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 의원이 입수한 한국석유공사 내부 문건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8년 4월 당시 청와대 김동선 지식경제비서관과 도경환 행정관 등은 석유공사 송병진 신규사업1처장을 불러 석유공사가 추진하던 쿠르드 유전개발과 관련된 진행현황을 보고받은 뒤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같은 달 지식경제부 윤상직 자원정책개발관(현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역시 자신의 집무실로 석유공사 김성훈 신규사업단장 등을 불러 쿠르드 유전개발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쿠르드 유전개발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2008년 2월 14일 방한한 쿠르드 바르자니 총리와 면담한 직후 석유공사 등이 쿠르드 지방정부와 체결한 MOU를 계기로 추진된 것으로, ‘MB자원외교 1호’로 불린다. 당시 “10억 배럴 이상의 원유 확보”, “10조원 규모 건설 수주” 등의 제목으로 언론을 통해 크게 홍보되기도 했다.
당시 쌍용건설, 극동건설, 두산건설, 유아이이엔씨 등이 참여한 SOC컨소시엄은, 쿠르드 정부의 ‘보증’으로 사업비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으나 쿠르드 정부의 신용도로는 국제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가 없었다. 결국 자금을 조달한 방법이 없자 SOC컨소시엄 참여사들은 모두 컨소시엄을 탈퇴하고 컨소시엄은 해체된다.
석유공사 측은 이 과정에서 최초 MOU에서 자신들이 부담하기로 한 2억 달러 외 추가적인 금액부담은 물론 대출보증 등에 대해서도 확고한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하지만 2008년 11월 최종적으로 체결된 계약에서는 2억 달러의 서명보너스는 물론 19억 달러의 SOC 사업 모두 석유공사가 책임지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게 된다.
최 의원은 “바로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지경부가 개입했다”라며 쿠르드 사업 관련 청와대와 회의한 석유공사 내 보고문건을 공개한 것이다.
쿠르드 사업 관련 청와대와 회의한 석유공사 내부 보고문건 중
석유공사 측은 당시 회의에서 SOC 자금조달 부분과 관련해 “재무적인 문제는 SOC측에서 독립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임을 전달했다. 하지만 청와대 김동선 비서관 등은 “지난 2월 MOU 체결시점부터 쿠르드지역 유전개발과 건설공사가 연계된 대형 프로젝트로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인수위가 관여한 사업으로 알고 있다”라며 “자금조달 문제가 해결되어야 유전개발사업도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대통령께서는 쿠르드 MOU를 언론보도와 같이 유전개발-SOC사업이 연계되어 대형광구를 확보하게 된 사업으로만 인식하고 있으며 ‘자금조달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음’을 보고받을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최민의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문제를 삼지 않도록 쿠르드 사업을 진행할 것을 종용한 것은 석유공사에 대한 압박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별 해외자원개발사업의 구체적인 진행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의원은 “‘대통령이 자금조달이 잘 안 된다는 보고를 받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청와대 지식경제비서관실의 발언은 일개 공기업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압박으로 ‘대출 보증도 안서겠다’던 석유공사가 2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모두 부담하는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석유공사의 쿠르드 사업은 2008년 11월 계약 체결 이후 5개 광구에 대한 탐사를 벌였지만 3개 광구(바지안, 쿠시타파, 상가우노스)의 경우 상업성이 확인되지 않아 지분을 반납하거나 사업을 종료했다. 석유공사는 3개 광구의 지분을 반납하는 대신 7억 달러를 지급하고 생산량이 확인된 또 다른 2개 광구(샤이칸, 아크리비질)의 지분을 확보하려 했으나 지경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SOC 규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등 최근까지도 쿠르드 사업을 둘러싼 혼선은 끊이지 않고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