기는 했지만, 일본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주간포스트>는 “총선에서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기권했다”면서 “일본 국민들은 ‘아베 정치’에 대한 기대도, 열기도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2월 총선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52% 기록. 특히 20대 투표율은 30% 중반, 30대 투표율도 40%대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일본 시사주간지들이 일제히 “고이즈미 신지로가 머지않아 자민당 주류와 결별할 것”이라고 내다봐 눈길을 모은다. 먼저 <주간겐다이>는 “아베 정권의 복병은 고이즈미 신지로”라는 내용의 기사를 통해 “독주하던 아베 총리에게 앞으로 파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이유는 당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신지로가 ‘결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신지로는 지난해 2월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도 자민당 방침과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는 등 본디 순종적인 타입은 아니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원전 재가동 정책에 명확히 반대 입장을 밝히는가 하면, 아베노믹스에도 상당히 회의적이다.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난 총선거 이후엔 “이만큼 큰 의석을 받았는데 경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모두 자민당의 책임이다. 웃고 있을 때가 아니다”며 쓴 소리를 가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지로를 바라보는 자민당 내 시선이 썩 곱지만은 않은 터. 아베 총리 주변에서는 “신지로가 양날의 검과 같다”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압도적인 인기로 자민당의 강력한 ‘득표머신’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의 노출이 많아질수록 국민들의 기대는 아베 총리가 아닌 신지로에게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총선 결과 여당인 자민당의 압승으로 장기 독주 체제를 굳혔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더욱이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2012년 아베 총리와 ‘최대 라이벌’ 이시바 시게루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접전을 벌였을 당시, 신지로는 아베 총리가 아닌 이시바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따라서 <주간겐다이>는 “신지로가 아베 총리의 폭주에 제동을 걸기 위해 ‘반 아베’로 돌아설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면서 “만약 그럴 경우 아베 총리는 숙원인 헌법 개정을 앞두고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아직 정무관밖에 경험하지 않은 33세 젊은이가 무엇을 하든 아베 총리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진 못할 것이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평론가 아리마 하루미 씨는 “본격적으로 파벌을 만들 만큼 신지로가 동원력, 자금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현 시점에서는 어디까지나 ‘자민당의 신지로’에 불과하다”고 냉정히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신지로 역시 “아직 인생경험이 부족한 신출내기”라고 자신을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신지로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함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승부사로 불렸던 고이즈미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정권을 잡아 ‘장수 총리’로 기록된 인물. 한국에서는 재임기간 내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우익정치인으로 더 유명하다.
사실 아베 총리와 고이즈미 전 총리는 깊은 인연이 있다. 고이즈미가 일찌감치 아베 신조를 점찍어 그에게 관방부 장관, 자민당 간사장 등을 맡기며 2006년 최연소 총리 당선의 길을 닦아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에게 고이즈미는 정치적 은인이자 스승인 셈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고이즈미가 2005년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했던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을 아베 총리가 복당시키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안 고이즈미가 격노해 아베 정권의 방향성에 강한 불만을 갖게 됐다”는 의견이 많다.
지금도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인기가 높아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지로의 힘만으로 ‘궐기’가 어렵더라도 아버지가 뒷받침하면 적어도 50명 이상의 합류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도 이 때문에 나오고 있다. 또 하시모토 도루 일본유신회 대표나 민주당의 일부도 동조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보수성향의 잡지 <주간문춘>은 “고이즈미 신지로가 신당을 창당해 자민당까지 분열한다면 일본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예측대로 과연 고이즈미 부자가 신당을 결성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신지로가 자민당 중진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인물로 부상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고이즈미 신지로는 누구 1981년생.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자 자민당 중의원 의원(3선)이다. 형은 배우 고이즈미 고타로(36)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유학했고 전략문제연구소(CSIS) 비상근 연구원을 거쳐 아버지 고이즈미 전 총리의 비서로 일했다. 아버지가 은퇴한 후에는 지역구였던 가나가와 11구를 물려받아 2009년 8월 중의원에 당선됐다. 호소력 있는 연설과 깔끔한 외모 덕에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