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 대문호가 남긴 질문이 우리 사회에 던져졌다. 설립 한 달을 맞은 ‘장발장은행’ 얘기다. 인권연대에서 설립한 장발장은행은 벌금형을 선고 받고 돈을 내지 못해 감옥으로 향하는 이들을 위해 벌금을 빌려준다. 이자는 없다. 거치기간은 6개월. 1년에 걸쳐 분납하면 된다. ‘너무 인간적인’ 이 은행을 두고 일각에서는 말이 많다. ‘좀도둑을 미화하지 말라’는 비난부터 ‘형벌의 범죄 예방 기능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사회 곳곳의 ‘미리엘 주교’들의 손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장발장은행 홈페이지 캡처. 대출 신청서에는 “혹시 대출을 못 받더라도 이러한 제도가 있어 다행”이라는 등 감사의 문구가 빼곡하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비를 벌어 생활해왔습니다. 사장님이 월급을 주지 않아 노동청에 신고했는데, 그걸 괘씸하게 여겼는지 일하면서 챙겼던 1만 6000원짜리 쿠폰을 문제 삼아 절도죄로 신고했습니다. 벌금 70만 원이 없어 교도소에 갈 처지입니다.”
열아홉 살짜리 여학생의 호소는 절절했다. 인권연대 사무실에 30㎝ 높이로 쌓인 서류 뭉치에는 저마다의 딱한 사정들이 담겨 있었다. 아이 셋을 둔 20대 어린 엄마부터, 기초수급자로 근근이 생활을 하다 한 순간의 실수로 벌금형을 받은 60대 남성까지. 연령도, 사연도, 벌금형을 받게 된 이유도 다양했다. 많아야 200만 원 남짓의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를 들어가야 하는 처지라는 것만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주변에 100만 원 없어서 감옥에 간 사람 있어요?”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기자에게 물었다. 오 국장은 “그런 사람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죽어서야 사회의 관심을 받는다”고 말했다. 장발장은행은 단돈 몇 십만 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태어났다.
장발장은행이 생긴 계기는 인권연대에서 진행하던 ‘43199’ 캠페인이다. 43199는 2009년에 돈이 없어 노역장에 수감된 사람의 숫자다. 벌금형은 징역형보다 가벼운 징벌임에도 집행유예가 없고, 한 달 안에 현금으로 벌금을 완납해야 한다. 또한 일수벌금제(재산에 따라 벌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를 시행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 국장은 “국회의원 한 사람이라도 나섰다면 바뀌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변화는 더디고, 그 사이 ‘장발장’은 계속 생겨났다”고 회상했다.
처음 장발장은행 사업을 시작했을 때 ‘1000만 원 정도만 모금해서 몇 명만 돕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기엔 장발장들이 너무 많았다. 아르바이트가 끊겨 고시원 방세도 밀린 중에 길에서 잠든 취객의 2만 원을 훔쳤다가 벌금 90만 원을 받게 된 20대 청년, 남편의 가정폭력을 못 이겨 무고죄를 저지른 20대 엄마…. 눈감고 넘어갈 수 없는 사연들이 밀려들었다. 문의 전화를 걸자마자 울먹이며 ‘제발 도와달라’고 말하는 이들을 다독이는 게 사무실 직원들의 일과가 됐다. 너무 많은 상담전화가 밀려드는 바람에 활동가들은 성대결절에 걸려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한 달 만에 65명이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은 1억 1300만 원가량. 지난 3월 31일에도 5차 대출심사를 통해 18명을 선정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공동대표는 “대출심사를 할 때마다 참 곤혹스럽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이 있어 누구는 되고, 안 되고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발장은행은 8명 남짓한 법대 교수, 변호사, 종교인 등의 인사가 모여 대출심사를 한다. 매번 1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려들어 대출심사 회의는 저녁에 시작해 새벽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출자를 다 뽑고 나서도 심사위원 한 명의 “그래도 한 번 더 봅시다”는 말 한마디에 서류를 다시 펼쳐든다.
장발장은행의 재원은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어디에 널리 홍보를 한 것도 아니지만 기부금은 한 달 만에 1억 원이 넘게 모였다. 기부를 한 사람도 600명에 달한다. 정치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장발장은행의 뜻을 높이 산 시민들이다. ‘너무 적어 죄송합니다’라는 이름으로 1만 원을 송금한 사람, 생색도 내지 않고 1200만 원을 한꺼번에 보낸 사람 등 후원자도 가지각색이다. 억울하게 죽은 남편을 기리기 위한 10주기 천도재에 쓸 돈을 송금한 아내도 있었다.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주겠다고 나선 곳도 있었고, 대출 관리에 필요한 시스템을 무료로 설계해준 곳도 나타났다.
어렵게 모인 돈이기에 대출자의 상환 의지와 계획을 꼼꼼하게 따진다. 대출 신청자 사연의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각종 증명서를 요구한다. 신청서에는 상환계획을 명시하게 했다. 원칙은 6개월 거치기간 후에 1년에 걸쳐 분납하도록 했지만, 사정에 따라 분납 기간이 길어질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홍세화 대표는 “거치기간이 아직 한참 남았지만 2일 첫 번째 대출금 납입을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최대한 빨리 갚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다른 이들의 대출 신청서에도 “돈을 빌리게 되면 원금뿐 아니라 후원금도 보태서 내겠다”, “혹시 대출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런 제도가 있어 다행”이라는 등 감사를 담은 문구가 빼곡했다.
사회에서 ‘미리엘 주교’의 온정도 중요하지만, ‘자베르 경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일각에서는 국가 형벌권을 가볍게 보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오 국장은 “장기간에 걸쳐 벌금을 나눠 갚으며 오히려 반성할 기회를 더 오래 갖게 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먹튀’ 우려에 대해서도 오 국장과 홍 대표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 받은 도움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홍 대표의 말이다.
“설령 돈을 갚지 않더라도 장발장은행을 이어갈 것인지 여부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 아직 온정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회는 바뀔 거라고 확신한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