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류현진. 로이터/뉴시스
류현진이 시범경기 첫 등판이었던 샌디에이고전을 순조롭게 마치고 4일 후 경기를 따져보니 텍사스 레인저스와 원정 경기 등판이었다. 이날은 샌디에이고전의 2이닝이 아닌 3이닝. 투구수도 30개에서 45개로 늘어나는 시점이다. 만약 추신수가 출전한다면 한 번 또는 두 차례 정도 류현진과 맞붙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추신수의 상황을 체크해 보니 유동적이었다. 당시 레인저스의 제프 배니스터 감독은 지난 시즌 수술 경력이 있는 선수들을 특별 관리 중이었다. 프린스 필더, 미치 모어랜드, 추신수한테는 경기 출장보다 휴식을 권고했고, 하루 경기에 나서면 이틀을 쉬게 배려했다. 그런 시스템으로 날짜를 셈해보니 추신수는 다저스전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저스 경기 전날 라인업에서 빠져 있었고, 다저스 다음날이 선수단 전체 휴일이라 주전들이 대거 다저스 경기에 투입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기자들은 바빠졌다. 강정호를 취재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날아간 온라인 매체의 사진 기자는 애리조나를 떠난 지 4일 만에 플로리다에서 다시 애리조나로 날아왔다.
# 정작 추신수, 류현진의 반응은?
먼저 텍사스전 선발이 예정된 류현진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추신수와 신시내티 레즈 이후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는 처음 맞붙게 되는 상황이었지만, 정규시즌을 위한 ‘워밍업’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현진은 두 사람의 맞대결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데 대해 조금은 신경 쓰이는 듯, “상대 팀이, 상대 선수가 누가 됐든, 내가 던져야 할 공만 던지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18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3이닝 동안 3피안타 1볼넷 2탈삼진 3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추신수는 나름 기대를 나타냈다. 2년 동안 다저스의 붙박이 3선발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후배의 성장을 직접 타석에서 느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팀의 돌아가는 상황이 다저스전 출전이 확실시됐다. 기자도 원래는 16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이 경기를 보기 위해 항공편을 변경해야만 했다.
그러나 경기 전날, 추신수의 팀 상황이 이상했다. 제프 배니스터 감독이 특별 관리 대상인 3명을 모두 다저스 경기에 제외시킨 것이다. 그로 인해 세 선수는 다저스 경기 전날부터 다저스 경기 날, 다음의 휴식일까지 3일을 계속 쉬게 되었다.
그렇다면 배니스터 감독이 추신수와 류현진의 맞대결을 원치 않아 경기에서 제외시킨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추신수는 지난해 수술한 팔꿈치 부위에 약간의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타격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수비시 송구할 때 조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배니스터 감독이 이 사실을 알고 일부러 라인업에서 제외시킨 것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맞대결 없이 추신수는 더그아웃에서 5회까지 경기만 지켜봤고, 류현진은 예정대로 3이닝까지 소화한 후 경기를 마무리했다.
재미있는 부분은 경기장에서 보인 두 선수의 행동이다. 경기 전 불펜에서 몸을 풀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류현진은 텍사스 더그아웃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추신수를 찾았다. 시합을 뛰지 않는 추신수는 가장 늦게 더그아웃에 나타났기 때문에 경기 전 류현진을 만날 수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류현진이 1회말 레인저스 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을 때 추신수가 류현진을 불렀고, 류현진은 마운드에 오른 채 추신수를 향해 가볍게 인사하는 것으로 야구장 만남이 성사됐다.
# 경기 후 반응이 궁금하다
다저스 야수들의 잇단 실책으로 3점을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간 류현진. 볼 스피드는 이전 샌디에이고전보다 적게 나왔지만 빼어난 제구력으로 레인저스 타자들을 요리해갔다. 경기가 진행 중이었지만, 3이닝만 마친 류현진은 클럽하우스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일찍 인터뷰를 가졌다. 경기 내용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다가 추신수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나타냈다.
텍사스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추신수. 연합뉴스
“경기 전에 (추)신수 형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마운드에 올라가는 순간 신수 형이 불러서 인사했다. 신수 형이 이번 경기에 잘 쉬었던 것 같다. 괜히 시범경기서부터 만나 경기 외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진 않았다(웃음).”
그렇다면 추신수는? 5이닝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간(시범경기 때 주전 선수들은 대부분 5이닝에서 교체된다) 추신수를 찾았다. 기자를 보고선 “경기도 안 뛰었는데 물어볼 게 있으세요?”라며 빙그레 웃는다. 류현진의 경기를 지켜본 소감에 대해 물었다. 추신수는 “2년 전 신시내티 유니폼을 입고 만났던 류현진의 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평소보다 볼 스피드가 낮게 나왔지만 수비 실책에도 불구하고 마운드 운영 능력은 최고였다”는 소감을 전했다. 추신수는 다저스의 수비 실책만 아니었다면 류현진은 굉장히 잘 던진 것이라면서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타자들을 아웃시키는 경기 운영이 인상적이었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2년 만이지만 야구장에서 류현진 선수를 만난 소감에 대해선 “현진이가 다저스의 주축 선발 투수라는 게 자랑스럽다.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다저스-레인저스 경기가 열리기 전 류현진은 먼저 추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훈련 중이었던 추신수가 전화를 받지 못했다. 경기 끝나고 이번엔 추신수가 전화를 걸었다. 류현진이 받지를 못했다. 두 사람은 오는 25일 류현진의 생일을 앞두고 애리조나에서 한 차례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주축 선수로 성장했거나 성장하고 있는 코리언 메이저리거들의 애리조나 시범경기의 한 장면들이다.
LA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는 한국시간으로 오는 6월 16, 17일은 레인저스 홈구장에서, 18, 19일은 다저스타디움에서 4연전을 갖는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