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 촉발된 수사가 그룹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사정 당국 주변에선 이를 이명박 정부 실세들을 잡기 위한 전초전 성격으로 보고 있다. 오른쪽은 박영준 전 차관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작은 사진).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현재 검찰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시절 추진했던 사업 및 인수·합병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 촉발된 수사가 그룹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를 이명박(MB) 정부 실세들을 잡기 위한 전초전 성격으로 받아들인다. 정 전 회장이 포스코 계열사들을 이용해 만든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규명하는 게 수사의 최종 목적지가 될 것이란 얘기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 역시 “특정 기업이나 정치 세력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정 전 회장 비리 수사는 비자금 흐름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 전 회장은 지난 정권에서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정권 실세들이 정 전 회장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를 포스코 수장에 앉히려 한 정황이 여러 차례 감지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 전 회장 임명 당시 상황부터 ‘복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9년 1월 이구택 전 회장이 임기를 1년여 앞두고 갑작스럽게 물러나자 외압설이 제기됐다. 노무현 정부 때 발탁됐던 이 전 회장 사퇴를 정치권에서 종용했다는 얘기다. 그 후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이 강력한 회장 후보로 거론되며 포스코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포스코건설 사장을 맡고 있던 정준양 전 회장이 윤석만 사장을 제친 것이다. 윤 사장은 정 전 회장의 공채 선배일 뿐 아니라 사장 승진도 훨씬 빨랐다. 이 과정에 정치권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몇몇 친이계 실세가 이 전 회장 사퇴 및 정 전 회장 임명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재계와 정치권 주변에선 ‘정 전 회장 배후에 정권 실세들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 전 회장과 경쟁했던 윤 사장은 CEO(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 면접과정에서 압력을 받은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상득 전 의원, 천신일 회장
지난 2012년 박 전 차관 인사 개입설에 대해 내사를 벌였던 검찰의 한 고위 인사는 “지금은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확인에 나섰다. (박 전 차관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지만 법리 적용이 어려워 덮었다”면서 “정 전 회장이 박 전 차관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갔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정 전 회장이 박 전 차관에게 ‘충성 서약’을 했다는 진술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천신일 회장 역시 “청와대 의중은 정준양”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포스코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코의 한 고위 인사는 과거 기자에게 “정 전 회장 뒤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을 천 회장을 통해 알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 전 차관과 천 회장이 포스코 회장 선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자 재계 및 금융권을 중심으로 둘에게 줄을 대려는 모습이 부쩍 늘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천 회장이 세운 세중옛돌박물관엔 유력 인사들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천 회장이 이곳에서 인사 청탁을 포함한 민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퍼졌던 까닭에서다. 정 전 회장도 포스코 인사를 앞두고 해당 박물관에서 천 회장과 은밀히 만났다는 얘기도 있었다. 박 전 차관이 머물던 호텔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고 한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박 전 차관이 해당 호텔로부터 숙박비 면제 등 특혜를 받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온 바 있다.
검찰은 이처럼 박 전 차관을 중심으로 한 MB 정부 실세들, 특히 ‘영포라인’이 포스코 회장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 했던 것에 주목하고 있다. MB 정부 실세들이 정 전 회장을 활용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검찰 고위 인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던 것은 그만큼 비자금을 만들어 빼돌리는 게 용이하다는 말과도 같다. 포스코 협력업체 하나만 뚫어도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를 실세들이 모르겠느냐. 회장은 ‘바지’일 뿐”이라면서 “포스코 관련 첩보는 정권 초부터 모아왔다. 우연한 제보로 시작된 포스코건설 수사는 곁가지일 뿐이다. 정 전 회장 시절 조성된 비자금이 누구에게로 건네졌는지를 꼼꼼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서초동 주변에선 검찰의 화력이 정 전 회장 재임 당시 이뤄진 인수·합병 건에 맞춰질 것으로 본다.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인수가 최우선 타깃으로 거론된다. 포스코는 2010년 성진지오텍 지분 40.73%를 평가액보다 두 배나 높은 1600억 원에 사들여 논란이 일었다. 이로 인해 포스코는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지만 성진지오텍 전정도 전 회장은 수백억 원의 차익을 얻었다. 울산 출신의 전정도 전 회장은 이상득 전 의원 및 박영준 전 차관과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하게 된 경위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검찰은 현재 전 전 회장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다고 알려진다. 전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로 수사가 확대될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포스코가 지난 2010년 인수한 대우인터내셔널도 수사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제대로 뒤질 경우 성진지오텍보다 그 후폭풍은 더욱 셀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포스코가 3조 4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하고 사들인 대우인터내셔널은 이명박 정부 역점사업인 해외 자원개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업체 중 한 곳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검찰이 수사 중인 니켈광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수천억 원대 손실을 보기도 했다.
검찰은 대우인터내셔널이 해외 투자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또 포스코로의 인수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오갔는지 등을 규명할 방침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우인터내셔널에도 ‘왕차관’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박영준 전 차관은 대우인터내셔널 전신인 대우물산에서 근무한 바 있다. ‘정준양 회장 선임→대우인터내셔널 인수→자원외교’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박 전 차관 등 정권 실세들의 기획된 작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