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는 수년간 공들여온 인천공항 ‘루이비통’ 매장을 롯데에 빼앗겼다. 임준선 기자
지난 2월 27일 제주 면세점 사업자 선정 결과가 발표됐다. 이날 결과는 유통업계에 큰 관심사 중 하나였다. 국내 면세점 사업의 두 라이벌인 롯데와 호텔신라의 자존심을 건 승부로 봤기 때문이다. 롯데로서는 기존 사업자로서 절대 뺏길 수 없는 터였고 호텔신라로서는 그보다 보름 전에 있었던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 입찰에서 롯데에 뒤졌기에 제주 면세점 운영권만큼은 기필코 가져와야 했다.
결과는 롯데 승. 관세청은 이날 서울본부세관에서 열린 ‘2015년 제1차 보세판매장 특허심사위원회’에서 오는 3월 21일 특허 기간이 만료되는 제주 서귀포 롯데면세점 후속 사업자로 롯데면세점을 재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호텔신라 관계자는 “원래 롯데가 운영해오던 것을 롯데가 재선정된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과 연결해 ‘롯데 압승, 호텔신라 참패’로 해석하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이부진 사장과 호텔신라를 염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 1위 매출을 자랑하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 경쟁에서 롯데에 뒤진 데다 제주 면세점 운영권마저 따오지 못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뿐 아니라 면세사업 확장에도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승인사업이기에 백화점처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정부 허가를 받는 것이 관건인데 이 승부에서 호텔신라가 연달아 롯데에 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는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과 관련, 대기업에 할당된 8개 중 4개 구역을 따냈고 호텔신라는 3개 구역을 가져왔다. 구역 수뿐 아니라 사업장 면적에서도 롯데는 2기 때 사업장보다 49%나 넓은 사업장 면적을 확보한 데 비해 호텔신라는 2기 때의 절반으로 사업장 면적이 감소했다. 또 외국 항공사 승객이 타고 내리는 탑승동 전 품목을 취급하는 사업장(DF8)을 포함해 인천공항 내 면세점 중 매출이 많은 구역으로 분류되는 DF1, DF3 구역을 롯데가 가져감으로써 호텔신라의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호텔신라는 그동안 롯데가 독점해오던 주류·담배 사업권을 확보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진은 신동빈 롯데 회장과 루이비통 가방 합성. 임준선 기자
하지만 루이비통 매장이 들어서 있는 DF5를 롯데가 가져감으로써 이부진 사장의 성과가 고스란히 신동빈 회장에게 넘어가게 됐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루이비통에서 롯데와 사업을 함께 하지 못하겠다며 철수하지 않는 이상 이부진 사장은 수년간 공들였던 일을 앉은 자리에서 롯데에 뺏긴 꼴”이라고 전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루이비통과 관계가 좋고 큰 트러블이 없어 사업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DF5를 낙찰받기 위해 호텔신라보다 2배나 많은 입찰가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구역별로 다른 5년간 임차료 입찰 가격을 보면 호텔신라가 DF5에 3279억 원을 써낸 반면 롯데는 무려 6635억 원을 써냈다. 입찰에 참여한 신세계가 이곳 입찰에 호텔신라와 비슷한 3252억 원을 써낸 점을 감안하면 롯데의 입찰가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롯데는 이곳 외에 DF1, DF3, DF8 등 낙찰받은 곳에서 전부 호텔신라보다 훨씬 높은 입찰가를 써낸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은 높은 임차료 때문에 적자 상태라고 알려진 상황에서 롯데가 예상을 뛰어넘는 액수를 베팅함으로써 앞으로 5년간 어떻게 운영될지 관심을 모은다. 롯데의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사실 우리는 흑자를 보고 있었다”고 반박하며 “매출 면에서나 대한민국 관문이라는 홍보효과 면에서나 충분히 운영할 만한 액수”라고 자신했다.
앞서의 유통업계 관계자는 “규모의 경제로 볼 때 매장 한 곳이라도 더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내가 못하는 것보다 경쟁사가 못하게 하는 것 혹은 경쟁사가 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며 경쟁사가 하고 있는 곳을 뺏어오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귀띔했다. 이에 비춰보면 롯데가 호텔신라로부터 인천공항 루이비통 매장을 가져온 것, 호텔신라가 제주 서귀포 면세점을 뺏어오지 못한 것이 대비된다.
호텔신라의 주력은 호텔이 아닌 면세사업이다. 신라호텔은 국내에 서울과 제주밖에 없다. 매출과 영업이익 면에서 면세사업 부문은 호텔신라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 등에 힘입어 우리나라 면세점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면세사업 부문에 치중돼 있는 호텔신라 성장도 이어진 것.
호텔신라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6.6% 증가한 2조 9089억 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0.5% 상승한 1389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만 따져보면 8137억 원의 매출에 265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데 그쳤다. 비록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실적이지만 시장 예상치(매출 8646억 원, 영업이익 397억 원)와 호텔신라의 기존 전망치(매출 8424억 원, 영업이익 478억 원)에 한참 못 미친다.
호텔신라는 면세사업 확장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의 적자 규모가 지난해 4분기 330억 원에 이르는 등 정상 궤도에 진입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부진 사장이 시장의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