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6월 2일 새벽 6시경. 서울 송파구 OO동에 사는 한종훈 씨(가명·40)는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어젯밤 마신 술로 인한 숙취 때문이었다. 무역업을 하는 한 씨는 전날 직장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시고 새벽 2시가 넘어 귀가했었다. 한 씨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안방 침대에는 아내가 없었다.
“여보, 나 물 좀 줘.”
한 씨는 침대에 누운 채로 아내를 불렀다. 하지만 아내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몇 번을 반복해서 불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심한 갈증을 느낀 한 씨는 물을 마시러 가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침대에서 내려와 몇 발자욱을 내딛던 한 씨는 발바닥에 닿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느끼곤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씨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방바닥 여기저기에 사람의 핏방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방 문지방 옆에서는 혈흔이 묻은 식도가 떨어져 있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18년 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충격을 안겨줬던 사건으로 혈액형 오판이 불러온 한 가정의 비극에 대한 얘기다.
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거실로 나온 한 씨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거실도 핏자국과 피묻은 족적들로 온통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집안엔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한 씨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아내 김주현 씨(가명·37)였다. 아내는 거실 한복판에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한 씨가 발견했을 때 그의 아내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이 씨는 가슴과 배 등 여러 곳이 흉기에 찔려 있었다. 피를 어찌나 많이 흘렸는지 사체 옆에는 온통 피가 흥건했다.”
‘혹시? 강도?’
한 씨는 다급히 아이들을 찾았다.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딸(12)의 방으로 황급히 들어간 한 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바닥에는 딸이 처참한 상태로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들(9)의 방문을 열어본 한 씨는 자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씨의 자녀들은 침대와 방바닥에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져 있었는데 배와 가슴, 옆구리 등에서 예리한 흉기에 찔린 흔적이 발견됐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지? 혹시 내가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씨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 귀가할 당시만 해도 집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한 씨는 애써 지난 새벽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분명 아무 일도 없었다. 술을 마시긴 했지만 정신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내가 비틀거리는 자신을 안방 침대에 눕히며 “애들은 자요. 조용히 주무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한 씨는 중구 OO동에 사는 매형집으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강남경찰서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수사팀은 처음에는 전형적인 강도살인 사건으로 추측했다. 피해자들이 모두 잠옷차림이었다는 사실로 보아 수사팀은 식구들이 잠을 자던 중 봉변을 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까지 잔혹하게 살해된 판국에 안방에서 혼자 자고 있던 한 씨만 무사한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장을 면밀히 살펴보던 수사팀은 이내 강도살인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된다. 집안에는 가구와 물품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으나 정작 금품을 찾기 위해 뒤진 흔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패물 등 다른 귀중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장 이상한 점은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대문잠금 상태도 정상이었고 창문이나 가스배관 등을 통해서 누군가가 침입했을 가능성도 없었다.”
아무리 치밀하게 범행을 했다할지라도 이처럼 범인이 현장에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세 명이나 소리소문없이 죽이고 귀신같이 사라졌다는 점은 수사팀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한 씨의 집 구조상 비명이 들릴 경우 안방에 있던 한 씨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한 씨 집 주방에서 사용하던 식도였다. 범인이 범행의 결정적인 단서인 식도를 수습하지도 않은 채 문지방에 내팽겨치고 갔다는 점도 의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내부인의 소행? 수사팀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수사팀은 외부인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동시에 양면수사를 진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인에 의한 범행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그리고 수사는 우선적으로 최초 발견자이자 신고자인 한 씨를 상대로 이뤄졌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한 씨의 진술에 따르면 ‘그날 새벽’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한 씨는 ‘사건 당일 새벽 술에 취해 귀가했는데 여느때처럼 아내가 직접 문을 열어줬다. 아내가 내 양복을 받아서 옷걸이에 걸었으며 양말까지 벗겨주고 방을 나갔다. 나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 잠을 깨보니 방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고 거실로 나가보니 이런 일이 벌어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 씨로서는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한 씨는 잠을 자는 동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술을 마시고 잠들었기로서니 누군가 침입한 기척을 느꼈거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으면 잠에서 깨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한 씨의 얘기였다. 몇 번의 집중 조사가 진행됐지만 한 씨에게서는 수상한 기미를 발견할 수 없었고 그의 진술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있었다.”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시체는 있는데 살인자는 없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희한한 사건은 언론에 연일 ‘3모자 아파트에서 피살’ ‘가장 제외한 일가족 의문의 피살’ ‘자고나니 죽어있더라’ 등의 제목으로 보도됐다.
한 씨가 사건 당일 귀가한 시각은 새벽 2시경으로 사체 발견 시각까지는 4시간의 공백이 있었다. 한 씨의 진술에 따르면 한 씨가 집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벨소리를 듣고 직접 문을 열어줬으며 일찍 등교해야 하는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자고 있었다. 사체 상태 등으로 볼 때도 피해자들이 변을 당한 것은 불과 3~4시간 전이었다.
한 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있기도 했지만 수사팀이 한 씨를 계속 의심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부검을 통해 나온 결과 때문이었다. 사건 발생 18일 만에 나온 부검결과는 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부검은 서울의대 법의학팀 이정빈 교수의 집도로 실시됐다. 6월 20일 부검팀은 아내 김 씨의 사체에서 타인이 찌른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놀라운 소견을 보내왔다. 다시 말해 아내 김 씨의 가슴과 배에 난 상흔들은 보통 자살할 때 나타나는 주저흔이라는 소견이었다. 보통 스스로 자기 몸을 찌를 때 나타나는 상처와 타인에게 찔렸을 때 나타나는 상처는 그 모양이나 깊이, 방향 등에서 차이가 있다. 부검팀은 아내 김 씨의 몸에 있는 상처를 스스로 찌른 것으로 판단한 것이었다. 또 거실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던 핏방울들은 아내 김 씨의 것이었으며 흉기에 남아있는 어렴풋한 지문과 아이들의 방바닥 등에 남아 있었던 발자국도 그녀의 것으로 판명됐다. 또 사망한 두 자녀의 사체에서는 반항흔이 발견됐는데 자녀들의 손에서 발견된 머리카락도 아내 김 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부검팀의 소견과 현장감식 결과를 짜맞추던 수사팀원들은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동안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수사팀은 그간의 모든 수사결과를 종합, 아내 김 씨가 자녀들을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제 남은 의문은 김 씨의 범행동기였다. 주변에 따르면 아내 김 씨는 성실한 가정주부로 자녀들의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한 씨 부부는 둘 다 고학력 소유자로 집안배경도 좋았고 경제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김 씨가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사건 발생 무렵의 상황을 토대로 추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한 씨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 가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부부 사이도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부터 극심한 불화를 겪게 됐다는 것이다. 이유는 얼마 전 나온 아들의 혈액형 때문이었다. 한 씨 부부의 혈액형은 둘 다 O형으로 자녀들의 혈액형도 당연히 O형이어야 하는데 딸의 혈액형은 O형으로 나온데 반해 아들의 혈액형이 A형으로 나왔던 것이다. 한 씨의 충격은 상상이상이었다고 한다. 한 씨는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 일로 부부는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한 씨는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아내를 본의 아니게 괴롭혔고, 아내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믿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평화롭던 한 씨의 가정은 한순간에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한 씨도 아들의 혈액형을 알게 된 후로는 한순간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부러운 가정을 꾸려왔던 한 씨로서는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주부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내 김 씨는 우울증을 앓아온 것도 아니었으며 과거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도 없었다. 수사팀은 아내 김 씨가 남편의 의심을 받으며 괴로워하던 중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100점짜리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다해오던 김 씨에게 다정하기만 했던 남편의 의심스런 눈초리와 냉소적인 태도는 더없이 치욕적이고 억울했을 수 있었을 거라는 게 수사팀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재검진 결과 한 씨의 혈액형이 O형이 아닌 A형이었던 것이다. 한 씨는 초등학교 때 실시한 혈액판정 결과에 따라 여지껏 자신의 혈액형을 O형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딸이 O형, 아들이 A형으로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잘못된 혈액형 판정이 불러온 비극인 셈이었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한 씨가 받은 충격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