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과 전라북도가 체결한 새만금 투자협약 양해각서를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사진은 지난 2010년 4월 새만금방조제 준공식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장세환 전 의원이 지난해 10월 10일 공개한 A4용지 2장 분량의 MOU 내용을 살펴보면 그 핵심은 2011년 5월 전북도와 삼성이 새만금 신재생에너지단지에 2021년 이후 총 23조 3000억 원을 투자해 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의 새만금 투자를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제1항은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문구는 ‘투자한다’가 아니라 ‘투자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제4항도 ‘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나 체결 당사자는 이행될 수 있도록 협력한다’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구체적인 내용도 구속력도 없는 양해각서를 주고받은 것이다. 삼성이 전북도에 억지로 떠밀려(?) 도장을 찍은 모양새다.
일각에선 삼성과 정부가 마치 한 편의 잘 꾸며진 각본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은 때마침 2013년 7월 태양광사업을 포함해 5대 신수종사업을 주도하던 신사업추진단을 해체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의 새만금사업 마스터플랜에서 삼성 사업예정지가 제외된 것이다.
장 전 의원은 “양해각서에서 삼성의 투자 용지를 신재생에너지용지로 못박고 있다”며 “정부가 변경된 새만금MP에서 신재생에너지 용지를 폐지함으로써 삼성은 새만금지역에 투자하지 않을 수 있는 ‘문서상 권리’를 확보했고, 이는 문서상으로 투자 백지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 “국무조정실과 도의 정치쇼”
유난히 전북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던 삼성그룹이 왜 전주제지 이후 20년 만에 느닷없이 ‘투자’를 천명하고 나섰을까. 당시 전북도는 전북혁신도시에 LH 유치 실패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전 도민을 총동원해 LH 유치를 부르짖었고 사생결단을 내리듯 집착했다.
김완주 전 전북지사(오른쪽) 시절 체결된 양해각서가 송하진 현 지사 재임 내내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반색은 오래가질 않고 있다. 정치권은 아예 대놓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협약서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나흘 후 전북지역 국회의원들은 심야에 모여 ‘삼성유치’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전북도를 향해 “역겨워서 못 보겠다. 당장 삼성 현수막을 떼어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러한 정황들은 정부와 전북도의 삼성 새만금 유치는 ‘대도민 의식 전환용’ 홍보사업이었다는 의혹을 짙게 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전북도의 입장은 의혹 해소보다 삼성의 ‘투자 촉구’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도 관계자는 “삼성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투자 시기가 도래하면 투자를 할 것”이라면서 삼성의 새만금 투자 의지는 변한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재임기간 ‘뜨거운 감자’ 될 듯
전북도의 이 같은 공식입장에도 불구하고 도의회 등 지역 정치권이 바라보는 시각은 심드렁하다. 전북도가 실현되지도 않을 일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전북도의회 양용모 의원은 “당시에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여론무마용이었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조속히 ‘회군’하는 것이 전라북도 전체 이익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체했다가 일이 틀어지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민선 5기 전임 도지사 당시 벌어진 일인 만큼 훌훌 털어버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낫다는 논리다.
지난 2013년 전라북도가 일본 도레이와 새만금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사진출처=김완주 홈페이지
지역 관가에선 도정 책임자가 바뀐 만큼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면, 한 도의원은 “엄연히 협약서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5년 후의 일을 누가 장담하겠느냐”며 “전북도가 바보가 아닌 이상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굳이 내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완주 전 지사 시절 체결된 양해각서를 두고 ‘정치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전북도의 아리송한 속내까지 더해지면서 ‘삼성 새만금 투자’ 건은 송하진 지사 재임기간 내내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
전북도 양해각서 ‘휴지조각’ 실상 시작은 ‘창대’ 끝은 ‘미미’ 전라북도가 새만금 산업단지에 유치하기 위해 기업과 맺은 양해각서(MOU)는 80여 건으로 적게는 1000억 원 안팎에서 20조 원까지 다양하다. 2009년 12월 김완주 전 지사는 돌연 미국으로 날아가 40억 달러 규모의 새만금 투자실적을 거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고, 이것을 2010년 선거에서 큰 성과로 내세우며 당선됐다. 하지만 이 건을 포함해 대규모 투자 양해각서(MOU)는 ‘휴지조각’이 된 채 체결한 기업 대부분이 감감 무소식이다. 그나마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여겨지는 사례는 OCI와 일본 도레이, 삼성 정도다. 대부분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 단계에서 백지화된 탓이다. 지난 2009년 초여름 미국 패더럴디벨롭먼트사로부터 시작된 투자협약 열풍은 그해 연말 옴니홀딩스그룹, 무사그룹-윈저캐피탈, 부산저축은행컨소시엄으로 이어졌다. 투자액은 각각 1조 원에서 3조 원 안팎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협약 파기 또는 법정 파산 등으로 논의가 중단돼 실효 처리된 상태다. 2009년 7월 고군산군도에 9219억 원을 직접 투자하겠다던 미국 패더럴디벨롭먼트는 협약체결 2개월 만에 협약을 파기했다. 관광분야에 30억 달러(3조 3000억 원)를 직접 투자하겠다며 MOU를 맺었다는 미 옴니홀딩스그룹과 산업분야 10억 달러(1조 5000억 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미국 무사그룹-윈저캐피탈은 사실상 손을 뗀 상황이다. 심지어 이 두 회사는 ‘페이퍼 컴퍼니’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부산저축은행컨소시엄은 관광산업과 신재생에너지에 총 1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지만 법적 파산돼 실효 처리된 상태다. 2010년 3월 30일 소리바다미디어와 쌈지 컨소시엄은 풍력-LED사업에 750억 원 공동투자를 약속했지만 어이없게도 1주일 만인 4월 7일 쌈지가 부도처리됐다. 전북도는 “소리바다미디어가 쌈지 없이도 투자하겠다고 밝혀왔다”고 장담했지만 결국 협약체결 5개월 만에 효력을 상실했다. 양해각서가 ‘휴지조각’이 되는 것은 일부 단체장들이 임기 내 치적 쌓기와 홍보효과만 생각할 뿐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지자체로서는 투자 유치 실적을 부풀리면 치적이 되고 기업은 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부산저축은행이나 쌈지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업들은 자신들의 위기상황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용할 수도 있다. [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