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내부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일요신문 DB
IT업계에 종사했던 김 아무개 씨(47)가 강원랜드를 처음 찾은 것은 9년 전이었다. 운 좋게 첫 게임에서 30만원을 땄던 김 씨는 이후 용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생각에 종종 강원랜드를 찾고는 했다.
김 씨의 판은 점점 커졌다. 어느날 300만 원을 강원랜드에서 잃은 김 씨는 잃은 돈을 복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30만 원으로 제한되어 있는 베팅 금액 때문에 운이 좋아 복구를 한다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앵벌이’(베팅할 금액은 없지만 카지노 주변에서 손 빌려주기, 자리 맡아주기, 잔심부름을 하며 수수료를 받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의 손을 빌려 수중에 있는 돈을 전부 베팅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 씨는 모든 돈을 탕진했고, ‘앵벌이’를 고용하는 고객이었던 김 씨는 어느새 ‘앵벌이’들과 동료가 됐다. 그 뒤 김 씨는 고객들의 ‘앵벌이’ 노릇을 하며 강원랜드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한때 강원랜드는 자리싸움이 치열해 자리 하나에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이라는 높은 금액에 거래되기도 했다. 김 씨는 자리를 맡아주는 대신 적게는 5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받았다. 김 씨의 앵벌이 동료 중에는 앵벌이 수수료만으로 월 2000만~30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김 씨도 강원랜드 인근을 떠나지 않고 장장 9년간 도박중독자의 삶을 살았다.
김 씨가 단도박(도박을 끊는 것)을 결심한 계기는 ‘허무함’이었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혼기도 놓친 채 강원랜드에서 나이를 먹은 것에 만감이 교차했다. 김 씨는 스스로 강원랜드 측에 출입정지 요청을 하고 중독관리센터에서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김 씨는 상담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도박중독에서 회복되고 있었다. 회복자로 들어선 김 씨는 상담치료 중 강원랜드 도박중독센터로부터 하이원 베이커리에 입사추천을 해주겠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하이원 베이커리는 도박중독 재활의지가 강한 사람들을 상대로 창업과 사회로의 복귀를 도와주는 사업이었다. 강원랜드 측은 세계 최초의 도박중독자 재활치유 사업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었다. 하이원 베이커리 관련 설립 예산만도 단일 사회공헌사업 최대 규모인 38억 원 수준이었다.
김 씨도 도박중독자의 삶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사회복귀를 할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김 씨는 “하이원 베이커리에 입사하기 전 3년 근무 후 베이커리분야 창업을 하거나, 자신의 일을 찾아 퇴직할 수 있다고 들었다. 퇴직 시 창업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본인이 적금을 들고 강원랜드 측에서 일정부분 지원을 해주는 ‘희망펀드’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면접 후 지난해부터 하이원 베이커리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계약직 1년 근무를 하면 정규직 대리직급으로 발령이 나 연봉 2500만 원의 급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조건이었다. 김 씨는 “아직도 부모님은 내가 도박중독자였다는 사실을 모르신다. 처음 시작할 때 계약직 연봉이 1800만 원 정도였지만 평범한 사회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감안하고 시작했다. 강원랜드에서 앵벌이 생활을 할 때만큼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손으로 무엇을 시작했다는 생각에 빗질을 하는데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씨의 부푼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이원 베이커리에 먼저 입사했던 선배들은 “이쪽 방향으로 소변도 보지 않겠다” “똥밭에 굴러도 여기보다는 낫다”며 하나둘씩 퇴소하기 시작했다. 창업을 하거나 베이커리 관련 직종을 선택한 선배도 없었다. 선배들은 실체가 없었던 ‘희망펀드’에 당황해 하며 퇴직금만을 받고 하이원 베이커리를 떠났다.
강원랜드가 도박중독자 ‘희망드림지원프로그램’ 추진을 위해 건립한 ‘하이원베이커리’ 공장.
이어 김 씨는 1년 동안 참기 힘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왔다고도 주장했다. 김 씨는 “납품업무를 할 때는 혼자 사용했던 차량을 3명 이상 외출할 때 사용하려면 사측 직원을 대동해야 한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회사관련 물품을 구입할 때도 동료들이 임의로 살 수 없었고 상담실장이 동행해야 했다”며 “하이원 베이커리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 도박중독자라는 멍에가 있을 뿐 대기업이나 공직에서 10~3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로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며 하루일상을 절제된 시간으로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범죄자 취급하는 비정상적인 조치로 다들 비통함을 느꼈다. 정규직 전환과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아왔다. 지금은 지난 1년 생활이 허무할 뿐이다. 나는 계약직으로 일하든 정규직으로 일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하이원 측의 사과와 책임자의 사퇴 없이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하이원 베이커리 이탈자인 안 아무개 씨(51)도 “잔디밭에서 뒷짐을 지고 걷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행여라도 돌아올 불이익 때문에 부당한 대우가 있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며 “12년 도박중독 인생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생을 위해 하이원 베이커리에 입사했지만 그곳에서 느낀 모멸감은 재활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또 다시 노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하이원 베이커리 측은 이탈자들의 주장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하이원 베이커리 한 관계자는 “희망펀드는 기획과 컨설팅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하이원 베이커리 설립과 함께 시작될 수 없었다. 현재는 지난 2월부터 ‘희망펀드’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본인이 5년간 일정부분 펀드를 넣으면 강원랜드에서도 일정부분 창업지원금을 지원해 주도록 되어 있다”며 “도박재활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하이원 베이커리에는 도박재활전문가인 상담사가 항상 상주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직원들이 범죄자와 같이 취급하는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내부 자체 감사도 있었지만 이는 다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사항”이라며“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오해가 있어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 같다. 적어도 욕을 하거나 범죄자 취급하는 사람을 본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강원랜드는 도박중독 재활사업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의욕만 앞세운 운영 탓에 도박 회복자들에게 또 다시 ‘도박중독자’라는 낙인을 찍어 모멸감과 상처를 남겼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매년 수십억의 금액을 쏟아 부으면서도 실효성은 없는 ‘면피용’ 혹은 ‘생색내기용’ 재활사업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이원 베이커리 측은 “도박중독자들에게 세계 최초로 시행되는 재활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현재 내부적으로 정리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국도박피해자모임인 세잎클로버 정덕 대표는 “도박중독의 원인을 제공한 강원랜드는 도박중독자의 재활을 위한다면서 진정성 없는 하이원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의 제보를 통해 시정을 요구했지만 도박 회복자들을 다시 도박 중독자로 낙인찍으며 모멸감을 줬다”며 “강원랜드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강원랜드는 하이원 베이커리를 포함한 재활사업을 국가에 기부채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하이원베이커리 어떤 곳? 빵도 굽고 희망도 굽고 강원랜드는 하이원 베이커리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도박에 빠졌던 중독자가 직접 베이커리 생산과 판매를 맡는 적극적인 형태의 도박 중독 치유 프로그램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쏟아냈다. 강원랜드 측은 하이원 베이커리 공장 및 기숙사 설립 부지선정 및 설계, 건설업체 선정들을 거쳐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 7838㎡(약 2375평) 부지에 공장과 숙소, 체육시설 등을 갖춘 단지를 조성했다. 하이원 베이커리 참여자들은 “나는 세상과 나 자신에게서도 더 이상 도피할 것이 없었기에 마침내 여기에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희망공동체 철학을 제창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하이원 베이커리에서는 직업재활과 개인상담·집단상담을 병행하며 참여자들의 자립을 돕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세계최초라고 치켜세우며 야심차게 시작한 강원랜드 도박중독 재활사업은 세심하지 못한 운영과 사측과 참여자 간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하이원 베이커리 참여자였던 김 아무개 씨(47)는 “베이커리 업종으로 창업을 할 수 있을 만큼 고급기술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사장이 애로사항이 생기면 24시간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지만 참여자들의 전화는 받지 않고 사측을 통해서만 대화를 하려고 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 말을 하려 해도 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