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쌍등배에서 한국의 선봉장 오정아 2단이 5연승을 했다. 오른쪽은 오 2단이 불계승을 거둔 중국의 리허 5단과의 대국.
농심배에 참가한 각국 선수는 ▲한국 : 변상일 3단, 강동윤 9단, 안성준 6단, 박정환 9단, 김지석 9단 ▲중국 : 퉈자시 9단, 왕시 9단, 미위팅 9단, 롄샤오 7단, 스웨 9단 ▲일본 : 이치리키 료 7단, 이다 아쓰시 8단,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 고노 린 9단, 이야마 유타 9단(출전 순). 우리 팀은 선발전을 거친 선수들이었는데, 예년에 비해 다소 약체라는 평가였다. 변상일이나 안성준도 충분히 한몫을 할 실력이지만, 이세돌 9단을 비롯해 최철한 9단, 박영훈 9단 등 상위 랭커들이 빠져 무게감은 아무래도 덜하다는 것. 중국은 예년과 비슷한 라인업.
일본은 한-중에 비해 늦게나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몇 년 사이 새로운 얼굴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1997년생 이치리키 7단은 일본기원이 은근히 자랑하는 신예로 일본도 이제 한국이나 중국처럼 10대 후반의 강자가 등장한 것. 지난해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했는데, 역대 최연소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 보유자는 요다 노리모토 9단. 무라카와 7단도 일본의 기대주. 세계무대에서 종종 본선에 명함을 내밀 뿐 아니라 지난해 연말에는 이야마에게 도전해 서열 4위 ‘왕좌’ 타이틀을 빼앗은 실력이다. 아무튼 일본 팀도 요즘은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활력을 되찾고 있는 느낌이 역력하다.
해가 바뀌어 3차전. 이야마는 연말의 기세를 살려 3라운드의 첫 판에서 2013년 몽백합배 우승자 미위팅을 제치며 2연승, 다시 한 번 전장을 달궜다. 이번 대회 스타는 왕시가 아니라 이야마일 것 같았다. 남은 사람은 한국 김지석, 중국은 롄샤오와 스웨. 농심배 16년 동안 일본이 우승한 것은 2006년 제7회 딱 한 번이었다. 과연 이야마가 9년 만에, 일본 팀에 우승컵을 안길 것인지. 3월 4일, 김지석과 이야마가 마주앉았다. 이야마는 실리로 앞서나갔다. 삼국지가 삼국지답게 되려면 어쨌든 일본이 살아나야 하니까, 한-중의 검토실에서는 “이야마가 확실히 진화하고 있다”면서 흥겨워했다. 종반에 이르러서도 이야마가 유리했고, 이변이 없는 한 “요즘 절정에 올라 있다”는 김지석이 이야마에게 지는 것 같았던 것인데, 이야마가 마지막 순간에 착각으로 무너졌다. 관전석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야마도 복기 내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명은 다시 김지석에게로 향했다. 삼성화재배 우승하고 나서 그대로 질주할 것 같았지만, LG배에서 박정환에게, 중국 ‘하세배’에서는 퉈자시에게 져 세계 1위를 다질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는 김지석이었다. 하세배는 중국기원이 한-중-일의 대표 세 사람을 초청하는 이벤트 기전이지만 상금은 본격 대회 못지않다. 우승 80만 위안(약 1억 4000만 원), 준우승 40만 위안, 3등 20만 위안이다. “1년 동안 중국리그에서 버는 것보다 많은 액수”라는 것.
김지석의 심기일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벌어진 3월 5일 대결에서 김지석은 롄샤오에게 발목을 잡혔다. 무조건 1등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김지석만 우승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런데 이런 대목에서는 이창호 9단이 생각난다. 농심배 우승의 주역, 동방불패의 수문장이었던 이 9단은 농심배뿐만 아니라 어떤 세계대회에서든지 도대체 질 것 같지 않았고, 실제로 지지 않았다. 세태가 또 달라진 것일까. 지금은 절대지존, 뭐 그런 걸 굳이 따지는 시대는 아니고, 또 요즘은 절대지존이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도 않는 것인지. 그저 즐겁게 바둑을 두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들 있는 것인지.
황룡사쌍등배에서는 우리 선발 오정아 2단이 5일까지 5연승을 거뒀다. 6일 쑹룽후이를 상대로 6연승 도전에 나서 필승지세를 구축했으나 피곤이 누적됐음인지 자신의 전공 분야인 끝내기에서 연속 실수를 해 2집반을 지고 말았다. 농심배든 황룡사배든, 예전의 진로배든 정관장배든 좌우간 승발전에서는 매번 5연승 이상의 이른바 하이런이 나오니 재미있는 일이다. 한 판을 이기는 것도 어렵거늘 어떻게 5연승, 6연승, 아니 7연승, 8연승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 부문 최고 기록은 1996년 시즌 서봉수 9단이 진로배에서 날렸던 9연승 장외 홈런이다.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글자 그대로 전무후무, 공전절후다.
황룡사배 출전 선수는 ▲한국 : 김혜민 7단, 최정 5단, 오정아 2단, 김채영 2단, 오유진 초단 ▲중국 : 왕천싱 5단, 쑹룽후이 5단, 리허 5단, 위즈잉 5단, 차오유인 3단 ▲일본 : 셰이민 6단, 오쿠다 아야 3단, 후지사와 리나 2단, 기베 나쓰키 초단, 호시아이 시호 초단. 한국은 신-구 조화, 중국은 5단진 4명, 일본은 초-2-3단이 주력이다. 여자 쪽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정아는 선발로 나서 오쿠다 아야, 리허, 기베 나쓰키, 왕천싱, 후지사와 리나를 제쳤다. 네 번째 판, 왕천싱과의 일전이 고비였다. 왕천싱은 2012년 제2회 때 8연승을 기록했던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 이날도 왕천싱은 출발부터 양고 포진으로 위압했고, 중반 대세력작전으로 오정아를 몰아갔으나 오정아는 침착하고 정확한 수읽기, 배짱 두둑한 전략으로 왕천싱의 공세를 무위로 돌렸다.
오정아는 요새 갈수록 후반이 강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중반까지 형세가 엇비슷하면 종반에 스퍼트해 상대를 따돌리고, 웬만큼 불리한 바둑은 종반에 들어가 뒤집다는 것. 국내 2015 엠디엠 여자바둑리그에서도 서귀포칠십리 팀 주장으로 현재 7승1패, 놀라운 추동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여자리그와 황룡사배에서 오정아가 이긴 바둑을 보면 거의 비슷한 흐름이다. <표>가 말해주듯 180수 이후 220수 언저리, 중반 넘어 종반 입구에서 전부 불계승을 거두었다. 다만 오히려 국내에서 아직 후배 최정에게만은 여의치 않은데, 오정아로서는 앞으로 최정과 어떤 승부를 펼치느냐가 숙제다. 황룡사배 2차전은 4월 5일부터.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