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반환한 대한제국 국새 ‘황제지보’.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국새상서(國璽尙書)라는 고위관직이 있다. 상서(尙書)는 조선시대 육조(六曹)의 정2품 벼슬이다. 역사적으로 중국 천자(天子)와 신하 사이에 오가는 문서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을 뜻한다. 일본어사전에는 국새상서를 ‘영국에서 국새를 보관하는 대신’이라 풀이하고 있다. 우리 언론도 1930년대 그 표현을 그대로 빌려 썼다. 영어로는 “The lord keeper of the great seal”이다. 국새(옥새)를 간수하는 사람이다. 영국의 국새상서는 대법원장이자 상원의원장이었다. 2007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영국 상원의원 법을 개정하기까지 법관의 임명과 사법행정, 법의 개혁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영국 최고의 관직이었다.
국새는 시대와 용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하지만 크게 외교문서(특히 대중국 관계)에 사용되는 국인(國印)과 국내용 어보(御寶)로 나뉜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대중국 외교문서에 사용되는 어보를 중국에서 하사받아 사용했다. 국내에서 제작된 여러 가지 어보들도 사용됐다. 교서•교지에 찍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왕의 글에 찍는 ‘규장지보(奎章之寶)’, 대일본 관계에 찍는 ‘소신지보(昭信之寶)’ 등이 있었다. 이러한 인장들은 모두 도승지(왕명을 출납하던 정3품 당상관)의 책임 하에 상서원(尙瑞院)에서 제작•보관•관리했다.
1897년 고종(高宗)은 청국, 일본, 러시아 등 외세에 의해 국권이 위기에 놓이자 이들과 대등한 국가 위상을 확립하고자 대한제국을 수립했다. 대한제국은 황제국으로 국사에 사용할 국새(國璽), 어새(御璽), 어보(御寶), 보인(寶印) 등을 새로 제작했다.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시명지보(施命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 ‘원수지보(元帥之寶)’ 등이다.
대한제국 국새 중 하나인 ‘칙명지보’.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전에 소개했던 ‘문정왕후어보(文定王后御寶)’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국새들은 역사적 사건들에 휘말려 크고 작은 고난을 겪었다. 대한제국 국새의 운명은 유난히 가혹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전리품으로 일본 황제에게 바쳐졌던 것을 맥아더가 돌려주었지만, 6•25 전쟁 때 사라졌다.
‘문화재 제자리찾기운동’을 이끌고 있는 혜문 스님은 문정왕후어보의 행방을 찾던 과정에서 대한제국 국새의 존재를 알게 된다. 미국의 국가기록보관소에 있는 ‘아델리아 홀’ 레코드 등에서 국새의 도난 사실을 명기한 정부 자료들을 찾았다. 환수의 극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압수수색, 한미공조수사 등 여러 복잡한 행정절차와 시민의 반환운동이 이어졌다. 결국 2014년 4월 11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국새를 반환했다.
혜문스님은 국새들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잃어버린 민족의 자존심’이자 ‘상처받은 민족의 혼’이라고 말했다. 반환에 즈음해서 “미국 사병이 훔쳐간 국새들을 미국의 대통령이 직접 반환하는 것은 실로 역사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면서 감격해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반환한 대한제국 국새 외에 고종이 늘 ‘황제어새(皇帝御璽)’를 지니고 있었다. 기밀 유출을 막으려고, 내대신(內大臣)을 통하지 않고 고종 자신이 직접 관장했다. 비밀리에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작게(5.3㎝) 제작됐다. 1903년 8월 이후 조선은 러일전쟁 전야였다.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위협받았다. 고종은 국권을 지키려고 비밀 외교활동을 펼치는데 ‘황제어새’를 사용했다. 1903년 11월, 대한제국은 전쟁 발발 시 중립을 지킬 것이며 이러한 입장을 지지해주도록 이탈리아 군주에게 요청하는 친서를 썼다. 1904~1905년 러시아 황제에게 친서 4통을 보냈다. 1909년 헐버트 박사에게 비밀 자금 인출을 하달하는 친서에 고종은 ‘황제어새’를 썼다.
대한제국 국새는 고종이 국권을 지키려고 펼친 주권수호운동의 중대한 역사를 증명한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더라도 반드시 환수해야 할 문화재였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빛을 낸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국새(國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혜문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