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최양희 미래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왼쪽부터)은 투기·위장전입·다운계약서 등 3가지 의혹 모두 제기됐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부동산 의혹은 인사청문회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필수코스다. 청문회 전에 국회는 후보자의 재산신고 사항과 최근 5년간의 소득세, 재산세 및 종합토지세 납부실적, 체납실적 등을 샅샅이 훑는다. 이 과정에서 재산, 세금과 관련해 부동산의 비중이 큰 만큼 부동산에 의혹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한 관계자는 “부동산 의혹은 기본 자료만 토대로 봐도 눈에 보인다.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작성을 걸러내는 노하우가 의원실마다 있을 정도다. 날짜순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이 부분이 의심쩍다 싶으면 직접 현장에 가서 부동산 관계자들의 얘기를 듣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부동산 의혹은 여러 후보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서민정서와 어긋난 범법행위인 만큼 잘못을 엄중히 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박근혜 정부의 국무위원들은 부동산 의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일요신문>은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실(익명을 요구)에서 조사한 ‘박근혜 정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의혹 실태’를 입수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전현직 국무위원(국무총리 및 부총리, 각 부처 장관 등 총 19개 직위) 31명 중 ‘22명’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투기,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등 부동산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약 ‘70%’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투기 의혹과 다운계약서 의혹에 가장 많은 국무위원(각 13명)들이 해당됐다. 다운계약서 의혹이 제기된 국무위원은 11명으로 나타났다. 통상 투기와 위장전입,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의혹이 2~3가지가 겹쳐서 제기되는 경우가 상당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가지 의혹이 동시에 제기된 국무위원은 정홍원 전 국무총리,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서남수 전 교육부총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상직 산업부 장관,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9명이고, 3가지 의혹이 모두 제기된 ‘부동산 의혹 그랜드슬램’은 이완구 국무총리, 최양희 미래부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장관 등 3명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 정권이 부동산 의혹에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후보 추천 과정에서 부동산 의혹이 예상되어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다.
인사청문회 위원장을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한 중진 의원은 “예전에만 해도 부동산 의혹은 늘 청문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박근혜 정부 들어 부동산 의혹이 아무리 제기돼도 ‘송구하다’ 말 한 마디면 끝이다. 부동산 의혹이 점점 도덕불감증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의혹 실태’에 따르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각종 논란으로 청문회 전후로 사퇴하거나 그 이전에 추천이 철회된 후보자는 총 7명으로 나타났다. 이중 부동산 의혹이 ‘핵심’이 돼 사퇴한 후보자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단 둘뿐인 것으로 파악된다. 정성근 후보자는 부동산 의혹 외에도 음주운전 경력, 청문회 위증 논란 등이 함께 겹치긴 했다. 즉 부동산 의혹으로는 웬만해선 청문회에서 낙마하지 않는다는 게 정치권의 암묵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의혹이 있는 후보자를 추천한 청와대도 문제지만 치열한 검증을 해야 할 야당도 역할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야당 내부에서도 “부동산 문제쯤이야”라는 안일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한 중진 의원은 “한두 명이면 모르겠는데 누구든지 저지르는 죄라면 그게 죄가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라며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여론이 예전만큼 뒷받침 되지 않는다는 토로도 나왔다. 또 다른 새정치민주연합 초선 의원은 “청문회 의혹 제기도 여론이 든든하게 뒷받침되어야 탄력을 받는데 부동산 의혹을 제기하면 그렇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부동산 의혹 하나만 가지고는 낙마를 시키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는 걸 느낀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엄연한 범죄행위를 두고 그저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은 상식밖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주민등록법 37조에 따르면 위장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5000명’이 넘는 시민이 위장전입으로 재판을 받아 처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위장전입이 사문화된 처벌 조항도 아니고 엄연히 존재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유독 사문화된 조항으로 인식되는 듯하다”라고 꼬집었다.
김성완 시사평론가는 “인사청문회 역사가 15년인데 이제는 후보자들이 그저 납작 엎드리면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대부분 청문회를 통과한다”라며 “‘송구청문회’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등 하나라도 연루되면 장관을 못한다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도 마련해야 될 것 같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