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전두환 정권 당시 주미 공관원의 주 임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찰이었다는 정황이 정부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30일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문서 1595권(26만여 쪽)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 중반기인 1984년 당시 미국 체류 중이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공관원들의 사찰기록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부는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부령)에 따라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80년 7월 전두환 신군부세력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내 교민들을 대상으로 반독재 강연회 등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비밀 해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외무부는 김 전 대통령 미국 도착시점인 1982년 12월 23일부터 정부에 동향을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대통령이 미국 현지에서 한 기자회견 내용이나 강연 중 발언은 정리돼 정부에 보고됐다.
김 전 대통령의 집권 의지나 귀국시점에 관한 내용은 특히 자세히 보고됐다. 1983년 1월 7일 기자회견 중 나온 “정권을 잡는다는 뜻에서의 정치활동 생각은 없음. 그러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계속 일하겠음”이란 발언의 요지나, 3월 10일 하버드대 강연 당시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망은 없음” 등 발언 등이 정부에 즉각 보고됐다.
발언 내용 외에 김 전 대통령이 접촉한 인사를 비롯해 동선까지 점검 대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하버드대 부설 연구소에 제출한 졸업논문을 입수해 정부에 보냈고 친필 성명서도 외무부로 보내졌다.
전두환 정권이 김 전 대통령의 행보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스티븐 솔라즈 하원의원 등 미국의 거물 정치인들이 김 전 대통령을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외무부는 미국의 거물 정치인들이 김 전 대통령과 친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허사로 돌아간 정황도 나타난다.
일례로 당시 류병현 주미대사는 84년 4월 바니 프랭크 의원을 면담해 김 전 대통령이 신병치료차 미국에 왔기 때문에 귀국 후에는 남은 형기를 마치는 게 당연하다고 설득했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외무부는 케네디 의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 언론인, 보좌관 등의 인맥까지 연구해 접근을 시도했지만 면담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두환 정권은 84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외무부 장관에게 “김대중은 선동가이자 폭력주의자이며 그의 국내 추종세력은 소수의 과격분자에 불과하다”는 등의 요지로 케네디 의원을 설득하라고 지시했지만,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의 정부 비판 발언이 이어지자 전두환 정권의 태도는 점점 강경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방미 초기에는 귀국을 늦추라는 지시를 현지 공관에 하달했지만 이후에는 김 전 대통령 귀국 시 재수감시키겠다고 경고하는 등 강경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외무부 이원경 장관은 1984년 12월 3일 주미 대사에게 보낸 전보에서 “당초 정부는 내년 중 적당한 시기에 김대중이 귀국한다면 미국정부가 갖게 될 부담 등도 고려해 재수감이 아니고 일반적인 활동을 허용할 방침이었지만 이번 김대중의 헌정질서 파괴적 언동을 접하고서는 완전히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김대중이 굳이 귀국한다면 부득이 귀국 즉시 재수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