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발간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왼쪽 작은 사진)에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인용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이 전 대통령이 어떻게 열람했는지를 두고 여러 추측이 돌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관리 논란의 발단은 그의 회고록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발매된 회고록에 최소 ‘28건’ 이상의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책에 인용하면서 ‘불법적으로’ 공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민단체들은 이 전 대통령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같은 이유로 <대통령의 시간>은 법원에 판매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란 대통령 퇴임 시점에 대통령이 접근 제한을 지정하는 기록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면 본인과 대리인 외에는 15년에서 30년 동안 아무도 볼 수가 없다. 이외의 사람이 열람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나 관할 고등법원장의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기록관리 업무수행상 필요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의 장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회고록에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쓰인 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비밀로 된 내용을 누설했다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처벌받을 수 있고, 국가 기능을 저해하는 기밀을 누설했을 땐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지정기록물을 열람한 뒤 이를 공개한 것이 아니다”며 부인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부인에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는 국가기록원에 이 전 대통령의 사저에 온라인 열람 장치를 설치한 시기, 이 전 대통령과 국가기록원이 주고받은 공문서, 이 전 대통령 혹은 대리인이 방문한 횟수 혹은 열람한 자료 등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그런데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사용했는지는 비공개하기로 결정해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보공개센터는 대통령 기록관장으로부터 “설치일 2013년 2월 24일, 요청한 대통령명 이명박 대통령, 설치장소 사저”라는 답변을 받아 새로운 의혹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불어 이 전 대통령 측의 석연치 않은 해명에도 논란이 가중됐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이러한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할 장치를 사저에 두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지만 결국 기기 설치가 확인된 것.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지난 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열람장치가 없다고) 보도됐다고 듣고 해당 기자에게 ‘그런 취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며 “국가기록원이 설치한 열람 장치는 관련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미 공개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통령기록물 열람 장비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진 이 전 대통령의 논현동 사저.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 기록물 불법 열람 의혹은 지난 2008년 봉하마을에 ‘이지원’(e知園)을 가져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청와대 자료유출로 망신 줬던 이 전 대통령이 사실상 똑같이 행동한 것 아니냐는 논란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파장이 컸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보면 일단 이 전 대통령 측의 ‘열람’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010년 이명박 정권 당시 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 기록물 열람 관련 온라인 기기 설치가 법으로 명시됐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전 대통령의 사저에 온라인 기기가 설치된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지원 설치와는 다른 상황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기기 설치가 합법화 됐다고 하더라도, 그 기기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이 전 대통령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온라인 기기에서는 열람이 불가능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사저에서 ‘불법’으로 열람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과 국가기록원 측은 법적으로도 시스템 자체적으로도 일반 기록물 이외에는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의 경우 사저의 온라인 기기로는 열람이 불가능해) 국가기록원에 이 전 대통령이나 지정한 대리인이 갈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지난 3월 30일 국가기록원도 사저에서는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의 해명자료를 냈다. 국가기록원 측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의해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에 전직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위한 장비는 설치돼 있으나, 비밀기록물과 지정기록물을 온라인으로 열람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는 물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통령 지정기록물 열람은 반드시 대통령 기록관을 방문하여 열람만 가능하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정보공개센터 측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자서전에 대통령기록물로 의심되는 내용이 너무 많이 적혀 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 직접 열람한 기록은 국가기록원 측에서 공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정보공개센터 측은 “회고록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추정되는 것들이 포함돼 있어 국가기록원에 이 전 대통령 측과 주고받은 수·발신 공문서를 정보공개청구 했지만 국가기록원은 정보부존재 통지를 했다”며 “만약 직접 방문해 열람을 했다면 방문 전에 공문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논현동에 있는 이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기록물이 있는 세종시의 국가기록원과 성남시의 대통령기록관을 수고스럽게 몇 번이고 방문하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열람이 불가능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고의든 실수든 간에 열람을 했고, 그것이 자서전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수·발신 공문서가 없다는 의혹에도 언제 방문하는지 약속을 잡는데 꼭 공문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화나 이메일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보공개센터가 직접 방문했다는 증거로 방문 기록이나 열람 기록을 공개하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앞서의 관계자는 “누가, 언제, 얼마나 방문했는지 등은 개인정보이자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을 침해할 수 있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