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가야 금관, 익선관, 풍혈반, 금동 관모.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만 더 알아보자. 조선임금이 쓰는 관모(冠帽)는 익선관(翼善冠)이라 불린다. 임금의 정무복식인 곤룡포(袞龍袍)에 갖춰 쓰는 모자로 정치권력의 최고 상징물이다. 황금 용 문양에 백옥 장식이 빛나는, 한눈에 봐도 장엄함이 느껴진다. 조선왕실에서 고종까지 대대로 국왕이 사용했던 ‘대원수 투구’와 갑옷 역시 조선 왕조의 신물이다. 분명 왕조의 상징인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이것 역시 훗날 일본에서 발견됐다.
일본으로 가보자. 도쿄국립박물관 3층 조선고고·미술실에서는 한국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는 고고·미술품이 곧 오구라컬렉션이다. 이곳에 가면 잃어버린 명성황후의 다과상, 경주 금관총 금제장식물, 조선왕조의 상징물인 투구와 갑옷을 모두 찾을 수 있다. 실제 명성황후의 다과상에는 명성황후 시해 현장에서 반출되었다는 오구라의 기록까지 달아놓았다.
조선 왕실에서 대대로 사용했던 ‘대원수 투구’. 사진제공=문화재제자리찾기
문화재 반환 운동을 벌여온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은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인 조선대원수 투구 등 왕실유물 9점, 금관총 유물 8점, 부산 연산동 고분 출토유물 4점, 창녕 출토 유물 13점 등 총 4건 34점이 도굴품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국외 소재 문화재가 도굴됐다는 걸 입증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윤리헌장은 도난품 등을 기증받거나 구매하면 안 된다고 정하고 있고, 유네스코 협약에도 불법 취득한 문화재는 원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문화재들이 도굴품이라는 정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적 근거는 수집자인 오구라가 작성한 ‘오구라 컬렉션 목록’이다. 여기에 문화재의 출토지역과 원소장처가 표기되어 있다. 도굴의 정황증거다. 또 1981년 오구라 사후 오구라 컬렉션이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될 당시 도쿄 국립박물관 측은 ‘도굴품의 정황’을 인지하면서도 유물을 기증받아 박물관 윤리강령을 위반했음이 확인됐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은 이를 근거로 도쿄박물관 측에 보관중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본재판소에 보관중지 소송을 진행 중이다.
관음보살입상
독일은 2차대전 당시 나치의 괴링이 점령국에서 약탈했던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쟁당시 약탈국과 피해국으로서 지녔던 앙금을 해소하여 양국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한다. 일본은 아주 딴판이다. 올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지 120년, 해방 70년, 한일협정 50년이 되는 해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독일이 전쟁 피해국과의 관계개선에 힘을 쓰는 모범사례를 본받아, 일본도 한일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약탈해간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