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나혜석은 1934년에 <이혼고백서>를 세상에 내놓으며 이렇게 주장했다. 세상에서 뭇매를 맞았던 이 주장은 80년이 지나서 비로소 인정됐다. 간통죄가 위헌 결정을 받은 것이다. ‘정조는 취미’라는 주장은 여전히 파격일 수 있지만 적어도 법률로 규정할 것은 아니라는 데 법관들은 동의했다. 개인의 ‘이불 속 사정’까지 사법기관이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 직후부터 사회 곳곳이 소리 없이 들썩였다. 콘돔 제조회사의 주가가 판결 직후 치솟았고, 온라인은 남성들의 소리 없는 함성과 여성들의 불만제기로 시끄러웠다. 간통죄 위헌 판결 이후 곳곳의 표정변화를 지켜봤다.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모텔과 콘돔·피임약 업체 등이 ‘특수’ 기대감에 들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북구 모텔촌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간통죄로 고소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진짜 화가 난다. 당장 만나서 상간녀 뺨부터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다.”
한 포털사이트의 육아임신 정보 카페는 간통죄 위헌 판결에 대한 게시글이 26일 당일에만 수십 개가 올라왔다. 각 게시글 별로는 댓글도 기본 10개씩 달릴 정도로 기혼 여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중에는 남편의 외도 때문에 간통죄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못 하게 됐다는 반응도 다수 있었다.
반면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다소 온도차가 있었다. “모텔 사장님들이 판결을 좋아 하겠다”, “모텔 대실료 오르는 것 아니냐” 등의 다소 장난스러운 글이 주를 이뤘다. 여성들보단 감정적인 동요가 적은 모습이었다. 간통죄 위헌 판결에 대해 물음표를 다는 남성들도 다수였다. “아동 음란물 소지가 나쁘냐, 간통죄가 나쁘냐”며 사생활 영역의 국가 통제는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위헌 판결을 남성들이 좋아할 거란 세간의 편견과 달리 “형사상 처벌은 없어질지라도 민사상 책임은 남는다. 언제는 간통죄 무서워서 바람 안 피웠느냐”는 냉소적인 의견이 다수였다.
간통죄 위헌 판결을 둘러싼 기혼남녀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번 판결로 과연 외도가 늘게 될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럴 것’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관계자는 “심리적 제어장치가 풀렸다”고 한 마디로 평했다. 간통죄가 있다고 바람을 피우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죄라는 인식은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통죄 위헌 판결을 받아들고 가장 울상 짓는 건 아내들이었다. 결혼 8년 차 주부 박 아무개 씨(30)는 “형사처벌과 위자료로 막는 건 엄연히 다르다. 작정하고 바람을 피워도 이혼하고 돈으로 무마하면 끝이지 않겠느냐. 돈 많은 사람들은 바람 피워도 된다는 말하고 뭐가 다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간통죄 판결이 나자 부부들의 대화도 살벌해졌다. 서로 배우자를 단단히 단속하려는 것이다. 한 육아카페 이용자는 “뉴스 같이 보는데 간통죄 위헌 판정이 나와서 남편을 쏘아보며 ‘한눈 팔 때는 네 눈 파서 상대녀한테 줘버린다’고 말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위헌이라니 뭔가 찝찝해졌다”라고 글을 올렸다. 게시글에는 “나는 남편에게 더 심한 협박도 했다”, “상상만 해도 싫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부부들의 미묘한 표정변화와 달리 주식 시장에서는 일부 회사가 위헌판결 소식으로 활짝 웃었다. ‘간통죄 테마주’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콘돔 제조회사 유니더스의 경우 간통죄 판결이 있던 지난 26일 오전부터 위헌판결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했다. 상승세는 다음날까지 이어져 27일 오전 전날 대비 11%가 오른 3475원에 거래됐다. 사후피임약 ‘노레보정’과 ‘엘라원’을 수입 판매하는 현대약품 역시 주가가 크게 올랐다. 개장 당시 지지부진했던 주가가 위헌판결 이후 전일 대비 10%가까이 뛰었다. 필름형 발기부전제 ‘엠빅스S’를 판매하는 SK케미칼 역시 간통죄 위헌 판결이 있던 오후 2시를 전후로 해서 주가가 크게 들썩였다. 이밖에 아웃도어, 여행에 관련된 일부 업체의 주가가 위헌 판결을 전후로 해서 출렁였다. 방음재 회사와 항공사가 수혜주로 묶인 경우도 있다.
불륜으로 최대의 ‘반사이익’을 누려왔던 흥신소 업계 표정은 아직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한국탐정연맹본부 관계자는 “폐지는 예상했던 바다. 업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간통죄 처벌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단지 외도의 정황 증거만 수집하기 위해 의뢰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위헌 판결이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 관계자는 “간혹 ‘반드시 감옥에 넣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 애를 먹었다. 이제 간통죄 처벌이 어렵다는 점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혼란을 줄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탐정연맹 관계자는 “판결 이후에도 상담 건수는 크게 변화가 없다. 오히려 앞으로는 민사소송에서의 승리를 위해 증거 수집을 하려는 의뢰인들이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 역시 위헌판결로 인해 별다른 손익발생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간통죄 처벌은 증거 입증이 엄격하게 적용됐고, 판결 역시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실제 대법원의 간통죄 합헌 판결이 있었던 2008년 10월 31일 이후 간통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이들 중 집행유예를 받은 이들의 비율이 전체의 96%에 달했다. 때문에 간통죄가 사라진다고 해서 울상 지을 필요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간통죄 폐지로 인해 민사소송에서의 위자료가 상승할 거라고 예측했다.
한국가정법률 상담소의 한 상담사는 “배우자의 간통으로 위자료가 크게 오를 거라 기대하진 않는다. 이혼 귀책사유 중에 특별히 간통만 중하게 다루진 않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가정폭력보다 간통이 더 나쁘다고 잘라 말할 순 없기에 간통죄가 사라진다고 해서 다른 귀책사유로 인한 위자료보다 더 많이 주라고 명령할 근거는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위자료가 올라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앞서의 상담사는 “간통으로 인한 위자료는 대부분 5000만 원 미만이었다. 우리나라의 위자료 책정 액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이번 위헌판결을 계기로 위자료 시스템에 대해 재점검할 여지가 생기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의 김미영 소장은 이번 위헌 판결에 대해 “사회적으로 간통에 대한 죄의식이 덜어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의 도덕적 기준을 높여야 개선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과거에는 아내 외도에 대한 문의가 10건 중 1건을 차지했다면, 요즘은 거의 반반이 됐다. 외도가 남녀 관계없이 늘고 있는 상황이기에 법의 유무가 아닌 부부간의 신뢰와 책임에 대한 강조로 외도 문제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고 조언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