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SBS 보도 캡처
▲2011년=2011년 3월 15일 시리아 남부에서 시작된 첫 반 정부시위 ‘존엄의 날 집회’가 기나긴 시리아 내전의 시작이었다. 이 집회는 40년 넘게 이어진 알-아사드 부자의 세습 독재에 대한 항거의 뜻으로 이루어졌다.
시위가 확산되자 알-아사드 정부는 48년간 지속되고 있는 국가비상사태의 해제를 검토했다. 또한 언론의 자유 확대와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민의 열망에 부합하지 못한 개혁안은 시위를 잠재우지 못했다.
시리아 전역에서 100만 명 이상이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고 정부군의 공격으로 최소 139명이 사망하는 등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서방은 알-아사드 대통령에 하야를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시리아 비난 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 2012년=2012년 2월 16일에는 유엔 총회가 알-아사드 대통령의 하야 결의를 채택했다. 이에 맞서 26일 시리아 정부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새 헌법안은 시리아 대통령의 임기를 7년씩 최대 두 번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새 헌법이 통과되더라도 알-아사드 대통령이 최장 16년간 권좌를 유지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시리아 야권은 “국민투표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방세력과 반정부 시위대의 압박을 완화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미국 측도 시리아의 국민투표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일축했다.
2012년 3월 19일은 시리아 내전 사상 최악의 하루로 꼽힌다. 이날 하루 동안 시리아 전역의 사망자 수는 310명이었다. 런던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감시’는 이 중 93명은 정부군이고 나머지 217명은 반군 또는 민간인이었다고 밝혔다.
11월에는 시리아 반정부 세력이 단일 연합체인 시리아국민연합(SNC)을 결성했다. 유럽연합(EU)이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시리아 국민의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한다고 밝히면서 시리아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가 국제적으로 한층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 2013년=2013년 들어 미국은 시리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반군에 6000만 달러 상당의 비군사 원조를 직접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첫 물꼬였다.
내전 중이던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 화학물질이 든 로켓이 떨어져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형참사가 터졌다. 이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면 동원 가능한 방안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이 문제에 관해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시리아 개입’이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가결됐고, 러시아도 시리아 정부에 화학무기를 포기할 것을 제안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시리아 사태 외교적 해결을 강력하게 촉구했고 유엔조사단도 ‘시리아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시리아 정부도 화학무기금지협약 가입하여 화학무기를 포기할 것을 선언했다. 유엔 난민기구가 11월에 밝힌 시리아 국외 난민의 수는 약 300만 명이었다.
▲ 2014년=2014년은 시리아 내전에 있어 중요한 해다. 시리아 정부가 국지적인 휴전과 포로 교환에 동의했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은 제네바에서 첫 대면 협상을 진행했고 홈스 내 고립된 민간인 이주에 합의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으나 2차 협상은 성과 없이 종료됐다.
6월에는 알-아사드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으나 반군이 장악한 지역을 제외한 채 투표가 진행돼 반쪽 선거라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측도 “시리아 국민 수백만 명이 투표할 권리를 갖지 못했다”며 선거 결과를 무시했다.
2014년은 IS(이슬람 국가)의 득세로 사망자가 7만 6000명이 넘는 등 내전 발발 이후 사망자가 가장 많은 해였다. 내전으로 시리아 내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동안 수백 개의 무장단체가 난립하기 시작했고, 이슬람국가(IS)는 시리아 내전을 틈타 세력을 키웠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5개동맹국들과 함께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공습에 나섰다.
계속되는 내전으로 밀려드는 시리아 난민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레바논은 난민 추가 수용을 거부했고, 세계식량계획(WFP)은 170만 명의 시리아 난민에게 식량 구매권을 제공하는 계획을 중단했다. WFP는 기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국가들 때문에 기금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는 시리아 난민 인도 지원을 12개월 연장했다.
▲ 2015년=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가 북부 코바니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고 도심을 탈환했다. 이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군사조직 페쉬메르가의 지상군 지원, 미국이 주도한 국제동맹군의 공습과 무기 제공 등에 힘입은 결과였다.
IS와 관련해 연초부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사건이 있었다. 평범한 청소년인 줄 알았던 18세의 김 아무개 군이 IS 가담을 위해 터키를 거쳐 시리아로 밀입국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2월 19일에는 미국과 터키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시리아 온건 반군을 훈련하고 무장시키는 협정에 서명했다. 23일에 진행된 국제동맹국의 IS 공습으로 시리아서 1600명이 사망했다. 3월 6일에는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격인 ‘알누스라 전선’의 지휘관을 포함한 간부들이 국제동맹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리아인권관측소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2월까지 파악된 시리아 내전의 사망자는 약 21만여 명에 달한다.
정지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