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거침없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거대한 세계화·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린 현대인들은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필수적인 부분들에서 윤리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많은 물자를 받아들였다. 소비가 미덕이 된 사회에서 값싸고 실용적이라는 이유로 쉽게 사고 버린 물건들이 사실은 끔찍한 인권 침해와 대대적인 환경오염, 동물 학대, 생태계 파괴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윤리적인 그린 행동가, 에콜로지스트의 대열에 합류해 삶의 태도를 바꾸고 있다. 이는 단지 경제적 침체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철학에 따른 변화이자 장기적인 사회 트렌드로 바라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과 프랑스, 선진적인 북유럽 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상류층에서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이런 삶의 변화는 유기농·공정무역·로컬(지역주의)·빈티지(중고품) 등을 키워드로 한 ‘윤리적 소비’ 패턴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에콜로지스트’란 누구인가? 동물복지를 위해 채식을 선택하고 모피 옷에 반대하는 이효리 같은 유명 인사들, 자녀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유기농 셰프’가 되어가고 있는 젊은 엄마 아빠들, 1회용 컵 대신 텀블러 같은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패션>은 세계적인 환경 저널 <더 에콜로지스트>에서 도시남녀들을 위해 기획한 ‘윤리적 소비 입문 교양서’다. ‘에콜로지스트 가이드’는 푸드 편과 패션 편이 나누어 출간되었다. 그중 제2권에 해당하는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패션>은 과거의 촌스러운 친환경 패션의 이미지를 벗고 오늘날 패션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윤리적 패션’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유기농 면부터 폴리에스터, 양모, 인조 모피 등 다양한 직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문제점을 분석해내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던 패션계에서 낡고 버려진 것들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예술을 빚어내고 있는 업사이클링과 빈티지의 세계, 전통적인 원단과 기술의 가치를 되살린 슬로패션의 경향을 집중 조명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국과 북유럽 도시들을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윤리적 브랜드들과 ‘친환경’을 앞세우지는 않지만 명백히 친환경적인 옷을 만드는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 패션을 통해 환경운동가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패션 셀럽들과 변모하는 그린 캠페인의 이야기들이 마치 연예 가십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루스 스타일스 지음. 정수진 옮김. 가지. 정가 1만 35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