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민들이 부동산 경매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서울의 한 부동산 시세 게시물.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전국 평균 전세가율(집값 대 전셋값 비율)이 70%를 넘어서는 등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수요자들이 매매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경매시장도 마찬가지다. 전세난에 지친 ‘전세난민’들이 전셋값 정도로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상대로 월세 수입을 얻으려는 투자자들도 소형 아파트 경매 물건에 눈독을 들이면서 응찰자가 더 증가하고 있다.
경매전문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들어 응찰자 수는 사상 최대 기록을 매달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서울·수도권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 아파트는 전국 응찰자 수 상위권에 매번 랭크되고 있다. 2월에도 전국 응찰자수 상위 10개 물건 모두 서울·수도권의 3억 원대 이하 또는 중소형 아파트가 차지했다.
3월 들어서도 18일 현재 수도권 아파트 평균 응찰률은 10.6 대 1로, 2월 9.9 대 1을 넘어섰다. 지난 한 해 8.2 대 1의 평균 응찰률을 매달 넘어서며 기록 경신을 하고 있다. 중소형만 놓고 보면 응찰률은 더 높다. 전용면적 85㎡ 미만의 경우 이달 현재 응찰률이 11.9 대 1이다. 전용면적 60㎡ 미만은 12 대 1을 넘고 있다.
응찰자가 늘면서 낙찰가율도 크게 상승하고 있다. 전용면적 60㎡ 미만의 경우 3월 18일 현재 낙찰가율이 98.6%로 거의 감정가 수준이다. 그나마 경매는 감정가가 6개월 전에 책정된 것으로, 시세보다 낮아 조금이라도 싼 물건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이 시장에 몰리는 것이다.
이창동 지지옥션 연구위원은 “소형은 전·월세 모두 강세인 데다 투자금이 1억~2억 원대로 많이 들지 않아 실수요자뿐 아니라 투자자도 몰리고 있다”며 “예전엔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 중심이었다면 최근엔 월세 수입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저금리기조 장기화로 상가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경매에 나온 근린상가 건물도 인기가 늘고 있다. 지난 9일 인천지법에서 경매에 붙인 인천 서구 심곡동의 3층짜리 근린상가의 경우 54명이 응찰했다. 최종 낙찰은 감정가(3억 4938만 원)의 6배에 가까운 20억 원을 써낸 김 아무개 씨에게 돌아갔다.
대지면적이 96.3㎡(29.13평)에 불과한 이 상가에 감정가보다 무려 7배에 달하는 금액을 베팅한 것은 현재 부동산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다. 이 건물은 대학병원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입점한 약국 임대료가 상당하다. 경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학병원 앞 약국 건물은 ‘노른자위’로 꼽힌다. 실제로 이 상가의 월세는 1500만 원(보증금 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월 20일 대구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임야의 경우 응찰자가 128명에 달했다. 대지 778㎡에 감정가가 6613만 원이지만 낙찰가는 3억 9990만 원이었다. 낙찰가율이 무려 605%에 달한다. 2순위 입찰자는 3억 5000만 원을 써냈다. 이 임야에 응찰자가 몰린 것은 최근 뜨거운 대구지역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임야 인근에 연구 중심의 복합신도시인 ‘대구테크노폴리스’ 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2005년 지정된 도시자연공원구역이 해제될 예정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투자자들이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경매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부주의로 입찰액을 잘못 쓰는 등 피해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남부지법에선 ‘0’을 하나 더 쓰는 바람에 감정가 10억여 원의 7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을 받은 사례도 나왔다. 두 번 유찰 된 후 세 번째 경매에 붙인 강서구 화곡동의 4층짜리 근린주택(감정가 10억 6636만 원)으로, 낙찰액은 76억 3500만 원이었다. 차순위 응찰자가 써낸 가격 8억 8177만 원과 비교하면 76억 원이나 많은 액수다.
낙찰자 최 아무개 씨는 다음날 법원에 낙찰허가결정 취소 신청을 했다. 당초 그가 입찰가로 쓰려던 7억 6350만 원에 ‘0’을 하나 더 붙이는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구제 대상이 아니다. 이번 사례처럼 단순 변심이나 판단 실수인 경우 법원이 낙찰허가 결정을 취소하는 사례는 드물다. 최 씨가 이 물건을 포기할 경우 그는 입찰보증금인 6800만여 원(최저입찰가의 10%)을 내야 한다.
경북 안동시 수하동에 위치한 한 임야(4만 4399㎡)에서도 비슷한 실수가 있었다. 지난 1월 26일 안동지원 경매1계에 올라온 물건으로 감정가는 2억 2369만 원이었지만 낙찰가는 20억 원으로 낙찰가율이 894%에 달한다. 이 경매물건도 숫자 ‘0’을 하나 더 써낸 단순 실수의 대표적 사례다. 응찰자는 8명밖에 안 됐기에 경매를 지연하기 위한 고의적인 낙찰이 아닐 경우 오기에 따른 실수 물건으로 추정된다.
이창동 연구위원은 “이 같은 단순 실수로 보증금을 날리는 경우가 한 달에 한두 건씩은 꼭 나온다”며 “이외에도 경매시 입찰서류 기재실수 등도 잦은 데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