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가 여성 속옷의 매력에 빠져든 건 2년 전인 2013년 6월경부터다. 동네 어귀를 지나가는 길에 이웃집 마당에 널린 속옷을 보고 뭔가에 홀린 듯이 집어 들고 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었다. 어디 버릴 수도 없었기에 그대로 들고 와 집안 창고 안에 있는 드럼통에 넣어버렸다. 하지만 죄책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속옷을 생각할 때마다 묘한 흥분이 일자 박 씨는 다음 범행을 계획했다.
날씨가 좋은 농사철에 동네사람들은 집집마다 대문도 잠그지 않고 논으로, 밭으로 나갔다. 때문에 박 씨는 이때를 노렸다. 서로 잘 아는 시골마을이다 보니 의심 받을 여지도 많지 않았다. 20대 여성이 사는 집에도 들어가고, 할머니가 빨아놓은 속옷도 훔쳤다. 널려있는 속옷만 보면 훔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훔친 속옷을 집안 창고에 차곡차곡 모았다. 호기심에 한 번 입어 본 속옷이 주는 쾌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때때로 남몰래 위아래로 ‘갖춰’ 입고 다니기도 했다.
박 씨가 이렇듯 ‘은밀한’ 범행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아내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얻게 된 장애 때문에 박 씨는 아내와 잠자리를 할 수 없었다. 박 씨 역시 약간의 지체장애가 있어 성욕을 풀긴 더 힘들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살길 수십 년. 우연한 기회에 박 씨는 ‘해방구’를 찾았던 것이다.
박 씨에겐 ‘구원’ 같았던 속옷 절도는 동네 여성들에겐 악몽이었다. 속옷을 훔치는 빈도가 늘어나자 동네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속옷 도둑을 잡기 위해 덫을 놓은 건 A 씨(21)였다. 아끼던 속옷이 자꾸 없어지자 안 되겠다 싶어 대문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했다. 박 씨는 이 사실을 모르고 다시 A 씨의 집을 찾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속옷이 또 없어진 것을 발견한 A 씨는 급히 CCTV를 돌려봤다. 녹화분에는 박 씨의 은밀한 일탈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피해자 다섯 명 모두가 박 씨와 친분이 있었지만 범죄는 별개의 문제였다. 결국 A 씨는 경찰에 CCTV 영상을 넘겼고, 50대 촌부의 범행은 막을 내렸다.
수사를 맡았던 전북 완주경찰서 관계자는 “(박 씨의) 아내가 오래전부터 장애가 있어 성관계를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속옷을 보면서 성욕이 생겼다고 진술했다”며 “모두 같은 마을에 사는 안면이 있는 관계라 박 씨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서로 민망해했다”고 전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페티시즘 엽기 사례 ‘하이힐 사정남’ 잡고보니 명문대 대학원생 여성의 속옷 외에도 스타킹, 하이힐 등에 집착하는 페티시즘 증세는 매우 끊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온라인에서는 “입던 속옷 3만 원에 판다”, “신던 스타킹 그대로 판다”는 등의 거래가 올라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여중고생이 올리는 이런 거래 글에는 판매를 문의하는 남성들의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리기도 했다. 지난 3월 25일 부산에서 붙잡힌 40대 속옷 도둑은 경찰에서 “차라리 교도소에 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약 한 달 동안 14장의 여성 속옷을 훔친 김 아무개 씨(42)는 비슷한 전과가 네 차례나 있었다. 어린 시절 잘못된 성적 각인으로 인해 속옷을 훔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중독 증세를 보였다. 김 씨는 경찰에서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급’ 속옷 도둑은 충남 논산에 사는 40대 농부였다. 2006년엔 무려 3500장의 여성 속옷을 훔쳐 2년간 복역한 뒤에, 다시 679장을 훔쳐 다시 구속됐다. 총 시가 4000만 원이 넘는 속옷을 훔쳤던 것. 이 남성은 출소 직후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2년 서대문구와 은평구 일대에는 ‘하이힐 사정남’이 등장해 여성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명문대 대학원생인 30대 남성은 문 밖에 벗어둔 여성의 하이힐에 사정을 하고 도망가는 방식으로 성욕을 해소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신발을 집에 가져가 사정을 하고 다시 갖다 놓기도 했다. 더 큰 범행으로 이어질까 두려워 이사를 간 피해 여성도 있었다. 2009년에는 에이즈에 걸린 택시 기사가 여성 속옷을 모으고, 남녀 할 것 없이 성관계를 갖고 동영상을 촬영해 보관해 충북 일대에 ‘에이즈 공포’가 몰아쳤다. 이 남성의 집에선 여성 속옷 100여 벌과 동영상 10여 개가 발견됐다. 이윤수 비뇨기과 원장은 “속옷이나 스타킹을 훔치는 성적 취향을 가진 남성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여성과의 성관계가 어려운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어려서부터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성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이들이 보이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또 성격적으로는 소심한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때문에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개인의 일탈을 즐기려 한다. 이윤수 원장은 “이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면 증상이 사라지기도 한다. 대부분 그게 어려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말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