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옴진리교의 집회 모습. 오른쪽이 아사하라 교주. 아래 사진은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 당시 모습. 둘 다 NHK 방송 화면 캡처.
색도 없고, 냄새도 없었다. 그러나 액체는 휘발성이 강해 공기 중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승객들은 급격한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하나둘씩 쓰러졌다. 입에 거품을 문 채 의식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무고한 시민 13명이 사망하고, 6300여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그 유명한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사건이다.
일본 신흥종교단체 ‘옴진리교’가 저지른 이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옴진리교는 이름만 바꿔 교세를 확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포함해 13명에게는 사형 판결이 선고되었지만, 아사하라가 가스 살포 지시를 인정하지 않은 탓에 사건의 진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충격의 테러 사건 그 후 이야기를 들어본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테러집단으로 기억되는 ‘옴진리교’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로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2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사건은 당시 피해규모도 컸지만, 생화학 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무기를 신자들이 자체 개발해 테러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모두를 경악케 했다. 이들이 살포한 ‘사린’은 맹독성 신경가스로 청산가리보다 500배나 독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덮친 옴진리교 본부 시설에는 사린 등 화학무기 제조 설비, 생물무기 설비, 그리고 이를 살포하기 위한 군용헬리콥터까지 발견됐다. 각 신자는 의사, 과학기술자 등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집단으로 군사조직과 같은 상하명령 체계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옴진리교를 믿는 자만이 최후 결전에서 승리해 천년왕국을 누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고 한다.
요가교실에서 출발한 옴진리교가 1만 1400여 명까지 신자수를 확보, 무장화 노선으로 돌진하던 끝에 일으킨 대사건이었다. 무려 16년에 걸친 재판 끝에 교주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쓰모토 지즈오) 등 주모자 13명은 사형, 다른 5명은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아사하라는 무슨 영문인지 1997년부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정확한 동기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다. 또한 사건의 핵심 담당자였던 ‘옴진리교의 2인자’ 무라이 히데오마저 체포 전 피살되면서 많은 부분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게 됐다.
일단 수사 결과에 따르면, 고학력의 신자들이 아사하라 교주에게 세뇌당해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신자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아사하라 교주가 ‘일본을 지배해 왕이 되겠다’는 망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끔찍한 테러를 계획하게 됐다는 것. 2011년 재판부는 “교단이 경찰의 강제수사를 막기 위해 사린가스를 제조하고,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사린가스를 살포한 점”을 인정, 사건 주모자들에게 극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관련 재판이 아직 다 끝난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도피했던 공범자 3명이 2012년 뒤늦게 잡혔기 때문이다. 이들이 17년이나 도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TV도쿄는 최근 특집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아사하라 사형수가 신자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더욱이 지금도 아사하라의 추종자들이 구치소를 맴돌고 있는 모습을 소개해 충격을 던졌다.
이와 관련, 릿쇼대학의 니시다 기미아키 심리학과 교수는 ‘옴진리교의 세뇌 수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먼저 교단은 요가교실을 가장해 가볍게 권유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수행을 체험하는 것처럼 속이지만, 이후 설법비디오를 계속 틀어주며 어두운 독방에서 감금한 채 생활하게 한다. 혹시 교리에 의문을 갖거나 현실 세계로 복귀하려고 하면, 고통을 느끼게 하는 장치도 심어놓는다. 즉, 세뇌자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때마다 전기충격 혹은 약물을 가해 결국 피세뇌자 스스로 인위적인 세계에 갇히게 만드는 방법이다.
니시다 교수는 “공포심을 이용하는 악질적인 수법”이라고 전하면서 “옴진리교 추종자들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라고 추측했다.
심각한 것은 1995년 법원 명령으로 해산된 옴진리교 신자들이 이후 ‘아레후’ ‘히카리노와’ 등으로 단체명을 바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사건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신자가 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공안조사청에 따르면, 현재 두 단체에서 활동하는 신자 수는 합계 1650명에 달한다. 보유자산은 약 60억 원으로 역시 증가 추세다. 최근에는 무료로 손금을 봐준다는 식으로 접근하거나 SNS를 통해 현실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부는 이들 단체가 ‘살상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감시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교주의 딸 마쓰모토 리카.
마쓰모토는 “가장 최근 면회한 것은 2008년인데,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면서 “당시 아버지는 실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마쓰모토가 아버지의 형을 낮추기 위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20주년을 맞아 ‘충격의 그날’을 되돌아보는 특집 방송과 기사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부상자 중 70%는 아직도 눈 등에 이상을 느끼고 있으며, 일부 피해자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신문은 “관련사건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이 2008년 통과되어 사망자 유족에게 2000만 엔(약 2억 원), 간호가 필요한 장애에는 3000만 엔(약 3억 원) 등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배상이 완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옴진리교는 피해자 측에 약 38억 엔(약 350억 원)의 채무를 졌지만, 지금까지 19억 엔(약 175억 원)정도를 배상했다”고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