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면 충분하지 굳이 ‘읽기 능력’까지 닦아줘야 하느냐고 묻는 엄마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는 것. 읽기와 읽기 능력은 다르다. 읽기가 단순히 그림책에 쓰인 글자를 보고 소리 내 읊는 것이라면, 읽기 능력이란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 자신의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나아가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한마디로 어휘력, 분석력, 추리력, 판단력, 상상력 등이 포함된 개념인 셈. 대개 아이가 글자를 읽으면 그 의미까지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착각이다. 가령 ‘곰 사냥을 떠나자’라는 문장을 읽었더라도 곰의 생김새나 특징, 사냥의 의미 등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 아무런 이미지도 떠올리지 못했다면 이는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읽기 능력이 중요한 진짜 이유
초등 입학 전 읽기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 이유는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모든 학습에서 뒤처지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기 쉽기 때문. 국어뿐 아니라 모든 과목의 지식과 정보가 모두 글로 표현되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가령 문장형 수학 문제의 경우 지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답은커녕 풀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어릴 때 다진 읽기 기초가 튼튼하면 연령이 높아질수록 담을 수 있는 지식의 양이 늘고 이는 다른 학습의 밑바탕이 된다. 읽기 능력이 뛰어난 아이는 책을 보며 모르는 것에 궁금증을 갖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동안 부모가 아이의 질문에 적극 답해주고 함께 정보를 찾아보는 등 호기심을 적절히 채워줬다면 아이는 서서히 사전이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직접 필요한 정보를 찾아볼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어휘력과 배경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 어휘력과 배경 지식이 풍부할수록 학습한 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을 때 컴퓨터의 작동 원리, 부품의 이름이나 기능, 소프트웨어 기능 등에 대해 잘 아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훨씬 더 쉽게 컴퓨터를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더 깊게 이해하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효과까지 있다.
왜 책을 많이 읽어줘도 이해력이 떨어질까?
사실 요즘 아이들이 초등 입학 전 읽는 독서량은 상당한 수준이다. 단행본 그림책은 물론 전집부터 백과사전까지 몇백 권이 넘는 책을 읽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들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책을 읽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수업 내용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흔히 책을 많이 보면 읽기 능력이 자연히 길러진다고 여긴다. 하지만 무조건 많은 책을 읽어준다고 해서 읽기 능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읽기 능력의 핵심 키워드는 어떤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읽어주느냐다.
책을 많이 읽어줬는데도 아이의 읽기 능력이 떨어진다면 첫 번째로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인지 점검해봐야 한다. 엄마들이 아이의 수준이나 흥미를 고려하기보다 다른 집 애들이 많이 읽는다는 책, 초등 입학에 대비해야 한다는 강박에 수준 높은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글이 많은 책을 읽어주며 자기만족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두 번째는 지나친 독후활동과 질문이다.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고 연관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가벼운’ 독후활동과 질문은 아이의 읽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만들기, 그리기, 독후감쓰기 등 눈에 보이는 독후활동만을 고집한다거나 책을 읽는 도중에 “너 이거 진짜 알아?” 하고 독서의 흐름을 깨는 질문,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얘기해봐” 식의 확인 등은 그 반대 결과를 불러온다. 그러니 아이가 책 읽기 자체를 즐길 기회를 더 많이 주자. 읽기 능력이 향상될 수 있는 기본 전제는 아이가 책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아이 혼자 책을 보는 것.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뿌듯한 순간 중 하나는 어느 날 아이가 글을 깨쳐 혼자 책을 읽을 때다. 다른 아이들은 책을 읽어달라고 조른다는데 우리 아이는 유창하게 혼자 읽으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질 터. 하지만 책은 지식과 경험의 양과 무게만큼 읽히는 법이다. 엄마도 어려운 철학책을 보면 이해도가 떨어지듯 아직 세상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는 아이가 혼자 책을 읽는 것은 단지 표면적으로 글자를 읊어댈 뿐 ‘제대로’ 이해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한글을 뗀 이후라도 아이 혼자 읽기와 엄마가 읽어주기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넷째는 ‘빨리 빨리 독서’다. 책을 읽을 때는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엄마가 빨리 읽으라고 독촉하면 그럴 수 없다. 아이가 제 속도에 맞게 책을 읽으면 모르는 단어가 몇 개 나와도 문맥이나 그림을 보며 의미를 유추할 수 있지만 글자만 읽고 지나가면 알 방법이 없다. 어휘력과 상상력을 키울 좋은 기회를 놓치는 셈. 몇 권의 책을 읽느냐보다 한 권을 읽어도 어떤 재미난 내용이 담겼는지 알고 책 구석구석을 탐색해야 읽기 능력이 향상된다.
마지막으로 ‘과한 칭찬’이다. 아이가 책 읽는 모습이 기특해 ‘오버’해서 칭찬을 반복하면 아이는 엄마가 보는 데서만 책을 읽는 척할 수도 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것처럼 보여도 아이의 머릿속에는 단 한 권의 책 내용도 제대로 들어 있지 않은 셈.
‘책을 읽으니 착한 아이’라는 칭찬은 아이를 눈치 보게 만든다는 걸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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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보미 기자 / 사진 이주현 / 모델 김동연(6세)/ 도움말 장서영(청어람독서코칭센터 소장, <초등 적기 독서> 저자) / 어시스트 위현아/ 의상협찬 유니클로키즈(02-3442-3012), 펜디키즈(02-3447-7701), 바바라키즈(02-514-9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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