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갑자기 양해각서 체결이 무산됐다. 그러면서 양해각서 체결 무산 과정에 이 부총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부총리가 미국 투자사들로부터의 자금 유입을 거부한 채 박 지사 등에게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의 외자유치를 적극 권유했다는 것. 이 부총리는 왜 에이전트 커미션이 미국보다 비싼 것으로 알려진 ADB로부터의 외자유치를 권했던 것일까.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J프로젝트는 전남 해남·영암군 등 서남해안 일대 3천2백만여 평에 해양·레저타운(4백만 평), 교육타운(3백70만 평), 가족단위 종합오락타운(3백30만 평), 골프타운(9백20만 평), 실버타운(1천80만 평) 등을 조성하는 초대형 관광신도시 개발사업이다.
여기에는 청소년 레저시설과 외국인학교, 대형병원, 카지노, 골프장, 호텔, 컨벤션센터 등이 들어설 예정인데, 구체적인 건설 시기나 예산 등과 관련된 마스터플랜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전남도청이 대략적으로 밝힌 계획에 따르면, 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레저타운은 1·2단계로 나눠 오는 2013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1단계 조성사업을 2008년까지 마칠 예정으로, 골프장 10곳과 호텔 7개, 외국인학교 등을 포함해 인구 15만 명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것.
전남도청은 중국의 대형 골프리조트인 미션힐스를 능가하는 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현재 미션힐스는 6개 코스를 포함해 2단계 공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제주도보다 값싼 골프장 이용료로 국내 골퍼는 물론 중국 골프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전략도 세워놓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선 총 3백억달러(약 31조원)의 투자비가 필요한데, 대부분 외자유치를 통해 조달한다는 방침을 수립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남도청 주도-중앙정부 지원’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29일 전남 목포에서 열린 ‘지역혁신발전 5개년 계획’ 토론회에서 “관광·레저·스포츠 분야에 천혜의 자원을 갖고 있는 전남에 큰 판을 벌이려고 한다”며 전폭적인 지원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이 지역 출신인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이 청와대 창구역할을 맡아, 박 지사 등과 투자유치 현황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헌재 부총리는 지난 8월 “전남의 대규모 리조트 단지 건설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담당하는 한편 해외 투자자를 물색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
박준영 전남지사는 비공개적으로 투자가들을 만나 프로젝트 추진 방향 등을 설명하면서, 외자유치에 힘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선 외자유치가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남도청은 지난 9월중 해외투자가와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었다. 당시 미국의 해스&해이니(Haas&Haynie)사와 벡텔(Bechtel)사 등과 협의해 9월 초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기로 돼 있었다. 이보다 앞서 전남도청은 올해 초 미국 이들 투자사들로부터 투자의향서(LOI)를 접수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J프로젝트는 순항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들 미국 투자사들과의 양해각서 체결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막판에 무산됐다. 그러면서 이헌재 부총리가 양해각서 체결이 무산된 과정에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남도청의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 투자사들과의 양해각서 체결이 성사단계에서 무산된 것은 이헌재 부총리가 브레이크를 걸었기 때문”이라며 “그 이후부터 ADB로 (외자유치)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전체 외자유치 목표액의 일부이긴 하지만 외자 도입이 성사단계까지 갔다가, 이 부총리가 “미국의 투자사들의 자금 유입을 허가해줄 수 없다”고 해서 제동이 걸렸다는 얘기다. 그 대신 ADB와 물밑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
그런데 외자유치 과정에는 대개 중간에 에이전트(중개인)가 개입한다. 에이전트는 외자를 유치시켜주는 조건으로 비공식적인 커미션을 받고 있다. 이렇게 커미션을 주고받는 것은 이미 오래된 국제적 관행이라는 게 국제금융 전문가들의 설명. 쉽게 말해 국제 금융기관과 협상을 벌여 자금을 조달해주는 대가로 ‘중개인 수수료’를 챙기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미국의 에이전트는 보통 0.5% 정도의 커미션을 요구한다는 것. 이에 비해 ADB와 접촉하는 에이전트는 1∼2% 정도의 커미션을 요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부총리는 왜 에이전트 커미션도 비싼 ADB로 자금 유치 방향을 전환하도록 했던 것일까.
앞서 언급했던 고위 관계자는 “이 부총리가 박 지사를 만나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시대 구현에 기여하기 위해선 미국 등의 투기성 자금을 유입해선 안 된다. 대신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동북아 중심국가로 나가기 위해선 ADB 자금을 유치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부총리가 ADB를 ‘선호’하는 까닭에 대해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견해가 전남도청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금시초문”이라며 “두 분(이 부총리와 박 지사)이 가끔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 부총리와의 직접적인 전화통화를 원했으나, “(부총리의) 일정이 바빠 (전화 연결이) 힘들다”는 입장만 밝혔다.
J프로젝트가 가시화되자, 서남해안 일대 지역에선 부동산 투기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남도청은 이에 해남·영암군 일대 1천8백만여 평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외자 유치’라는 물꼬가 트이질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남도의 유토피아’ 건설이 ‘첫 삽’부터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