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환수한 1205책 중 하나인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 중 발인반차도 부분. 연합뉴스
참여자 명단에 올라가 있던 사람이 왜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도세자는 신흥복이 살해된 비밀을 알게 된다. 신흥복은 비밀문서 <맹의>를 봤기 때문에 살해됐다. <맹의>에는 영조가 노론세력과 함께 선왕 경종의 살해에 가담했다는 친필이 기록되어 있었다. 사도세자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이 시작됐다. 결국 사도세자도 뒤주에 갇혀 죽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궤’가 스크린에 비치면서 수백년 세월을 이겨낸 색채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드러낸다.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살인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됐던 조선왕실의궤란 무엇인가? ‘의궤’는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을 일컫는다.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다. 조선왕실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내용을 정리한 기록으로, 행사 당시 입은 왕의 옷과 행렬의 배치 등을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시대 600여 년에 걸친 왕실의 주요 행사인 제사, 혼인, 사신 접대, 장례, 군사 훈련 등이 시기별·주제별로 정리, 기록했다.
특히 행사의 진행과정을 날짜순으로 자세히 적고,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과 비용, 재료까지 세밀히 기록해 놓았으며, 의궤 말미에 의식에 쓰인 주요 도구와 행사 장면을 천연색으로 그려 놓아 영상자료를 보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이런 그림 중의 일부를 반차도(班次圖)라고 하는데 반차도의 ‘반차’는 ‘나누어진 소임에 따라 차례로 행진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관리들이 늘어서는 차례와 행사 장면을 그리는데 행렬의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조감법(鳥瞰法)을 사용하여 그렸기 때문에 행사장의 전체 모습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또 그림의
앞과 끝에 행사 내역과 참가 인원 및 관직 등을 자세히 적어 놓아 후대에 똑같은 행사를 치를 때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차질 없이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드라마 속 사도세자가 의궤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얻은 결정적 이유다.
2011년 12월 6일 조선왕실의궤가 90년 만에 환국했다. 주요 인사들이 인천공항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의궤를 담은 컨테이너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의궤에 담긴 정보는 정치사·경제사·건축사·미술사·과학사·언어사·복식사·음식사 등 다양한 방면의 연구 자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의궤가 없었다면 궁중 문화의 복원과 재현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창덕궁과 창경궁, 경희궁 등 건축물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의궤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존하는 637종의 의궤 중에서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최고로 꼽는 의궤는 임금과 왕비의 결혼식 절차를 기록한 <가례도감의궤>다. 대표적인 것이 영조 대왕과 정순왕후의 가례(결혼) 의식을 담은 <영조정순후 가례도감의궤>다. 이 의궤에는 영조 임금과 정순왕후가 가례를 올리는 장면을 중심으로 가례를 앞둔 정순왕후가 왕실 예법을 배우는 장면, 가례에 사용된 가마와 의복 수, 의장기, 참가 인원, 행사에 사용된 음식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이 왕실 기록문화의 꽃, 조선왕실의궤 중 일부가 1922년 일종의 전리품으로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으로 밀반출됐다. 의궤는 이후 80여 년간 궁내청 왕실도서관에 유폐되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본부(대표 혜문 스님)는 조선왕조실록을 반환하려고 자료들을 조사하다가 의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2006년 9월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조선왕실의궤 반환운동을 시작했다. 일본의 양심적인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들이 호응했다. 결국 2010년 나오토 총리의 담화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1205책의 궁내청 도서를 한국으로 반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보수적인 자민당 국회의원들의 비준까지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2011년 12월 6일 조선왕실의궤는 90년 만에 환국했다.
조선왕실의궤는 600여 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동서양을 통틀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양식의 기록유산으로서, 그 희소성이 인정되어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는 등재되지 못했다. 뒤늦게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의궤도 등재 목록에서 제외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서도 약탈된 문화재의 슬픔을 지우지 못했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문화재는 슬픔이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참고문헌.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한영우, [조선왕조의궤]에서 <영조정순후 가례도감의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