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 시즌 프로야구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전 시구는 더 큰 의미가 있다. 각 구단들이 시즌 개막을 준비하면서 팀의 특성과 성격에 맞는 시구자를 섭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정치인에서 연예인으로, 그리고 특별한 사연을 지닌 이웃으로. 시구자들의 면면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왔다. 사상 처음으로 다섯 개 구장에서 동시에 야구가 시작된 2015 KBO리그 개막을 맞아 역대 개막전 시구자들의 역사를 돌아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MBC의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다.
#개막전 첫 시구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
한국프로야구의 역사적인 첫 시구자는 대통령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MBC의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시구자로 나섰다. ‘각하’가 출현했으니 철통같은 경호가 펼쳐졌다. 당시 삼성 4번타자였던 이만수 전 SK 감독은 “대통령이 공을 던지실 때 경호원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심판 자리에 서 있었다. 시구가 끝난 뒤에야 김광철 심판위원이 자리로 들어왔다”고 기억했다. 대통령이 시구를 할 때 타석에 서 있어야 할 삼성 1번타자도 일찌감치 결정됐다. 삼성 서영무 감독이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3루수 천보성을 선택했고, 구단은 천보성의 신상명세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미리 제출했다. 천보성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대통령 경호원에게 몸을 수색 당했다. 배트도 경호원이 보관했다가 천보성이 타석에 들어서기 직전에 건네줬다. 혹시라도 배트를 들고 대통령에게 달려 들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구심이었던 김광철 전 심판위원장도 “화장실까지 경호원이 배치돼 있고, 구심의 공 주머니까지 검사했다”고 귀띔했다. 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던진 공은 원 바운드가 됐다. 대통령은 그때 “한번 더 던져도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장은 “누가 감히 안 된다고 할 수 있었겠나. 그래서 한 번 더 던졌고, 그 공은 잘 들어왔다”고 했다.
2003년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제공=KIA타이거즈
#정치인 시구 행렬 한동안 지속
초창기 프로야구 개막전의 단골 시구자는 정치인이었다. 1983년은 이원경 당시 체육부 장관이 대표 시구자로 나선 데 이어 1984년에는 3개 구장에서 체육부 차관, 서울시장, 인천시장이 각각 시구를 맡았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도 서울시장, 대구시장, 부산시장, 전라남도지사 등 홈 구단 연고지역 단체장들과 황선필 MBC 청룡 구단주 등이 시구했다. 한 원로 야구인은 “당시에는 시구라는 이벤트 자체가 개막전이나 올스타전, 포스트시즌처럼 특별한 경기 때만 마련되는 행사였다. 주인공들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정치인들의 보여주기 식, 혹은 과시용 이벤트로 많이 활용됐다. 대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만 총장이 나와서 연설을 하듯, 초창기에는 지역 단체장들이 한 번씩 거쳐 가는 관례처럼 여겨졌다”고 회상했다.
1989년 해태 개막전에서 연예인 최초로 시구를 한 강수연(왼쪽)은 정장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다. 조진웅과 한고은은 2013년 롯데 개막전에서 시구와 시타를 나눠맡았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이렇게 견고했던 시구 문화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긴 것은 1989년이다. 영화배우 강수연이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광주구장에서 첫 공을 던지면서 개막전 시구자의 새 지평을 열었다. 당시 국내 배우로는 최초로 해외 4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월드스타’로 등극했던 인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다른 야구인은 “요즘은 운동화에 유니폼 상의까지 입고 시구해야 좋은 복장으로 인정받지만, 그때 강수연 씨는 아래위로 격식을 차린 정장을 입고 시구를 하러 나왔다”며 “미모의 여자 연예인이 시구하는 게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선수들이나 관중의 반응이 정말 열화와 같았다”고 귀띔했다. 또 그해 OB는 구단 제1호 성인회원인 이국신 씨를 시구자로 내세워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개막전 시구를 맡기는 승부수를 띄웠다. OB는 이듬해인 1990년에도 성인회원 대표 박경갑 씨를 시구자로 올렸고, 1994년에는 어린이회원 우수연 씨를 앞장세웠다.
물론 정치인들의 시구 행렬도 한동안 계속됐다. 1995년까지는 강수연과 앞서 언급한 팬 세 명을 제외한 모든 개막전 시구자가 정치인으로 채워졌다. 또 원년부터 2009년까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정치인이 개막전 시구를 맡았다. 특히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 안상영 전 부산시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인촌 전 문화체육부 장관, 염보현 전 서울시장, 김양배 전 광주시장, 이해봉 전 대구시장, 홍선기 전 대전시장 등은 2회 이상 개막전 시구자로 나섰다.
#2000년대 들어 시구자 다채로워져
현아가 2010년 3월 28일 롯데 개막전에서 시구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다른 종목 스포츠스타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특히 2월에 열리는 동계올림픽에서 맹활약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금메달리스트들은 3월 말이나 4월 초에 시작하는 프로야구 개막전의 시구자로 각광받았다.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안상미가 다른 종목 선수로는 최초로 개막전 시구자로 낙점됐고, 2010년에는 밴쿠버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삼총사인 이상화(잠실)와 이승훈-모태범(문학)이 나란히 프로야구 개막을 기념했다. 이상화는 4년 뒤인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다시 금메달을 딴 뒤 그해 잠실구장 개막전에서 시구로도 2연패를 달성했다. 비 정치인 출신 가운데 개막전 시구를 2회 이상 한 인물은 OB의 레전드 박철순과 이상화뿐이다. 이 외에도 기계체조 선수 이주형(2001년), 프로농구 선수 김승현(2005년), 육상 단거리 선수 김하나(2010년), 태권도 선수 김유진(2014년) 등이 뜻 깊은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를 경험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개막전 시구 스토리텔링 ‘티타늄 다리’ 애덤킹 감동 스트라이크!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언제부턴가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도 야구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티타늄 의족을 달고 사는 한국계 입양아 애덤 킹은 2001년 4월 5일 잠실구장에서 시구를 해 화제가 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2011년에는 프로야구 30주년을 맞아 원년 우승팀 두산(당시 OB)이 특별한 순간을 선사했다. OB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이끌었던 ‘레전드’ 투수 박철순, 포수 김경문, 외야수 김우열이 함께 팬들 앞에 섰다. 박철순이 시구, 김경문이 시포, 김우열이 시타를 각각 맡은 것이다. 프로야구 초대 최우수선수(MVP) 박철순과 주장 김우열, 우승 포수 김경문이 올드 유니폼을 입고 호흡을 맞추는 모습에 두산 팬들의 박수가 쏟아진 것은 물론. 한국시리즈 MVP 김유동도 이 자리에 찾아와 30년 전의 추억을 되새겼다. 두산은 이날 함께 한 레전드들에게 팀에서 다시 제작한 우승반지를 선물했다. OB 원년 우승 멤버 김우열, 박철순, 김경문(왼쪽부터). 그런가 하면 재정난으로 끝내 문을 닫아야 했던 현대는 마지막 시즌인 2007년 수원구장 개막전에서 최후의 사령탑 김시진 감독과 현대 팬클럽 회장 이호준 씨, 현대 어린이회원 정상준 군을 한 자리에 모았다. 끝이 예정돼 있기에 슬프지만, 그래서 더 뜻 깊은 ‘마지막 시구’였다. [은] |
올 시즌 달라지는 것들 일요일엔 낮·밤으로 ‘보고 또 보고’ 다섯 구장에서 동시에 야구를 한다. 화면 하나를 4등분해서 전 경기를 모두 틀어놓고 봐야 직성이 풀리던 골수팬들도 이제 어쩔 수 없이 한 경기는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2015년의 프로야구는 모든 게 최대다. 3월 23일 열린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10개 구단 감독과 선수.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2015 KBO리그가 3월 28일 사상 최초로 전국 다섯 개 구장(잠실·목동·대구·광주·사직)에서 막을 올렸다. 제10구단 kt 위즈가 1군에 합류하면서 이제 팀당 144경기, 전체 720경기를 치러야 한다. 지난해(팀당 128경기, 전체 576경기)보다 훨씬 많아졌다. 등록된 선수 수만 628명. 당연히 프로야구 출범 이후 최다 인원이다. 이미 시범경기부터 달라진 스케일을 예감했다. 지금까지는 모든 관중이 무료로 입장했지만, 올해부터는 주말 경기에 한해 구단 자율에 맡겼다. 일부 구단은 실제로 입장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많은 관중이 몰렸다. 정규시즌은 표 전쟁이 더 치열하다. 많은 팬들이 오랫동안 개막만을 손꼽아 기다려와서다. 특히 올 시즌에는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이 생겼다. 일요일 경기가 오후 2시에 시작되는 4월과 5월, 9월에도 한 경기는 야간 경기(오후 5시 시작)로 편성해 하루 종일 야구를 볼 수 있게 하자는 제도다. 실제로 4월 5일 목동 SK-넥센전부터 9월 6일 잠실 롯데-LG전까지 총 10경기가 야간 경기로 특별 편성됐다. 하루 다섯 경기 체제를 맞이하는 KBO가 야심 찬 흥행몰이 카드를 내밀었다. 무엇보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순위 싸움이 예상된다. 각 팀 전력이 막상막하이기 때문은 아니다. 올해부터는 ‘4강’이 아니라 ‘5강’에 들어야 한다. 승률 4위 팀과 5위 팀 사이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신설됐다. 4위 팀에 당연히 어드밴티지를 준다. 1승, 그리고 홈에서 경기할 권리다. 4위 팀은 1승이나 1무만 먼저 따도 준플레이오프에 나간다. 5위 팀은 적지에서 무조건 2승을 다 따내야 한다. 4위 팀이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야구는 아무도 모른다. 강화된 스피드업 규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에는 경기 평균 3시간 27분이 걸려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올해 KBO는 그 시간을 10분 단축하는 게 목표다. 이닝 중 투수 교체시간이 2분 45초에서 2분 30초로 줄었고, 타자 등장음악을 10초 이내로 제한했다. 볼넷이나 몸에 맞는 볼이 나오면 1루로 일단 뛰어간 뒤 보호대를 풀어야 한다. 가장 주목받았던 규정은 ‘타자는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 최소한 한 쪽 발을 배터 박스 안에 둬야 한다’는 내용이다. 시범경기 때는 이 룰을 어길 때마다 스트라이크를 줬다. 투수가 공을 던지지도 않았는데 삼진을 당하는 해프닝이 벌어져 현장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결국 정규시즌 때는 스트라이크 대신 벌금 20만 원을 부과하기로 규정을 바꿨다. 일단 시범경기 평균 시간은 지난해(3시간 1분)보다 12분 빨라진 2시간 49분으로 나타났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