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직접 겨냥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이학수법이 국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삼성SDS 본사 건물과 이학수 전 부회장. 이종현·박은숙 기자
특정재산범죄수익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 일명 ‘이학수법’은 기업이 횡령, 배임 등 불법행위로 취득한 재물이나 재산을 법무부 장관이 국민 대표로서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법이 정한 불법이익 기준은 ‘50억 원’이다. 50억 원 이상이면 국가가 민사적 절차를 통해서 불법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
이학수법은 지난해 말부터 제정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법은 여야 의원 ‘104명’이 서명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새정치민주연합 대부분의 의원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에서도 정희수, 진영, 노철래, 이한성 의원 등이 발의에 동참했다. 법안은 지난 2월 17일 국회 법사위에 제출돼 현재 심사 중이다.
이학수법이 사실상 ‘삼성’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명칭 자체도 ‘이학수법’인데다가 법안 자체가 지난 1999년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사건’을 토대로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신주인수권부사채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발행회사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일컫는다. 99년 당시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제일모직 이서현 사장 등 삼성가 삼남매와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김인주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230억 원’ 규모를 헐값(주당 7150원)으로 넘겨받았다. 이후 15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삼성SDS가 주식시장에 상장(6일 현재 주당 28만 원)되면서 삼성가 삼남매와 이학수, 김인주 씨는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거뒀다. 상장 이후 이들이 거둔 시세차익을 모두 합하면 수조원대라는 분석도 있다.
‘이학수법’이 통과된다면 해당 시세차익을 불법이익으로 계산했을 때 국가가 삼성가에서 환수할 수 있는 금액은 약 ‘2조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쟁점이 남아 있다. 이미 삼성은 해당 사건으로 법적 처벌을 받은 바 있다. 법원은 지난 2009년 BW 헐값 발행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며 횡령, 배임 혐의로 이건희 회장,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전 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학수법이 자칫하면 ‘이중처벌’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셈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단 법원 판결에 따라 시세차익을 거둔 것만 놓고 보면 문제는 있다. 하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이 걸린다. 이미 판결까지 확정된 사안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영선 의원 측은 “이중처벌이라는 것은 재벌의 논리다. 형사처벌을 받은 것일 뿐 민사적 절차는 남아 있다. 지금 영미법을 중심으로 형사적 절차와 민사적 절차를 구분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밖에도 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일을 ‘소급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도 주장이 엇갈리는 중이다. 소급 시한은 초안에는 20년 한으로 돼 있다가 그 뒤 무기한으로 바뀐 상태다.
이학수법을 발의한 박영선 의원.
특히 재벌 2, 3세들이 세습 과정을 밟고 있는 대기업에서는 이학수법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편법 증여’ 논란이 일었던 사안에 이학수법의 잣대를 들이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가다. 2001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40%,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60% 출자해 설립한 회사인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의 물류 운송업무를 독차지하며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기업으로 꼽혔다. 이후 글로비스의 지분을 계속해서 확보한 정 부회장은 회사 가치가 높아질 무렵 지분을 팔아치워 ‘1조 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쥐었다. 현재 정 부회장이 아직 갖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의 주식 가치는 2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를 두고 상속을 위한 ‘꼼수’라는 논란이 일면서 “일감 몰아주기로 다른 계열사의 수주 기회가 유용됐다”라는 지적이 따라왔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BW로 주식을 물려주는 것과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상속은 약간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편법이나 불법행위가 드러난다면 이학수법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삼성SDS 사례와 비슷한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으로 인한 시세차익이다. 재계에서는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이 이전부터 일종의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BW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별로 없다”라고 전했다. 지난 2012년 안철수 안랩 이사회 의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안랩에 있을 당시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통해 ‘300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두산그룹 역시 지난 2003년 150억 원대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일가에게 인수하려다 시민단체에 의해 ‘편법 증여’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자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전량 소각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재벌 총수 일가의 문제성 주식거래가 ‘14조 원’(2012년 기준)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도 주목된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재벌 총수 일가 문제성 주식거래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기업 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38개 재벌, 1444개 계열사를 조사한 결과 132개 회사에서 총수 일가 ‘233명’의 문제성 주식거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문제성 주식거래란 총수 일가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부당한 사익추구에 따른 꼼수 거래를 말한다. 문제성 주식거래로 인한 부 증가액은 현대자동차 그룹이 4조 8293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SK그룹(3조 4293억 원), 삼성그룹(1조 8043억 원), 대림그룹(8416억 원), GS그룹(5295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같은 문제성 주식거래에 대해 모두 이학수법을 적용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관계자는 “문제성 주식거래를 두고 이학수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향후 입법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결국 이학수법의 관건은 이 같은 부당 거래가 횡령, 배임 등 불법행위로 취득한 재물로 파악할 수 있을지 여부뿐만 아니라 이중처벌, 소급입법이 가능할지에 대한 여부다. 국회 법제실에서는 이미 두 차례나 이학수법에 대한 위헌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학수법이 헌법 제13조 1항 ‘이중처벌금지’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 박영선 의원실 관계자는 “이학수법은 삼성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재벌 대기업들의 불법을 바로 세우자는 의미에서 입법한 법이다. 현재 법무부 쪽에 대기업 횡령·배임·주가조작 등 현황 자료를 요청한 상태”라며 “제정 단계에서부터 재계 쪽에 조직적인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 법안 통과가 수월하진 않겠지만 4월 국회에서 반드시 상정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