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와 관련해 무기 중기업계의 ‘큰 손’으로 통하는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구속되면서 정·관계 로비 수사로 확산될 전망이다. 오른쪽은 납품비리 의혹이 제기된 차기수상함구조함(ATS-Ⅱ) 통영함(연합뉴스). 일요신문 DB
“현재 합수단이 내 놓는 수사 성과라는 것들은 새로울 게 별로 없다. 과거에 다 한 번씩은 문제가 됐던 사안들을 다시 수사하는 것뿐이다.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 수사도 몇 년 전에 이미 들여다봤던 사안이다. 이제 뭔가 큰 건을 터트려야 하는 합수단이 먹잇감으로 택한 것이 이 회장 건이라고 볼 수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처럼 야당에서는 대체적으로, 합수단이 검찰·국방부·경찰·국세청 등 거의 모든 사정기관을 망라해 105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로 꾸려진 것만큼의 성과를 못 내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앞서의 국방위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에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국정조사 얘기가 나왔을 때 총 40조 원 크기의 비리라는 설이 있었다. 이 중 10조 원 정도가 방산비리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현재 사상 최대 규모의 합수단이 밝혀 낸 2000억 원 정도는 성과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로비와 연결되기 쉬운 무기중개 사업 쪽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합수단이 방산비리 수사의 핵심에 다가가는 동시에 수사에 탄력을 붙이기 위해서 이 회장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설명이다. 사실 합수단은 그동안 자체 첩보를 바탕으로 한 수사보다는 검찰과 감사원에서 기존에 파악한 자료를 이첩 받아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는 철저히 보안에 부쳐져 있는 가운데 이 회장 카드가 일종의 히든카드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합수단은 중앙지검 별관에 설치돼 있는데 출입이 거의 완벽히 통제돼 있는 등 수사 내용은 철저히 보안으로 돼 있다”며 “이규태 회장 수사는 정·관계 로비로의 수사 확대를 의미하는 만큼 합수단으로서도 승부수를 던진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방산비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위사업청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 회장은 방위사업청이 지난 2009년 터키 무기업체인 하벨산과 체결한 EWTS(공군 전자전 훈련장비)의 도입을 중개하면서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사업비를 뻥튀기 해 500억 원을 불법으로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있다. 또 합수단은 터키 하벨산에서 하도급을 받아 일광그룹 계열사인 일진하이테크에 재하도급을 준 SK C&C도 살펴보고 있으며 이와 관련 SK C&C에서 상무를 지낸 권 아무개 예비역 공군 준장이 이 회장과 공모한 혐의로 구속됐다. 권 준장은 지난해 일광공영의 자회사인 일진하이테크에 고문으로 취업해 현재도 재직 중이다. 이 회장이 이렇게 챙긴 돈을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수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합수단은 2000년대 이전에는 존재감이 별로 없었던 일광공영이 무기 중개업계의 ‘큰손’으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군 고위층과 두루 친분이 있는 이 회장이 정치권과 국방부 등에 뇌물을 뿌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수사가 정·관계 로비로까지 확대되는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불똥이 자신들에게까지 튈까봐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로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수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1일 열린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 현판식.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 회장 수사와 별개로 현 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몇 개월 새 방산비리와 관련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내려 온 이용걸 전 방위사업청장, 방위사업청장 출신의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그들이다. 검찰 안팎에선 벌써부터 이들에 대한 소환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통영함 도입 당시인 지난 2009년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재직했던 것 등이 문제가 되자 지난 2월 사퇴한 황 전 총장의 경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지난해 12월 통영함의 납품 비리와 관련해 계약 당시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이었던 황 전 총장이 장비 획득 관련 제안요청서 검토 등을 태만하게 한 책임이 있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한 바 있다. 국방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방위사업청이 생기기 전에야 폐쇄적 구조라 장관 등 고위급이 비리에 연루되기도 했지만 청이 생기고 난 뒤에는 ‘율곡비리’ 같은 대형비리는 자취를 감췄다. 현재 상태에서 청장급에서 비리에 연루되기란 어렵다고 본다. 다만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의 경우 소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의 야당 관계자도 “방위사업청 직원들 사이에서도 황 전 총장이 연루됐지 않았겠냐는 추측 정도는 나오고 있다. 실무급인 팀장을 총괄하는 자리가 사업부장이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편 방산비리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방위사업청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방위산업체에서 방위사업청에 무기를 납품하려면 200명가량의 방위사업청 직원들을 만나야 한다고 한다. 무기 납품은 실전 배치되는 전략화 과정까지의 기간이 짧게는 5년 길게는 15년씩 걸리는 사업이다 보니 처음에는 공적인 만남으로 시작됐지만 ‘형님-아우’식의 사적인 감정이 형성되고 이렇다 보니 옳지 못한 거래 관계가 양산되는 것”이라며 “이 같은 구조적 문제의 선결 없이는 방산비리의 근본적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