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에 핀 ‘강정호 사랑’
피츠버그 캠프에서 만난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한국 취재진에게 “안녕하세요” “안녕”하며 인사를 건넨다. 코칭스태프까지 한국어로 “헬로우”를 대신한다. 타격코치는 강정호에게 배팅훈련시 “일곱 번을 치라”는 얘기를 통역을 통해 배워선 정확히 한국어로 말했다. “캉, 일곱 번!”이라고. 우익수를 보는 그레고리 폴랑코는 기자 옆을 지나가며 “못생겼어, 못생겼어”라고 놀린다. “무슨 뜻인 줄 아느냐”고 묻자, 그냥 웃으며 지나간다.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사람은 강정호였다. 장난기 많은 피츠버그 선수들의 ‘한국어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농담 섞인 단어들을 알려준 것이다.
KBO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1호 야수인 강정호는 “한국의 프로야구 야수도 빅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다. 강정호가 2월 26일(현지 시간) 피츠버그 캠프에서 런다운에 걸린 주자를 잡는 연습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한 번은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감독이 쇼핑백을 들고 클럽하우스에 나타나선 강정호와 통역을 찾았다. 기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선, “당신은 이 장면을 보면 안 된다”며 등을 돌린다. 허들 감독은 쇼핑백 안에 든 내용물을 강정호에게 보였고, 순간 감독도 선수도 웃음보가 터졌다. 나중에 강정호의 에이전트인 한재웅 씨를 통해 그 내용을 알아보니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얼마 전 MBC스포츠플러스에서 스프링캠프의 강정호를 취재하러 왔었고, 이후 허들 감독과 인터뷰 후 그 선물을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선물의 내용물은 한국의 유명 인삼이었다. 강정호의 에이전트는 그 선물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실은 지난해 이와 같은 선물을 LA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이 받았고, 그 덕분인지 몰라도 이번에 아들을 낳았다”는 얘기를 전했단다. 허들 감독의 반응이 재미있다. “난 지금 아들을 낳을 정도로 힘이 남아 있지 않다”라고 했다는 것.
이처럼 허들 감독도, 또 피츠버그 선수들도 강정호와 그를 찾는 취재진에게 오픈 마인드였다. 아무리 많은 한국 취재진이 자신들을 괴롭히더라도(?) 충분히 응할 자세가 돼 있는 모습이었다. 피츠버그의 주전 유격수이자 강정호의 도전을 받고 있는 조디 머서는 “도대체 한국 취재진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 매일 기자들의 얼굴이 바뀐다”면서 “강정호가 한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기에 이렇게 먼 곳까지 기자들을 계속 보내느냐”며 궁금증을 나타냈다.
#강정호의 연착륙에 대해선?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가 수비와 다리를 들고 치는 타격폼, ‘레그 킥’이었다. 볼 스피드가 빠른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상대할 때 ‘레그 킥’은 배트 스피드 타이밍을 놓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에 대해선 긍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MLB.com에 소개된 강정호의 시범경기 첫 홈런. MLB.com 캡처
최근 메이저리그 통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에서는 강정호의 ‘레그 킥’에 대해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댄 파스워스가 쓴 칼럼에선 강정호의 레그 킥 동작이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 중 한 명인 미겔 카브레라의 타격폼과 비슷하다고 설명하면서, 미겔 카브레라가 힘을 싣는 동작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강정호는 현지 기자들과의 인터뷰 때마다 레그 킥 동작에 대해 질문을 받고 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다리 드는 동작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지금까진 타격폼 수정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계속 내가 해온 방법을 고수해갈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이다.
무엇보다 강정호는 시범경기 첫날 두 번째 타석에서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를 터뜨렸다. 이후 허들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까지 그를 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꾸준히 성적을 낸다면 그의 타격폼에 대해 ‘딴죽’을 걸 사람은 없다.
피츠버그 캠프장을 찾은 MBC스포츠 허구연 해설위원은 “강정호가 상대 투수의 스피드에 밀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리를 들고 치는 타격폼으로 인해 히팅 포인트가 밀리는지의 여부가 관건이었지만, 지금까진 그런 부분이 없다. 수비도 안정적이다. 아무리 시범경기라고 해도 메이저리그 데뷔 첫 경기라 긴장할 법도 한데, 경기하는 모습은 마치 한국에서 야구하는 것처럼 지극히 편안해 보인다”는 소감을 전했다.
MLB.com의 피츠버그 전담 기자인 톰 싱어는 강정호와 조디 머서와의 수비를 비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머서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수비 능력이다. 어깨도 좋고 레인지도 좋은 선수이다. 그런데 강정호도 머서 못지 않은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강정호의 부드러운 손에 놀랐다”면서 “어깨가 좋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수비하는 동작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앞으로 피츠버그의 좋은 유격수로 자리 잡을 것 같다”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에이전트가 보는 ‘강정호’
강정호는 한국에서 출국할 때부터 줄곧 ‘한 남자’와 함께 했었다. 미국 애리조나 넥센 히어로즈 캠프에서 먼저 몸을 만들고 있을 때에도 그는 강정호의 옆을 지켰다. 강정호의 에이전트인 옥타곤 소속의 한재웅 씨다. 통역을 구하기 전까지 그는 강정호의 귀와 입이 돼 강정호를 돌봤다. 한 씨는 강정호가 피츠버그 캠프 합류 후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흡족해 했다.
수비 훈련을 하고 있는 강정호.
“겉으로는 내색 안 해도 강정호의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생활을 잘하고 있다. 우리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 넘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영어로 말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쑥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부담스러워한 듯 보였지만, 곧 자신을 내려놓고 선수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 선수들도 강정호의 노력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강정호를 따뜻하게 받아 들였다.”
플로리다주의 브래든턴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야구장에서 경기를 마친 이후에는 집에서 쉬는 것 외엔 달리 할 일이 없다. 딱히 갈 곳도 없다.
“아시다시피 야구 외엔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곳이다. 캠프 초반에는 훈련 끝나고 개인적인 업무를 보고 돌아와도 시간이 남아돌았다. 강정호가 ‘심심하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 그때마다 ‘시범경기 시작하면 피곤하니까 지금 많이 쉬어 두라’고 얘길해줬다. 그때 쉬었던 게 지금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강정호가 첫 홈런을 친 날, 피츠버그 홈페이지는 물론, MLB.com 홈페이지에는 강정호의 홈런이 메인을 장식했다. 이날 피츠버그의 5번 타자 페드로 알바레스가 3점 홈런을 터뜨렸지만 MLB.com은 이례적으로 강정호를 띄웠다. 이에 대해 한재웅 씨는 “피츠버그에서 강정호에 대해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설 계획이라고 들었다”면서 “한국 취재진이 많이 몰려들고, 현지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정호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츠버그 선수들이 강정호를 빠른 시간 안에 받아들인 부분에는 그가 한국에서 거둔 성적(2014 시즌, 타율 0.356, 홈런 40개, 117타점)과 그를 찾는 수많은 취재진들도 한몫했다. 피츠버그에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4년간 1600만 달러(약 174억 원) 수준을 웃도는 금액을 받고 있고, 포스팅 금액과 연봉 총액을 합치면 2100만 달러(약 230억 원)의 몸값을 받는 강정호를 ‘후보선수’로 보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피츠버그 강정호가 통역사를 통해 클린트 허들 감독(가운데)과 농담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강정호는 첫 홈런을 친 다음날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기자에게 웃음을 띠며 이런 얘기를 전했다. “외국 나와서 생활해보니 한국의 외국인선수들 심정을 이해할 것 같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넥센 시절 만난 외국인선수들에게 좀 더 잘 해줄 걸 그랬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적응하고 있는 편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만약 강정호가 유격수로 성공하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일본 선수들에게 쇼크로 다가갈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 온 일본 선수들 중 내야수에선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인 내야수 1호 마쓰이 가즈오를 비롯해 총 8명(이구치 다다히토, 나카무라 노리히로, 이와무라 아키노리, 니시오카 쓰요시, 가와사키 무네노리, 다나카 겐스케,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내야수가 빅리그에 진출했지만 이들 모두 외야수 스즈키 이치로(FA)나 투수 다르빗슈 유(텍사스)와 같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2010년 말 강정호와 비슷한 포스팅 규모인 532만 달러(약 57억 원)를 이끌어낸 뒤 미네소타와 3년 총액 900만 달러(약 97억 원)에 계약한 니시오카는 빅리그에 진출한 첫 해 부상을 입고 68경기 출장에 그쳤다. 이듬해에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메이저리그에는 3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강정호는 포스팅 발표 당시 “일본 프로야구 내야수들도 성공하지 못했던 도전인 만큼 굳은 마음과 노력으로 꼭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한국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1호 야수인 만큼 강정호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강정호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뒤를 잇는 한국 선수들의 몸값이 정해질 것”이라면서 “한국의 프로야구 야수도 빅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다.
미국 플로리다주 브래든턴=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강정호 메이저리그 생활 이모저모 ‘나훈아’ 별명 미국까지 따라갔다 #1. 클럽하우스에 여기자가? 팀 관계자를 통해 설명을 들었지만, 강정호는 이후에도 클럽하우스에서 기자들에게 맨몸을 보이기를 주저했다.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하니, (밖으로) 나가 달라는 부탁을 거듭 해왔다. 그런데 솔직히 기자도 자신 없다. 그의 맨몸을 볼 정도의 강심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2. 강정호가 놀림받은 까닭은? 피츠버그의 주전 3루수 조시 해리슨은 최근 강정호를 놀릴 만한 ‘건수’를 확보했다. 강정호가 지나갈 때마다 그를 향해 이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바로 ‘나.훈.아’. 조시 해리슨이 ‘나훈아’란 이름을 접한 것은 한국에서 온 MBC스포츠플러스 제작 팀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김선신 아나운서가 조시 해리슨에게 강정호와 나훈아의 사진을 함께 보여줬고, 한국에선 강정호가 빅스타 나훈아와 닮은꼴로 통용된다는 얘기를 전했던 것. 나훈아를 알 리가 없던 조시 해리슨은 두 사람의 사진을 본 후 폭소를 터뜨렸고, 그 후론 강정호에게 “헤이 나훈아!”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 강정호는 한국에서도 ‘나훈아’란 별명을 싫어했다. 가수 나훈아를 싫어한 건 절대 아니다. 닮은 외모를 두고 자신을 놀린 동료들, 팬들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며 ‘나훈아’란 별명도 두고 왔다고 생각한 강정호. 한국의 방송팀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그 별명이 피츠버그 선수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으니, 강정호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