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본점 전경. 조용병 차기 은행장(오른쪽-연합뉴스)이 취임하면 신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계파 무력화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2월 24일 조용병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을 2년 임기의 신한은행장 후보로 이사회에 단수 추천했다. 조 행장 내정자는 3월 말 정기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조 사장의 다양한 업무 경험을 통해 축적된 금융업에 대한 통찰력, 업무추진력,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는 게 신한금융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의 낙점 이유다.
그런데 차기 신한은행장 추천을 이틀 앞둔 지난 23일, 금융권에는 갑자기 ‘김형진 유력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은행권 곳곳에서는 “김형진 부사장이 내정됐다고 하더라”는 관측이 여러 채널을 통해 들려왔다. 김형진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은 전형적인 ‘신한 스타일’로 평가받는 내부 인사로, 추진력이 강하고 전략적 판단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전부터 신한금융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금융권의 추측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이 최종 후보를 임영진 신한은행장직무대행(부행장)과 조용병 사장, 두 명으로 좁히고 막판 고민에 들어갔다는 전언이었다. 한동우 회장이 다른 후보들 가운데 임영진 부행장과 조용병 사장을 선택한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신한금융그룹을 뿌리째 흔들었던 이른바 ‘신한 사태’와 무관한 인물들이라는 점이었다.
신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 회장은 신한사태 당시 소위 ‘라인’을 탔던 인물을 선택해 나머지를 포용하도록 하는 방안과 중립을 지켰던 인물을 골라 새출발 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해오다 후자를 택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유력 후보들 가운데 ‘친 라응찬파’로 분류되는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과 김형진 부사장, 그리고 ‘친 신상훈파’로 불리는 이성락 신한생명 사장은 막판에 한동우 회장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신한 사태에 깊숙이 개입한 이들 3인과 달리 임영진 부행장은 당시 지방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발 떨어진 상태였던 것으로 분류된다. 조용병 사장은 당시 신한금융 전무였지만 한 쪽 라인에 서지 않고 중립을 지켰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추천 4일 전인 20일, 한 회장은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을 최종 낙점하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 회장은 이신기 신한금융 부사장을 대동하고 신한은행 일본주주들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도쿄주주단’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신기 부사장은 평소 ‘오사카주주단’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 회장과 이 부사장이 은행장 결정을 앞두고 도쿄주주단을 만났다는 것은 사실상 최종 재가를 얻는 절차를 밟았다는 의미다. 신한은행 지분 20%가량을 갖고 있는 일본 주주들은 단일주주로는 최대지분을 갖고 있는 데다, 은행 설립초기부터 신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막후 실세다.
신한은행 일본 주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져 예전과는 인물도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1세대 일본 주주들이 사망하거나 은퇴하면서 2세에게 지분이나 의결권을 넘겼는데, 후손들은 부모세대에 비해 신한은행에 큰 관심이 없다. 이는 창업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일본주주들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신한금융 내부에서 일본 지점장 경력은 출세의 지름길이었고, 은행장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필수 코스이기도 했다. 신상훈 전 사장이 오사카지점장을, 이백순 전 행장이 도쿄지점장을 거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신한 사태를 거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도쿄주주단은 라응찬 전 회장을 지지한 반면, 오사카 쪽 주주들은 신상훈 전 사장 편에 섰다. 일본주주단 내부에서도 분열이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신한 사태가 후에는 일본 주주들과 무관한 한동우 회장과 서진원 행장이 등장했다. 이런 과정이 결국 일본과 전혀 인연이 없는 조용병 은행장 선임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금융권은 조용병 차기 은행장이 취임하면 신한금융이 본격적인 ‘과거 지우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선 신상훈파와 라응찬파 등으로 나뉘어 신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계파를 무력화하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CEO(최고경영자) 선임에 양대 파벌 어느 쪽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만큼 계파 무너뜨리기는 조 행장 취임 이후 더욱 속도가 날 전망이다.
이는 곧 일본주주들의 영향권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일부 재일교포 원로들은 여전히 두 계파 가운데 한 명을 골라줄 것을 은근히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한 회장이 직접 일본까지 날아가 이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만큼 향후 일본 주주들의 목소리는 더욱 잦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의 금융권 인사는 “조용병 차기 행장 내정으로 신한은행은 사실상 새출발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향후 조용병 행장이 한동우 회장의 뒤를 이어 신한금융그룹 회장에 오르면 그간 발목을 잡아온 과거와는 완전히 작별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