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건설 압수수색으로 시작한 이번 사정의 핵심 라인은 우병우 민정수석, 박성재 지검장,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왼쪽부터) 등이다. 2011년 당시 우병우 수사기획관이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부산저축은행 부당인출 사건 수사결과를 브리핑 하는 모습. 연합뉴스
#청와대 ‘기획·연출’ 검찰 ‘실행’
검찰 인사가 마무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월 초 서초동에선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보통 정기인사 후 한 달쯤 지난 뒤에 주요 사건들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인사가 나자마자 서울중앙지검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당시 대검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소속 직원들이 바쁘다는 말을 요즘 입에 달고 산다”며 “조만간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6일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사회지도층 비리 대응 방안’을 발표, 대기업들의 부정부패 엄단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행 방안을 놓고 검사장들 간에 이견이 있긴 했지만 총론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했다고 한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일선 검찰청에서 조만간 대대적인 사정 바람이 불 것”이라며 “검사장 회의는 그 전초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시기 서울중앙지검은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을 겨냥한 자원외교 의혹 사건과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을 3차장 산하 특수1, 2부에 각각 재배당했다.
그러다 11일 박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 자리에서 ‘부패 척결’을 강하게 주문하면서 사정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고 다음날인 12일 이 총리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함께 ‘부패 척결’ 담화를 발표하면서 기정사실화됐다. 전열을 가다듬고 있던 검찰은 13일 비로소 포스코건설을 전격 압수수색, 고강도 사정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검사장을 지낸 한 법조인은 “청와대와 검찰이 사정을 위한 작업을 물밑에서 치밀하게 진행한 후 검사장 회의에서 이를 공론화시킨 셈”이라며 “기강을 바로잡고 정책 추진력을 높일 만한 수단으로 사정만한 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TK 출신 일색
이번 사정의 핵심 라인은 우병우 민정수석, 박성재 지검장,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 등이다. 우 수석이 검찰 사정 수사와 관련한 청와대의 지침을 박 지검장과 최 차장에게 직접 얘기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우 수석은 경북 영주, 박 지검장은 경북 청도 출신이다. 개인적 인연이 없는 데다, 현 정부에 대한 로열티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 수석은 박 지검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 수석은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김주현 법무부 차관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우 수석이 막판에 박 지검장 카드에 오케이를 한 것은 박 지검장이 TK 출신이면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같은 대구고를 나왔다는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TK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현 정부의 폐쇄적인 인사 원칙이 박 지검장을 살린 셈이다.
최 차장은 부산 출신이지만 우 수석과 허물없이 지낼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사가 있기 전부터 우 수석이 최 차장을 각별히 챙긴다는 소문이 검찰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을 정도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 청와대와 검찰의 ‘핫라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최 차장 산하에서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임관혁 특수1부장은 지난 2005년 우 수석이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재직 시절 그의 밑에서 평검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조상준 특수2부장도 같은 해 우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을 맡았을 때 평검사로 함께 일했다.
청와대와의 긴밀한 물밑 교류를 통해 외곽에서 검찰 수사를 지원 사격하는 라인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김수남 대검 차장 등이다. 황 장관은 이미 지난 13일 대검에 공문을 보내 “부정부패 처단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황 장관은 박 대통령의 신임은 두텁지만 우 수석과의 관계는 편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황 장관 취임 후 단행한 첫 번째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우 수석은 검사장을 달지 못했고 그해 결국 옷을 벗었다.
우 수석과 비교적 호흡을 잘 맞추고 있는 이는 김수남 차장이다. 우 수석이 민정비서관일 때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김 차장은 대구 출신의 정통 TK로 분류된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인 김 차장을 대검 차장으로 배치한 것을 놓고 김진태 검찰총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검의 한 간부는 “우 수석이 김 차장을 통해 자신의 뜻을 김 총장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있을 때야 김 총장과 직접 얘기하면 됐지만 한참 후배인 우 수석이 김 전 실장이 했듯이 김 총장을 대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과잉 충성경쟁 우려
서울 대치동 포스코 본사 사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박성재 지검장은 그동안 검찰 내 동기들(사법연수원 17기) 중에서 선두주자가 아니었던 탓에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에 들지 못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향후 1년간 현 정부가 원하는 하명수사만큼은 철저하게 하려고 할 것이고 우 수석이 일선 수사에 과하게 개입하더라도 예전처럼 강하게 대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지검장에게 이번 사정 수사는 현 정부가 그를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볼 것인지를 판단하는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 지검장이 “수사 보안 철저 유지” 등의 지침을 내리면서 사정에 공을 들이는 데는 이 같은 상황론 또한 감안된 것으로 관측된다.
수도권 내 일선 지검의 한 관계자는 “박 지검장뿐 아니라 검사장 승진 등 검찰 내 요직에 앉은 인사들의 니즈(needs·욕구)가 이번 수사와 관련 강경 드라이브를 유지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상황은 자칫 과잉 충성 경쟁으로 번져 오히려 검찰에 화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