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이 팬오션 우선인수협상자로 선정된 지 두 달도 안돼 팬오션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하림 삼계탕 미국 수출 기념식(위)과 팬오션 선박.
‘팬오션소액주주권리찾기’ 카페를 처음 만들었고 현재 대표로 활동하는 오 아무개 씨는 “경쟁사이기 때문에 실사를 거부했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없다”며 “매물로 나온 은행을 은행이 사가듯이, 해운업의 전문성이 있는 경쟁사가 팬오션을 사야 시너지도 발생할 텐데 경쟁사라고 아예 실사를 거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본입찰 과정에서 점차 커졌다. 주식가치산정에 있어 매각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이 2500원에서 3500원 사이의 최저입찰가를 제시했으나 법원이 최저가인 2500원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결정한 2500원의 최저입찰가에다 최소치로 정한 유상증자 8500억 원의 금액을 계산해보면 법원 조건만 맞춰도 신규 입찰자는 58%의 주식을 갖게 된다. 법원이 지나치게 팬오션의 주식 가치를 낮게 산정하면서 인수자는 적은 돈으로 경영권까지 안정적으로 갖게 되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갖게 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생각했을 때 2500원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금액이라는 것이 소액주주카페의 중론이었다.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쌓여갈 때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든 일이 바로 감자설이었다. 지난 3월 2일 <머니투데이>는 ‘팬오션이 하림그룹과 인수 본계약을 체결하고 법원에 제출할 변경 회생계획안을 준비 중인데, 계획안에는 하림그룹의 회생계획을 따라 1.5 대 1의 감자가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팬오션 소액주주 카페에는 자신의 주식을 위임한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오 씨는 <일요신문>과 만나 “감자설을 퍼트린 주체가 하림그룹”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감자가 실제로 진행될 경우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는 주체가 하림그룹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도로는 하림그룹이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있는 팬오션을 현 주가보다 약 20% 저렴한 헐값에 매입했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주가를 떨어트리기 위해 하는 소리도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카페에는 자신의 주식을 카페의 이름으로 위임한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오 씨는 “팬오션의 소액주주 9만 7000명 중에서 현재 2700명이 카페에 가입했다”며 “현재까지 위임받은 주식수가 4000만 주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액주주카페는 이미 지분에서 대주주로 알려진 산업은행을 넘어섰다. 산업은행의 지분이 13%고, 소액주주 카페의 지분이 20%에 달하기 때문이다.
팬오션은 조만간 변경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액주주들은 변경안에 만약 감자가 포함된다면 부결시킬 의사가 벌써부터 확고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소액주주들은 카페에 하림 제품 리스트를 공유하면서 불매 운동을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5일 팬오션의 감사보고서가 나오면서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또 하나의 변화가 감지됐다. 팬오션이 지난해 실적을 매출액 1조 5550억 원에 영업이익 2522억 원이라고 공시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은 시가총액 7000억 원에 영업이익 2500억 원인 우량 회사를 헐값에 넘길 수 없다며 변경안 부결뿐만 아니라 아예 매각을 원점에서 재추진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만약 표 대결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다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오 씨는 “감자설이 나오는데도 하림그룹이 아무 대응도 안하는 산업은행과 법원 파산부가 더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자설에 대해 지난 27일 하림그룹 측은 “우리가 감자설에 관련돼 있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라며 “나중에 변경회생계획안이 통과된 후에는 공식적인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