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이워치는 공상만화 <딕 트레이시>가 현실화된 첫 제품인 셈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그가 돈방석에 앉았으리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문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데 있었다. 자신이 발명한 제품에 대해 수십 개의 특허를 출원했지만 기술력이 쫓아가기에, 그리고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빨랐다. 결국 이렇다 할 제품으로 생산되기도 전에 그의 특허권은 대부분 1971년 전후로 소멸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그로스는 <애리조나 리퍼블릭>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35년이나 빨리 태어났다. 만일 내가 아직까지 특허권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아마 빌 게이츠도 제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어디 빌 게이츠뿐이었을까. <데일리 비스트>는 만일 그로스가 너무 앞서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빌 게이츠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와도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그로스가 이렇게 발명왕이 됐던 것은 어린 시절의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9세 때 부모와 함께 이리 호를 건너는 크루즈 여행을 떠났던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발길 닿는 대로 배 안을 구경하고 다니던 어린 그로스는 무전실 안을 기웃거리다가 평생 잊지 못할 전율을 느꼈다. 당시에 대해 그로스는 “무전기를 작동하고 있던 기술자가 들어오라고 하더니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고는 귀에 이어폰을 꽂아 주었다. 띠띠 하는 모스 부호의 신호 소리가 귀에서 들렸다. 그 후로 나는 무전기에 빠져 지냈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느꼈던 경이로움에 호기심이 더해지면서 그로스는 일생 동안 남보다 훨씬 앞서가는 사고력을 갖게 됐다. 12세 때는 집의 지하실을 무선 통신실로 개조한 후 고물상에서 주워 모은 고물들을 이용해 아마추어 무선통신 장치를 만들었다. 16세 때는 아마추어 무선통신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그 때부터 그의 콜사인은 평생 ‘W8PAL’이었다.
그리고 18세가 되던 해인 1936년, ‘워키토키’라고 이름 붙인 무전기를 개발했다. 휴대용 양방향 무선 전화기였던 ‘워키토키’로 특허를 출원했던 그는 이름을 ‘워키토키’로 지은 것에 대해 “걸어다니면서(Walkie) 다른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들과 대화를 나누고(Talkie)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로스의 다음 발명품은 1938년에 개발한 ‘시티즌 밴드(CB)’용 라디오 장치였다. ‘시티즌 밴드’는 개인용 무선통신의 일종으로, 개인용 주파수대 또는 그 라디오를 일컫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듬해인 1946년 미연방통신위원회(FCC)가 처음으로 개인용 주파수를 이용한 ‘시티즌 라디오 통신 서비스’를 개발하자 그로스의 ‘CB 라디오 장치’는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로스가 오늘날 ‘CB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차 세계대전에도 엔지니어로 참전했던 그로스는 훗날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전쟁 기간을 단축함으로써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한 성공한 무선 통신 작전이었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당시 그로스는 미군 및 CIA의 전신인 OSS 요원들을 위한 양방향 지대공 무선 라디오를 개발하는 일급비밀 임무에 참여했었다.
이어 1949년에는 세계 최초로 무선호출기를 개발했다. 이는 양방향이었던 무전기를 일방형 무선 원격통신 신호로 개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무선호출기를 가장 먼저 도입했던 것은 뉴욕의 유대인 병원이었다. 의사들에게 무선호출기 착용을 의무화하면서 보급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의사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의사들이 무선호출기 사용을 꺼렸던 이유는 진료 중에 환자들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사실은 골프를 치는 와중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었다.
1951년에는 휴대전화와 무선 전화를 개발한 후 특허를 출원했다. 하지만 당시 이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생산하려는 업체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벨 텔레폰’이 관심을 보였지만 독점을 우려한 타 업체의 견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비록 제품으로 개발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발명은 계속됐다. 1958년에는 배터리로 작동되는 최초의 군용 계산기를 개발했으며, 1959년에는 무선 통신 분야의 전문 경험을 바탕으로 항공우주산업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오비틀 사이언스’에서 10년간 근무했던 그는 당시 항공우주, 위성 및 군용 전기 및 전자 시스템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발명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MIT가 수상하는 ‘레멀슨 발명상’을 수상했으며, 미연방통신위원회로부터는 공로 서신을 받기도 했다.
생전에 비록 돈방석에 앉지는 못했지만 사실 그로스는 돈이나 명예를 좇던 사람은 아니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실에 틀어박혀 끊임없이 발명을 했던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했던 진정한 발명가였다. 생전에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만일 당신이 무선 전화기나 휴대 전화기 또는 무전기나 무선호출기를 사용하고 있다면, 당신은 내 특허 가운데 하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바로 ‘스마트 워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