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커스> 스틸컷(아래 작은 사진)과 불에 탄 촬영장 모습.
<서커스>의 제작기는 영화사상 유례없는 불운의 연속이었으며 재난의 도미노였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몰려온 듯했다”는 그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것은 단지 영화 현장에서 사고가 겹친 탓은 아니었다. 어쩌면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채플린 자신에게 있었다.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밀드레드 해리스와의 첫 번째 결혼 생활을 끝낸 채플린은 <키드>(1921)를 찍으면서 만났던 리타 그레이라는 여배우와 결혼한다. 1924년 결혼 당시 그레이의 나이는 16세. 채플린은 19살 많은 35세였다. 알려졌다시피 채플린에겐 롤리타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는 어리고 젊은 여성을 뮤즈 삼아 영화를 만들곤 했다. 첫 번째 부인 밀드레드 해리스는 12세 연하, 세 번째 부인 폴레트 고다드는 21세 연하였다. 마지막 부인 우나 채플린은 무려 36세 연하였는데, 채플린은 54세 때 18세인 우나와 결혼했다.
영화 <서커스>의 내용은 단순했다. 채플린은 특유의 ‘떠돌이’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는 우연히 어느 서커스단에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공중 곡예사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새로 온 줄타기 곡예사와 사랑에 빠지고, 채플린은 두 사람을 맺어준 후 홀로 떠난다.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정작 영화를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시련. 촬영 준비를 위해 지어 놓았던 커다란 서커스 세트가 강풍과 호우로 무너졌다. 촬영은 연기되었고, 1926년 1월에 힘겹게 크랭크인을 했다. 초반 촬영은 채플린이 줄 타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 장면을 위해 몇 달 동안 줄타기에 매달린 터. 곡예 신을 완벽하게 해냈다. 하지만 현상소의 실수로 한 달 동안 촬영한 필름을 모두 버리고 다시 찍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18세의 철없는 아내 리타 그레이였다. 당시 <서커스>의 여주인공 메르나 케네디는 그레이의 동갑내기 친구였고, 그레이가 <황금광 시대>(1925) 오디션을 볼 때 같이 왔었다. 당시 케네디는 뮤지컬 배우였고 영화엔 큰 관심이 없었다. <서커스> 촬영을 준비하던 시기, 여주인공을 찾던 채플린에게 케네디를 추천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레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 후회했다. 남편이 친구에게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쏟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황금광 시대>의 여주인공 조지아 헤일에게도 그런 질투를 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어린 나이였지만 <키드>에서 배우로서 채플린의 현장을 경험했기에 느낀 감정일 수도 있다. 채플린은 여배우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했고, 그 관계는 종종 연인 관계로 발전하곤 했다. 채플린의 아내였던 네 명의 여성은 모두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였다.
채플린 아내 리타 그레이(왼쪽)와 그녀가 질투한 <서커스> 여주인공 메르나 케네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채플린은 먼저 촬영된 필름을 비밀 장소에 숨겼다. 혹시 모를 재산 압류에 대비한 행동이었고, 이후 그의 행동은 매우 현명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때 결정타가 날아들었다. 미 국세청에서 채플린에게 소득세 미수분이라며 111만 3000달러를 더 내라는 통보를 보낸 것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에 몰린 채플린. 하지만 놀랍게도, 불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27년 1월 10일부터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다. 소송 자체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 강도는 예상 외로 셌다. 리타 그레이 측이 작성한 이혼 서류는 총 52페이지. 통상 서너 페이지인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볼륨이었다. 그 안엔 법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이혼 사유라면서 채플린에 대한 온갖 비난과 은밀한 사생활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1920년대 미국 사회에서 가장 더러운 이혼 소송은 시작되었다.
리타의 목적은 간단했다. 최대한 약점을 들춰내, 최대한 많은 돈을 뜯어내는 것. 채플린의 신경 쇠약 증세가 시작되었고, 이혼 서류는 ‘리타의 고소’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제본되어 암암리에 팔리기 시작했다. 여성 단체들은 불매 운동을 시작했다.
화재와 소송으로 10개월 동안 촬영을 접었던 <서커스>는 완성 자체가 불명확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결국 카메라는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시련이 남았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할 마차들을 모아 놓았는데, 촬영 직전에 사라진 것. 알고 보니 인근 지역의 대학생들이 캠프파이어를 한답시고 끌고 간 것이었고, 다행히 되찾아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서커스>를 자세히 보면 채플린의 두 가지 얼굴이 느껴진다. 10개월의 공백 이전과 이후의 표정이 사뭇 다른 것. 그 기간 동안 염색을 해야 할 정도로 무수한 흰머리가 났고, 알 수 없는 어둠과 슬픔이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