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재건수술 후 만족도가 90~95%에 이르지만 비용 걱정에 10명 중 3명꼴로 수술을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유방 X선 촬영 모습. 연합뉴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집에서 어머니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작은 이모가 암일 수도 있단다.”
기자는 딸이 없는 이모들 사이에서 유독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특히 작은이모와는 어릴 때부터 친어머니 이상으로 가까운 편이었다. 그런 그가 암이라니…말문이 막혔다. 어머니는 이모의 발병기를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했다.
# 암의 발견
평소 공중목욕탕을 즐겨 찾지 않았던 이미애 씨(가명·50)는 오랜만에 목욕관리사에게 마사지까지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사지를 하던 목욕관리사는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 씨의 가슴을 만졌다.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목욕관리사는 조심스럽게 “가슴에 혹이 만져져요”라며 병원 방문을 권유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몸’을 마사지해온 목욕관리사의 ‘촉’은 정확했다. 지난해 11월, 유방암 투병은 그렇게 시작됐다.
#유방암 진단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이 씨는 인근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위해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곤 바로 서울의 유명 대형병원을 찾았다. 담당 교수는 챙겨온 자료를 보더니 암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며 이 씨를 안심시켰다. 다만 가슴에 생긴 종양은 암으로 발전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제거를 해야 한다며 수술 날짜를 잡았다.
첫 방문 이후 암 여부와 수술을 위한 검사를 받기 위해 일주일에 2~3번씩 서울과 창원을 오가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오전 8시 진료 시간을 맞추려 새벽 4시에 일어나 고속도로를 달렸고 이틀 연속 서울을 오는 날도 있었다. 그 먼 길을 오가는 동안 이 씨는 제발 암만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간절한 바람과 달리 이 씨의 가슴 속에는 암 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씨의 상태는 조금 특별했다. 크기로 봤을 때는 0기에 불과하나 양쪽 가슴 여기저기에 수많은 암 세포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결국 이 씨는 양쪽 가슴 모두를 절제해야만 했다.
이후로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양전자 단층촬영(PET검사)을 할 것인가, 가슴재건수술을 할 것인가, 어떤 병실을 쓸 것인가 등 쉴 새 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충분한 정보도 없이 그냥 저냥 되는 대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모를 전이를 확인하기 위해 PET 검사가 이뤄졌고 남은 인생을 위해 23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수하고 가슴재건수술도 받기로 했다. 그런데 가슴재건수술을 받을 경우 수술 날짜 조정이 불가피했다. 성형 전문의까지 투입돼야해 양쪽 스케줄을 동시에 맞춰야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 씨는 생명이 걸린 암 수술을 받는데 그깟 가슴이 뭐가 중요하느냐며 날짜만 당길 수 있으면 재건수술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가족들의 만류에 결국 기존의 일정보다 2주 늦춰 수술을 받기로 했다. 그렇게 이 씨는 암 환자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기다림의 시간을 40일가량 버텨야했다.
# 입원과 수술
수술을 하루 앞둔 1월 29일 가족들과 함께 입원수속을 밟던 이 씨는 어쩔 수 없이 2인실(1일 23만 원)에 짐을 풀었다. 6인실에 비해 두 배 더 비쌌지만 자리가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정말 병실이 없는 건지, 아니면 병원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2인실을 배정하는지 헷갈렸다. 병실에 들어서자 옆자리에는 30대 아가씨가 이 씨와 같은 날짜에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해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의 곁에는 평생 입원 한 번 하지 않았지만 딸 때문에 병원을 찾은 70대 노모가 보호자로 와 있었다.
“3기래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어쩌면 좋아요. 모아둔 돈도 별로 없는데 큰일이에요. 가슴재건도 수술 결과를 보고 나서 하기로 했어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라 그런지 얼굴만 보면 자신의 병기, 나이, 결혼여부, 가슴재건수술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레 오고갔다. 보호자들끼리도 하루라도 먼저 온 사람이 있으면 ‘운동은 이렇게 시켜라’ ‘호흡이 중요하다’ ‘밥은 어디 식당이 맛있다’ 등 다양한 팁을 전해줬다. 물론 입을 꾹 닫고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퇴원 무렵에야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와 보호자임을 알았다.
긴장 속에 입원을 했지만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위해 간단한 기구로 호흡 연습을 하고 오후 9시 이후 금식이 전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수술 당일, 새벽 5시부터 준비가 시작됐다. 발목에 주사 바늘이 꽂혔고 간단한 컨디션 체크 이후 오전 7시를 넘겨 수술실로 향했다.
“어머니, 많이 걱정되시고 떨리죠. 제가 손 꼭 잡아드릴게요.”
홀로 수술실에 들어간 이 씨는 간호사의 이 한 마디에 용기를 내고 긴 수면에 빠져들었다. 보호자에게 수술 시작을 알리는 문자가 전송된 이후 8시간이 흘러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이 씨가 병실로 옮겨졌다.
# 통증과의 사투
마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빈속임에도 연신 헛구역질이 나왔고 양쪽 2개씩 달린 피주머니로 계속해서 피가 흘렀다. 쏟아지는 졸음과도 싸워야 했다. 통증도 심했으나 간호사들은 걸어서 화장실도 갈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자 복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50대 환자가 “자기들 일 아니라고 막말하는 거 봐라. 지들은 수술하고 당장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줄 아는가 보네. 아파죽겠는데 뭘 걸어”라며 핀잔을 줬다.
마취가 완전히 풀릴 무렵에야 성형외과 교수가 찾아와 수술 부위를 쓱 한 번 보더니 “아주 잘 됐습니다” 한 마디만 남기고 떠났다. 궁금한 게 많았던 이 씨와 가족들은 당황스러웠다. 어떤 질문도 받지 않고 휑하게 가버린 교수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이튿날 담당 교수는 “염려했던 전이도 없고 모든 수술이 잘 끝났다”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문제는 통증이었다. 병원에서는 보형물을 통해 가슴재건수술을 했기에 자가조직을 이용한 경우보다 통증이 덜 한 편이라고 했지만 이 씨는 몸을 살짝 뒤척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통증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쳤고 새벽 2시마다 진통제를 맞으며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2월 2일)이 되자 병원에서는 퇴원 날짜를 통보했다. 불과 이틀 뒤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수술부위가 찢어질 것 같다. 5시간씩 어떻게 차를 타고 내려가느냐”고 하소연했지만 “병원에서도 더 이상 해줄 게 없다. 수술 합병증이 없으니 퇴원해야 한다”는 무뚝뚝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암 환자의 입원기간이 최대 1주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퇴원에 대한 불만은 이 씨뿐만이 아니었다. 자가조직(뱃살)을 이용해 한쪽 가슴재건수술을 받은 40대 여성은 “내일 퇴원인데 오늘 처음 앉았다. 가슴도 가슴이지만 배가 너무 아프다. 아침저녁으로 피를 빼내고 있는데 어떻게 퇴원하라는 건지. 병원에서는 입원하고 싶으면 다른 병원에 잠시 있다가 다시 오라는 둥 이상한 소리만 해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퇴원에 대한 걱정에 잠겨있을 무렵 제주도에서 온 50대 여성이 옆자리에 입원했다. 쾌활한 성격인 그는 수술을 앞두고도 오히려 가족들을 안심시키려 재밌는 말로 웃음을 선사했다.
“전 뱃살이 많아서 그걸로 가슴재건수술 하기로 했어요. 너무 비싸서 난 안 하겠다고 했는데 간호사인 딸이 엄마 우울증 걸리고 몸 버린다고 꼭 하라고 해서요. 의사 선생님한테 이왕 수술하는 거 뱃살 좀 많이 빼달라고 했더니 다들 웃고 난리가 났어요. 뱃살은 빠지고 가슴은 커지면 우리 남편이 좀 긴장하겠죠. 호호.”
# 퇴원과 끝나지 않은 고통
그래도 ‘반항’할 방법이 없는 환자 입장에서는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비용을 정산해보니 입원비, 암 수술비, 가슴재건수술비, 검사료 등 총액이 2500만 원에 달했다. 돈이 없어 가슴재건수술을 받지 못한 40대 여성이 “수술이 잘 되고 보니 한쪽 가슴으로 살아갈 앞날이 더 걱정스럽다”며 눈물짓던 얼굴이 영수증과 겹쳐 보였다.
퇴원 수속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6시간은 지옥과 같았다. 조금의 덜컹거림에도 통증이 심해져 휴게소마다 쉬어야 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하긴 했지만 이 씨의 고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당분간 일주일에 2번씩 외래진료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이 씨와 함께 입원해있던 제주도 아주머니는 퇴원 후 외래진료를 위해 움직이다 절제부위가 터져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씨 역시 혹여나 수술 부위가 잘못될까 가슴을 졸인다.
이 씨는 병원 확진 한 달 반 만에 수술 전 과정을 완료했다. 시간은 빨랐지만 그 사이 충분한 정보와 설명도 없이 그저 떠가는 대로 몸을 맡겨야 했다. 두 달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수술 부위 통증도 계속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선별급여 적용 앞둔 유방재건수술 한쪽가슴만 1천만원…4월부턴 절반으로 뚝! 2000년만 하더라도 99건에 불과하던 유방재건수술이 2010년에는 910건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 수술 후 환자의 삶의 질 유지에 많은 도움이 되는 유방재건수술이 조금씩 보편화되고 있지만 그동안 유방재건수술은 환자들이 결코 쉽게 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유방재건술 부가세 부담의 부당함을 알리는 유방암환우총연합회 회원들의 침묵시위 모습. 연합뉴스 유방재건수술 후 만족도가 90~95%에 이르나 비용 걱정에 10명 중 3명꼴로 수술을 포기할 정도였다. 유방암 수술 자체는 건강보험적용을 받아 본인부담률이 5%에 불과하지만 유방재건수술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한쪽 가슴만 유방재건수술을 받아도 환자 부담금은 800만~1400만 원에 달했으며 양쪽 모두 수술을 할 경우 비용이 20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지난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왼쪽 가슴을 완전 절제한 김 아무개 씨(여·57)는 “처음엔 유방재건수술 비용이 900만 원이 넘는다는 설명을 듣곤 형편이 어려워 바로 포기했었다. 하지만 입원실이나 외래진료를 하면서 만난 유방암 환자들 중 돈 때문에 재건수술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다”며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당당하지 못한 삶을 살며 고통 받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무리해서 수술을 받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오는 4월부터는 김 씨처럼 비용 때문에 유방재건수술을 고민하는 환자들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유방재건수술에 대한 선별급여(본인부담률 50%)를 적용해 4월부터 급여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환자 부담은 200만~400만 원으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급여 확대는 관련 고시 개정을 거쳐 4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며 유방암 환자 약 1만 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
안심할 수 없는 남성유방암 유방암 환자 275명당 1명꼴 유방암과 관련된 잘못된 상식 중 하나가 여성만 걸리는 병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남성들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남성에게도 유방 조직이 존재해 암 발병 가능성이 0%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국내 유방암 환자 중 0.6~3%가 남성으로 보고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남성 유방암 환자는 447명(전체 12만 3197명)으로 연령별로는 50대 122명, 60대 128명, 70대 124명으로 중·장년층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들어 20~30대 남성 유방암 환자가 발생하는 등 갈수록 발병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남성 유방암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건 없으나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과다, 안드로겐(남성호르몬)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고환염이나 고환손상의 과거 병력이 있는 경우, 간경변증 및 만성 알코올중독과 같은 만성 간질환이 있는 경우, 여성형 유방증을 유발하는 약제를 사용할 경우 발병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비만과 환경 호르몬의 영향, 서구화된 식습관과 생활양식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흔히 유방암은 예후가 좋은 암으로 분류하지만 남성 유방암은 예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유방암 환자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 정도에 불과해 의료적 연구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정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자연스레 여성의 치료 수준보다는 떨어지는 상태다. 또 다른 원인은 남성들이 병원을 찾는 시기가 너무 늦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가슴에서 멍울이 만져져도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자신이 유방암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과 달리 남성은 유방조직이 많지 않아 암이 쉽게 흉근과 피부를 침범해 병기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 남성 유방암은 대부분 유륜하부에 위치하며 특별한 통증이 없고 단단한 게 특징이다. 가슴에 혹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유방 크기나 모양이 변하고 피부가 가렵거나 유두에서 분비물이 핏빛 분비물이 나오면 바로 병원을 찾아 검사를 해봐야 한다. 특히 가족력이 있거나 유전적 위험도가 높으면 평소 자가 진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