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KT렌탈 입찰가로 무려 1조 원 이상 써내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롯데는 지난 2월 15일 올해 7조 5000억 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5조 7000억 원보다 무려 32%(1조 8000억 원) 늘린, ‘그룹 사상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올해 투자계획 발표는 다소 늦었지만 계획 이행 속도는 혀를 내두를 만큼 빠르다. 설 연휴 직전인 지난 2월 18일 KT렌탈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롯데가 선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다.
렌터카시장 1위인 KT렌탈의 유력 인수 후보로는 SK네트웍스가 거론됐다. 이에 맞서는 곳으로는 한국타이어 정도가 꼽혔다. 다시 말해 롯데는 당초 유력 인수 후보군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SK네트웍스의 인수 의지가 워낙 강했던 반면 롯데는 자동차 사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고 인수 의지도 부각되지 않았던 터다.
더욱이 롯데는 KT렌탈 본입찰이 열리기 전인 지난 11일 공개된 인천국제공항면세점 입찰 결과 8개 권역 중 4개를 쓸어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5년간 낼 임차료만 3조 6100억 원에 달한다. 자금 면에서도 KT렌탈 입찰에 참여는 하되, 입찰가에서 인색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결과는 정반대. 롯데는 입찰가로 무려 1조 원 이상 써내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많아야 7000억~8000억 원이었던 시장평가액을 훌쩍 뛰어넘는 과감한 베팅이었다. 롯데는 보험(롯데손해보험), 카드(롯데카드), 호텔(롯데호텔), 백화점 등과 연계해 KT렌탈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동빈 회장과 롯데의 공격적 M&A는 이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 있는 현대식 복합쇼핑몰 ‘아트리움’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 6위 면세점사업자인 이탈리아 WDF(World Duty Free)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아트리움 인수에는 수천억 원이, WDF 인수에는 4조 원 가까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을 만큼 모두 ‘빅딜’에 해당한다. 특히 면세점업계 세계 4위 롯데가 WDF 인수에 성공한다면 세계 2위 면세사업자로 올라설 수 있다.
지난 2012년 11월 하이마트를 1조 2480억 원에 인수한 이후 2년 넘게 이렇다 할 기업 인수 성과를 보이지 못했던 롯데가 올 들어 빅딜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재계에서는 그 배경에 대해 후계구도에서 우위를 점한 신동빈 회장의 자신감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올 초 형인 신동주 부회장이 해임되면서 신동빈 회장에게 힘이 쏠렸다”면서 “후계 승계와 관련한 불안 요소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공격 경영에 매진하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신 회장이 목표로 내건 ‘2018년 아시아 톱10’ 달성을 위한 몸집 불리기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해 4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롯데는 자산 91조 7000억 원으로 재계 5위(공기업 제외)에 올라 있다. 4위인 LG의 자산이 102조 원. 조만간 롯데가 자산 100조 원을 넘어 ‘4대그룹’이 아닌 ‘5대그룹’으로 삼성, 현대차, SK, LG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보인다. KT렌탈만 해도 자산이 2조 4000억 원에 이른다.
롯데그룹은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를 경계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지난 10년여 동안 M&A를 추진해오면서 좋은 매물이 나오면 계속 검토해왔다”며 “위기 상황에서 기회로 판단돼 인수를 추진하고 있을 뿐 갑자기 M&A에 나서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의 폭풍질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M&A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둘째 치고 과감한 베팅에 따른 부작용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다. 비록 KT렌탈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긴 했지만 시장평가액보다 30%나 높은 입찰가를 써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증권가 일부에서는 SK네트웍스의 KT렌탈 인수 실패에 대해 오히려 ‘승자의 저주를 피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렌터카·카쉐어링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봤다”며 “경쟁업체들이 써낸 입찰가를 보면 그리 과한 금액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SK네트웍스의 경우 입찰가로 9000억 원가량을 써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자의 저주는 KT렌탈 본입찰이 열리기 전 공개된 3기 인천공항 면세점사업권과 관련해 이미 지적된 바 있다. 롯데는 3기 인천공항 면세점사업권 입찰에 4조 원을 쏟아 부은 결과 대기업에 배당된 8개 권역 중 절반인 4개 권역을 가져가면서 3개 권역을 확보한 호텔신라를 제쳤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연매출 2조 원가량을 올리는 데다 대한민국의 관문으로 국내외에 큰 홍보효과를 보고 있는 요지다. 하지만 임차료가 워낙 비싼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인천공항에서 면세사업을 하고 있는 대부분 업체가 비싼 임차료 때문에 적자를 보고 있는 실정에서 3기 사업자들이 부담해야 할 임차료는 더 높아 적자 폭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3기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업체들이 앞으로 5년 동안 내야 할 임차료는 롯데가 4개 구역 3조 6100억 원, 신라가 3개 구역 1조 3200억 원에 달한다. 입찰가를 살펴봐도 롯데는 낙찰받은 DF1구역(향수·화장품)에 7250억 원을 써낸 신라보다 4400억 원이나 많은 1조 1651억 원을 써냈으며 DF3(주류·담배)에서는 6304억 원을 써내 4227억 원을 써낸 신라를 가볍게 눌렀다.
특히 ‘루이비통’ 면세점 사업권이 달려 있어 관심이 집중됐던 DF5(부티크)에서도 6635억 원을 써내 3279억 원을 써낸 신라를 이겼다. 낙찰받지 못한 구역에서도 롯데는 신라보다 2배가량 높은 가격을 써냈다. ‘같은 품목을 취급하는 2곳 중 하나만 낙찰받을 수 있다’는 룰에 적용되지 않았다면 모든 구역을 롯데가 가져갈 수도 있었다. ‘오버’로 보일 만한 베팅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유통업계에서는 규모의 경제로 볼 때 하나라도 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내가 못하는 것보다 경쟁사가 못하는 것, 경쟁사가 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며 경쟁사가 하는 곳을 뺏어오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귀띔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롯데의 몸집 불리기가 승자의 저주가 될지 규모의 경제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