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해 그 돈 중 일부를 해외 도박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검찰의 칼날이 동국제강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국제강 본사.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3월 28일 평온하던 토요일 아침, 서울 수하동 동국제강 본사인 페럼타워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장세주 회장이 해외법인 등을 통해 수백억 원의 회사 돈을 빼돌리고 이 중 일부를 해외 원정 도박에 사용했다고 보고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이다. 이날 압수수색은 수사관 60여 명이 투입돼 동국제강 본사 및 계열사, 장 회장 자택 등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28일 오전 9시 30분께부터 시작된 압수수색은 날을 넘겨 29일 새벽 2시 30분이 돼서야 끝이 났다.
검찰은 무려 17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을 통해 동국제강의 회계장부와 세무 및 국내·외 대금 거래 자료,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증거인멸 시도가 의심되는 직원 2명이 현장에서 긴급체포되면서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는 전언이다. 장 회장과 그의 가족, 주요 경영진 등 10여 명은 출국금지됐으며, 검찰은 참고인 신분으로 회사의 재무 회계와 해외 사업 실무자 6명을 조사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장 회장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장 회장이 조세회피처에 세운 6개의 법인을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장 회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초특급 카지노호텔에서 상습 도박을 벌이는 과정에서 동국제강 미국법인(DKI)이나 본사 건물인 페럼타워의 관리 계열사인 페럼인프라 등에서 조성된 비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검찰은 동국제강이 일본 등지의 현지 법인을 통해 철스크랩(고철) 등을 수입하면서 대금을 실제 가격보다 부풀려 100억 원대 차액을 조성하고 이를 장 회장 일가의 조세회피처에 마련된 계좌로 빼돌렸는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검찰은 미국 수사당국과도 공조해 동국제강 법인과 계열사, 장 회장 일가와 해외법인의 계좌 조사에도 착수했다.
검찰은 수사 착수 이전 국세청과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동국제강 관련 세무 자료를 넘겨받았으며, 미국 당국에도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국세청은 지난 2011년 동국제강을 대상으로 무려 8개월에 걸쳐 동국제강의 비자금 의혹 및 역외 탈세 혐의에 대해 강도 높은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로 국세청은 동국제강에 2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했지만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동국제강의 경우 사업 구조상 고철이나 선재 등의 구매 과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다”며 “지난 2011년 세무조사 때 미국 당국과의 정보 교류를 통해 해외 법인의 거래 내역 자료 등을 바탕으로 추징금을 부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지난 2000년 금융감독원에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가 적발돼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회사가 무상증자를 한다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해 2억 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였다. 지난 2004년에도 장 회장은 회사 예금을 일가친척들의 대출 담보로 사용하고 회사 돈으로 개인채무를 갚은 혐의(특경법상 배임 및 횡령)로 불구속 기소됐다. 유죄가 확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2007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번 동국제강 사건을 맡은 곳이 올해 초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 등을 전담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신설된 공정거래조세조사부라는 점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동국제강의 일감몰아주기 의혹도 수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동국제강이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과정에서 실적을 부풀리거나 거래 대금을 허위로 계상해 회사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밖에 검찰은 장 회장이 해외 법인 등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 중 일부를 정·관계 로비 등에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비자금은 대부분 장 회장 일가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 용처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첫 대기업 총수 회동에 참석한 것을 비롯해 2008년 대통령 브라질 순방에도 동행하는 등 이명박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바 있다.
한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장 회장은 지난해 2299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에 허덕이는 동국제강에서 14억 2500만 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장 회장을 향한 도의적인 측면에서의 비난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