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높은 토익 점수를 보유한 20대 후반의 직장인 A 씨. 실제 회화실력을 키우고 싶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학원을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추천한 것은 요즘 인기 있다는 ‘데이트 앱’. “외국인 남자랑 만나서 놀면 회화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는 친구의 말에 A 씨는 혹했다. 그렇게 알게 된 30대 미국인 남성과 메신저로 대화를 시작했고 영어로 채팅하는 것만으로도 회화실력에 도움이 되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미국인 남성은 실제로 만나자고 끈질기게 졸라댔다.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별일 없겠지’ 하는 생각에 만남을 수락했다. 처음에는 미국인 남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꽤 늦은 시간이 되었음에도 그는 “장소를 옮겨 한잔 더 하자”고 제안하며 끈질기게 스킨십을 해왔다. A 씨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 거절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았다”며 “결국 먼저 택시를 잡아타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살면서 예쁘다, 똑똑하다는 칭찬을 그렇게 많이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는 30대 초반의 B 씨는 “한 영국인 남성과 실제로 만나 ‘썸(남녀가 사귀기 직전의 단계)’ 타는 관계까지 갔다”고 밝혔다. B 씨와 영국인 남성은 몇 달 동안 정기적으로 데이트를 했다. 영국인 남성은 만날 때마다 변함없이 매너가 좋았고 늘 B 씨에게 칭찬을 했다. B 씨는 그와 사귀는 관계나 다름없다고 여겼고 친구들과 동반으로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남성은 다른 여성과도 썸을 타고 있었다. B 씨는 “남자가 앱에 접속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나랑 만나는 중에도 정기적으로 접속하는 게 이상해서 좀 캐보니 ‘역시나’더라”며 “영어실력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솔직히 정신적으로는 상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다른 30대 여성 C 씨는 외국에서 몇 년간 근무하다 최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영어실력이 떨어질까 걱정하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데이트 앱을 추천받았다. 본인의 거주 지역 근처에 사는 한 프랑스 남자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해졌고 실제로 만나기에 이르렀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프랑스 남자는 느닷없이 C 씨에게 자신이 사실은 이혼남이라고 고백했다. C 씨는 “일단 그날은 같이 놀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다시 만날 엄두가 나지 않더라. 앱도 그냥 삭제했다”고 한다.
기자도 해당 데이트 앱을 설치해서 가입해봤다. 이름, 생년월일, 성별, 이메일 주소, 거주 지역만 기재하면 됐다. 기자가 가입한 지 40분 만에 13명의 외국인 남성들이 프로필을 방문했고 7명이 쪽지를 보냈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대놓고 성관계를 제안하는 내용까지 천차만별이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나이대도 다양했다. 그 중 한 30대의 외국인 남성에게 답장을 보내 대화를 이어가 보았다. 그는 매우 적극적으로 만나자는 의사를 피력했다. 마음만 먹으면 1시간 이내에 약속을 잡을 수도 있을 듯했다.
취재 중 해프닝도 있었다. 기자에게 성관계를 제안하는 쪽지를 연거푸 보낸 싱가포르 남성이 알고 보니 앞서의 C 씨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던 남성들 중 한 명이었던 것. “걔네들은 결국 그냥 아무 여자든 한 번 만나서 놀고 싶은 거다. 유부남들도 상당히 많을 듯하다”고 C 씨는 말했다.
데이트 앱만 그런 건 아니었다. 신중한 성격인 20대 후반의 D 씨는 정보를 검색한 끝에 데이트 앱 대신 어학 공부용 앱을 선택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캐나다 출신 20대 후반의 남성은 처음에는 완벽한 어학 공부 파트너인 듯했다. 그는 D 씨에게 “나는 로스쿨 학생이며 졸업 후 한국의 대형 로펌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분도 확실해 보이고 한국어를 익혀야 할 목적도 분명하니 별일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이 남성은 단 두 번의 스터디 후에 성관계를 제안했고 D 씨는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여성들이 영어실력 향상이나 글로벌 마인드를 이야기하며 앱을 통해 외국인을 만나지만,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접근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며 “규제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남녀 간의 만남은 사적인 부분인 만큼 개인이 위험성을 인지하고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지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