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위가 한정숙 씨 유족들에게 발송한 보상금 환수 고지서와 ‘인우보증인’인 연평도 파견대장 김 아무개 씨가 제시한 당시 특수임무 수행자 사진.
구원생 씨(여·78)는 지난해 말 고지서 하나를 받았다. 부과내용으로 ‘기타경상이전수입’이라고 적힌 고지서에는 2015년 1월 31일까지 ‘2만 원’을 납부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구 씨는 지난 1월 2일, 2만 원을 농협은행을 통해 입금시켰다. 고지서는 1월 달과 2월 달에도 어김없이 날라 왔다.
고지서를 보낸 곳은 다름 아닌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보상위)다. 보상위는 지난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설치된 국무총리 산하의 보상기구다(박스기사 참조).
특수임무수행자들의 보상을 담당하는 보상위가 어쩌다 돈을 납부하라며 고지서를 보내게 됐을까. 사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 씨는 지난 2005년 보상위에 보상금을 신청했다. 자신의 남편인 한정숙 씨(1978년 49세로 사망)가 특수임무를 수행했다는 이유다. 한 씨의 유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한 씨는 지난 1950년 9월 북파공작원으로 모집돼 공군 정보국 소속으로 특수훈련을 받았다. 이후 1950년 11월 초 평양외곽에 낙하산으로 투하돼 한 달가량 첩보활동을 벌였다. 1952년부터는 북파요원 침투작전을 맡는 ‘연평도파견대’에 배속돼 임무수행을 하다가 1956년에 상사로 제대했다. 정부는 이런 한 씨의 공로를 인정, 두 개의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보상위는 심의 끝에 2006년 한 씨의 유족들에게 ‘1억 400여만 원’의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보상금은 구 씨와 자녀(2남 3녀)들에게 각각 배분됐다.
그런데 2012년 11월 보상위는 갑자기 유족들에게 ‘보상금 환수결정서’를 보내왔다. 결정서에는 “원 결정을 취소하고 과오 지급금 1억 400여만 원을 환수한다”라고 적시돼 있었다. 환수의 이유는 짤막했다. 결정서에 따르면 “과오지급이 의심되어 추가조사계획에 의거 인우보증인들과 동일시기에 근무한 참고인을 대상으로 재조사한 결과 한정숙 님은 공군특무대, 주문진, 연평도파견대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적혀있다. 즉 공군 첩보부대에서 근무한 사실은 인정하나 특수임무는 하지 않았다는 게 환수의 이유였다.
갑작스런 보상위의 ‘결정 번복’에 유족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 씨의 장녀 한명주 씨(59)는 “이전에 몇몇 사람들이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찾아왔다. 그때는 신분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환수 얘기도 없이 아버지 관련 얘기를 물어 보기에 그대로 답해줬다. 그런데 갑자기 환수통지서가 날라 오니 당황스러웠다”며 “소명기회도 충분히 없었고 이유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6년 만에 보상금을 다시 내놓으라 하니 납득이 되겠는가”라고 전했다.
유족들은 억울한 마음에 “환수를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보상위에서 직접 찾아와 납부를 종용했다고 한다. 한명주 씨는 “동생들 회사로 직접 찾아와 납부를 하라고 하니 부담감이 상당했다. 결국 어머니와 동생들은 돈을 내기 시작했고 나 같은 경우에는 그대로 버티니 최근 보상위로부터 ‘집을 압류했고 공매절차에 들어간다’는 문자를 받기까지 했다”라고 전했다. 현재 유족들은 지난해 말부터 보상위로부터 매달 각각 고지서를 받고 있다. 어머니 구 씨는 2만 원, 차녀는 5만 원, 장남은 5만 원, 삼녀는 3만 원, 차남은 13만 원이다. 단순하게 환산하면 유족들은 약 ‘30년’ 동안 보상금을 꼬박꼬박 도로 납부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한 씨 유족과 비슷한 사례가 더 있다는 것이다. 문계창 씨(2006년 74세로 사망) 유족 역시 지난 2013년 보상위로부터 환수결정통지서를 받았다. 문계창 씨의 유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문 씨는 1950년 공군 정보국으로 입대해 북파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1952년부터는 북파요원 침투작전을 맡는 ‘연평도파견대’에 배속돼 수차례 북한을 오가며 첩보 및 호송 임무를 맡았고 1953년 전역했다. 보상위는 2006년 유족들에게 1억 1000여만 원의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보상위가 문 씨 유족에게 보낸 환수결정통지서에는 앞선 한정숙 씨 유족들과 비슷한 이유가 적혔다. 통지서에는 “과오지급이 의심되어 공군첩보부대 대내자료 재확인 및 인우보증인과 참고인 등에 대한 재조사 결과 문계창 님은 군 첩보부대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한 사실이 없는 지원요원으로 확인됐다”고 적혔다. 즉 첩보부대 출신은 인정하나 특수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 씨의 장남 문경보 씨(51)는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분들께서 특수임무를 했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관련 군 경력 증명들도 있다.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보상위의 번복 결정은 인정할 수 없다”라고 전했다. 문 씨 유족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소송은 진행 중이다.
보상위가 한정숙 씨 장녀 한명주 씨에게 보낸 아파트 공매 경고 카톡(왼쪽)과 유족들이 제시한 한정숙 씨 특수임무 훈련 수료증.
그렇다면 왜 보상위는 결정을 ‘번복’하면서까지 무리한 환수를 하는 것일까. 보상위 관계자는 최근 한정숙 씨 측 유족과의 면담에서 “보상 결정 과정에서 인우보증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상위 관계자가 대표적으로 지목한 인우보증인은 김 아무개 씨(85)이다. 공군 정보국 소속으로 연평도파견대장을 역임했던 김 씨는 1954년 제대할 때까지 북파 첩보 임무를 주도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특수임무수행자 보상법이 통과되자 수많은 공군 정보국 출신 동료들이 ‘인우보증’을 서달라며 몰려왔다. 첩보 작전을 주도한 연평도파견대장 출신인 만큼 상징성과 대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워낙 많은 인원에 대해 인우보증을 해주다보니 노령인 김 씨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었던 것. 게다가 김 씨에게 도움을 받은 동료들이 김 씨에게 일정 부분 금액으로 성의를 표시한 것이 향후 문제가 됐다. 보상위 측은 이후 보상금을 받은 유족들의 계좌 내역을 샅샅이 살펴 거래 내역을 확인했다. 여기에서 돈이 오고간 것을 보고 김 씨를 ‘브로커’로 지목했다. 이후 김 씨는 허위로 인우보증서를 작성해 보상금을 타게 했다는 혐의로 지난 2013년 법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 받았다. 보상위는 김 씨가 인우보증을 섰던 유족들을 대상으로 모두 환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유족들은 김 씨가 “브로커가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유족은 “김 씨가 특수임무를 한 동료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몇몇 유족이 ‘너무 감사하다’며 100만 원 정도를 나중에 건넨 것으로 안다. 몇 억의 보상금을 받았는데 100만 원을 준 게 어떻게 브로커가 될 수 있느냐. 게다가 환수 당시에는 김 씨가 브로커로 찍혔다는 사실을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인우보증인은 김 씨 외에도 두 명을 더 세운다. 김 씨 외에도 다른 인우보증인과 증빙 자료들을 제대로 재확인했는지 의문이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말 형을 살고 나온 김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대략 30여 명 정도의 동료를 인우보증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중에 두 명 정도는 내가 욕심을 내서 월권을 행사한 잘못은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증언한 모든 것을 ‘거짓’으로 몰고 간 것은 문제가 있다. 난 브로커가 아니다. 연평도파견대장으로서 동료들과 함께한 증거와 사진들이 있다. 보상위로 수차례 불려가 다시 진술을 했다. 나중에는 너무 지쳐서 보상위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말을 하는 것도 보상위에서 고발을 할까봐 상당히 조심스럽다”라고 전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보상위가 재조사를 해 보상금 환수결정을 내린 건수는 ‘58건’에 달한다. 국방부는 “오기사례의 발견, 브로커, 조사관 등이 연루된 비위행위 적발, 보상신청인 및 인우보증인 등의 허위진술 등에 의해 과오 지급된 사례를 환수처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대규모 환수 문제’가 불거진 책임이 보상위 측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보상을 결정한 곳은 보상위인데 애초에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수년이 지나 이를 번복해 결국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게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보상금 지급은 국가와 당사자의 일종의 ‘화해계약’(당사자간 서로 양보하여 체결하는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화해계약은 착오로 인한 취소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보상금 지급신청을 하면서 확실한 조작 등 유족들의 고의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국가가 착오를 이유로 환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귀책사유는 국가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환수대상이 된 58건 중 소송은 ‘26건’이 진행됐다. 이중 보상위 측이 최종 패소한 건은 18건, 나머지 8건은 소송 진행 중이다. 막상 법원으로 가면 보상위 측의 승소율은 희박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보상위가 ‘소송’을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앞선 보상위 관계자는 “환수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이를 다시 번복하는 것은 결국 보상위가 잘못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민원을 제기해도 소용없다. 법원이나 언론으로 가는 게 낫다”라고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 역시 “딱한 사정은 알겠지만 결국 이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환수대상자들이 소송을 거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국방부와 보상위의 완강한 입장 앞에 절망하는 이들은 결국 특수임무자 유족들이다. 이중에서는 고령과 가정형편 등으로 소송을 걸 형편이 되지 않는 특수임무자들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유족은 “특수임무보상위원회가 아니라 ‘특수임무소송위원회’로 전락한 듯하다. 오히려 특수임무자를 제대로 조사하고 보상에 힘써야 하는 게 보상위의 역할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보상위가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 채 나이가 많고 형편도 어려운 유족들을 상대로 ‘묻지마 소송’만을 외치는 게 과연 타당한 대처방법인지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특수임무자’ 주장 이두우 씨 인터뷰 80년간 매달 납부…“소송할 힘도 없다” 노병에 귀에는 작은 보청기가 달려있었다. 귀에 바싹 얼굴을 대고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힘겨운 몸을 이끌고 나온 이두우 씨(82)는 잠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놓은 고지서를 꺼냈다. 보상위 명의로 되어 있는 고지서에는 ‘10만 원’의 납입금액이 적혀 있었다. 이두우 씨는 “북한에 수시로 들락날락했다”며 특수임무수행자 보상금 환수 통보에 대해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군 생활을 어떻게 했는가. “51년도에 입대해 공군 정보국 소속으로 근무했다. 북한에는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당시 황해도 옹진반도 쪽으로 가서 안내원과 함께 첩보대원들과 배를 타고 간 것이 기억난다. 연평도 파견대에 속해서 용매도 쪽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언제 보상을 받았고 언제 환수 대상이 됐나. “2007년 무렵 1억 60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2013년경 환수결정서가 날아오고 그때부터 고지서가 매달 날아 왔다. 그 전에 조사관들이 몇 번 왔는데 환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몰랐다.” ―매달 얼마씩 내는가? “10만 원씩 고지서가 날아 온다. 2014년 무렵부터 왔는데 형편이 안 돼 내지를 못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병원 신세도 많이 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쯤 조사관이 찾아왔다. 빨리 좀 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기에 1월부터 10만 원씩 내기 시작했다.” ―10만 원씩 낼 형편이 되는가? “사실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받은 돈은 모두 빚을 갚고 병원비 하는 데 썼다. 집이 없어 노인복지시설에서 지내는데 재산이 있겠는가. 자녀들도 없다. 다행히 무공훈장을 받아 월 40만 원씩 나오는데 이중에서 10만 원을 내고 나머지 30만 원으로 약값하고 생활비를 하곤 한다.” ―환수를 중지시키기 위해 소송을 해보는 게 어떤가. “소송을 하기에 힘도 없다. 그저 열심히 내 볼 생각이다.” 이 씨가 보상금을 다 갚긴 위해선 약 80년을 매달 꼬박꼬박 납부해야 한다. [환] |
특수임무자보상위는? 10년간 6910억 지급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 소개에 따르면 보상위의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임명하며, 위원들은 총 14명으로 법무부, 국방부, 국가보훈처 소속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 장관급 장교 등이 맡는다. 현재 위원장은 육군 정보학교장, 국군 정보사령관 출신의 박상수 예비역 소장(육사 24기)가 맡고 있다.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보상위는 지난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설치됐다. 보상위에서 의결된 사항은 국방부 특수임무수행자보상지원단에서 최종 결정돼 특수임무자에게 보상이 결정된다. 특수임무수행자는 과거 군 첩보부대에 근무하며 특수임무를 수행했거나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2005년 2월부터 2014년 5월까지 보상이 결정된 인원은 모두 6123명(육군 5131명, 해군 880명, 공군 112명)이다. 보상금 지급액은 모두 6910억 원이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