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울 신당동 가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당시 아버지 영정과 함께 신당동 가옥으로 돌아온 큰딸 근혜와 동생들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국내외 취재진들과 마중 나온 주민들로 일대는 장사진을 이뤘다. 신당동 가옥 관리인 박운영 씨(75)는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후 1976년 이경령 여사도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로 박 전 대통령은 신당동 가옥을 찾지 않았으나 ‘돌 하나 옮기더라도 알려 달라’며 애착을 보였다”며 “1979년 유가족들이 돌아온 이후 큰딸 근혜 양은 안방에서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책상에 앉아 편지를 읽는 것으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동생들을 보살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유족들은 1982년 성북동 가옥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이곳 신당동 가옥에서 약 4년간 머물렀다. 박 대통령과 유족들은 한동안 신당동 거실에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자의 영정을 모셔놓고 조문객들을 맞았다. 16년 가까이 청와대에서 생활한 탓에 살림이 많이 늘어 중요한 물건들만 신당동 가옥으로 옮겨 왔다. 나머지 짐들은 친척집과 공관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육영수 여사가 박지만 회장을 출산했던 안방은 큰딸 근혜가 사용했다. 당시 근혜양은 서재에 있던 아버지 책상을 옮겨와 전국 각지에서 오는 편지들을 읽고 답장을 하며 하루 일과를 보냈다. 근혜양과 박 전 이사장이 사용하던 안방 옆 작은 방은 16년간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모은 앨범과 살림들을 모아두는 창고가 됐다. 5·16군사정변의 산실이었던 서재는 벽을 하나 만들어 박 전 이사장과 아들 지만이 사용했다.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아버지 없이 우리 남매만 돌아올 곳인 줄 몰랐다. 청와대가 훨씬 컸지만 신당동 집이 오히려 텅 빈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며 “전국각지에서 오는 편지가 박스로 집안 한 가득이었다. 언니가 편지를 읽으며 답장을 하기도 하고, 함께 주변 문구점에 가서 답장을 할 예쁜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고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1982년 박 전 대통령 유족이 성북동 가옥으로 이사를 하면서 신당동 집은 다시 관리인의 손에 맡겨졌다. 성북동 집에서 박지만 회장과 박근령 전 이사장이 결혼을 하면서 성북동 집은 매각을 했지만 신당동 집은 매각하지 않았다.
2008년 10월 10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신당동 가옥이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412호로 지정됐다. 신당동 가옥 개방을 결정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춘상 보좌관이 서울시와 협의를 하며 개방여부를 논의했지만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논의가 중단되기도 했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당시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친일행적을 한 인물의 유적이 문화재로 지정됐다며 ‘신당동 가옥’도 그중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추진 한 ‘정부수반 6인 유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고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과 백범 김구 선생의 경교장과 함께 신당동 가옥의 복원공사도 시작됐다. 현재 서울시는 7억 3000만 원을 투입해 가옥복원과 전시공사를 마무리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신당동 가옥은 협소한 시설 문제로 당분간 하루 4회 60명 씩 사전 예약을 받아 공개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