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전환대출이 안정적 월소득이 있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자부담이 높은 제2금융권 대출자는 배제돼 우려가 나온다. 최준필 기자
지난 3월 24일 일본계 노무라증권은 정부의 안심전환대출 시행에 맞춰 한국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한국 가계부채 뇌관제거 전망 및 금융경제에 미칠 영향’ 보고서를 내놨다. 일개 증권사의 견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의 최대 증권사라는 점에서 간과하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노무라증권은 2008년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몰락한 미국 투자은행(IB)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한 곳이다.
노무라증권 보고서의 내용은 한국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2020년 초부터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골자다. 2014년 기준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92%가 이자만 내는 원금상환 유예 상품이다. 그런데 원금상환 유예기간의 만료가 2019년부터 빠르게 도래하게 된다. 또 장기 저성장과 노령화에 따른 근로소득 단절로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은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가계 순자산이 대부분 주택으로 구성돼 있어 빚을 갚을 수 있는 순금융자산이 늘어나거나 안정적 소득이 유지되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런데 한국 경제는 2020년 초까지 장기 저성장 또는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순금융자산이 늘어나거나 소득이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주택담보대출의 76%가 변동금리상품인 점도 부담이다.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 부담이 커진다. 그래서 원리금 동시상환 비중을 미리 높이는 노력과 함께 향후 금리상승에 대비해 현재의 저금리 혜택을 유지할 수 있는 고정금리 상품 비중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게 노무라증권의 논리다. 정부의 안심전환대출과 일맥상통한다.
노무라증권은 한국 정부가 가계부채구조 개선을 위해 이자만 내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50%로 하향조정하는 등의 조치를 2분기에 실시할 것으로도 예측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안심전환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조건완화로 가계부채 문제가 풀릴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익명의 한 채권펀드 매니저는 “한국판 서브프라임을 보는 것 같다”면서 “안심전환대출은 결국 주택담보채권을 상환능력이 있는 프라임모기지(우량채권)와 상환능력이 취약한 서브프라임으로 나누는 것인데, 결국 서브프라임 부문은 상대적으로 부 실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안심전환대출에는 상대적으로 이자부담이 높은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배제됐다. DTI 규제가 있어 원리금을 동시에 갚을 능력이 부족한 이들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결국 우량채무자들은 안심전환대출이라는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는 반면, 비우량채무자들은 ‘대홍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제2금융권 대출자 등에게까지 안심전환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안심전환대출의 부실화와 이에 따른 정부 재정부담 가중 우려가 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안심전환대출 금리는 시중금리보다 1%포인트 낮은 수준인데, 결국 금리변동이나 대손충당금 등 리스크 관리 비용이 덜 반영된 것”이라며 “금리가 오르면 역마진으로 은행의 손실부담이 커지고 이는 결국 보증자인 주택금융공사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원리금 동시 상환과 고정금리 대출의 특징을 가진 안심전환대출이 자칫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자만 내다가 원리금을 동시에 내면 아무래도 가처분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권영선 이코노미스트도 “가계부채구조 개선 노력은 필연적으로 원리금 상환을 늘려 단기적으로 민간소비에 부정적”이라며 “세계 경기둔화와 원화가치의 상대적 강세로 수출 증가율도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비와 수출 회복이 미약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3%에서 올해 2.5%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내수침체 장기화는 저성장 고착으로, 이는 다시 일자리 불안과 주택담보대출 부실 우려의 연쇄반응을 낳게 된다”면서 “결국 가계 가처분소득을 크게 늘어나거나 자산가격이 높아지지 않는 한 현재의 악순환을 끊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는 산업구조개혁과 인구구조 개선이라는 엄청난 과정을 겪지 않고는 이뤄내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한편 2000년 이전만 해도 원금상환 유예 대출상품은 주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첫 도입은 2003년 덴마크에서다. 이후 담보대출이 경제난을 유발시킨 미국과 스페인 등에 등장한다. 2004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에서 원금상환유예상품의 비중은 2%에 불과하지만, 2007년에는 22%로 급증한다. 이자만 내다보니 주택구입자들은 더 많은 대출을 받으려 했고, 이는 과도한 빚으로 이어졌다. 금융기관은 이자수입에 눈이 멀어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대출자들에게 계속 돈을 빌려줬는데,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게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