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6주년 기념으로 만든 소녀시대숲. 이종현 기자
‘신화숲’, ‘소녀시대숲’, ‘동방신기숲’….
팬픽(팬이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해 지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름 같지만 실제로 있는 곳이다. 신화숲 1호는 서울 강남구 개포4동에, 2호는 도봉구 쌍문동에 있다. 소녀시대숲과 동방신기숲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강공원 안에 나란히 조성됐다. 순전히 팬들의 모금활동을 통해 꾸며졌다.
벤처기업 트리플래닛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스타숲 프로젝트’는 팬클럽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 50개가 넘는 숲이 조성됐거나 조성이 진행 중이다. 시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고, 스타의 이름도 알릴 수 있으니 1석2조다. 2012년 7월 아프리카 남수단에 ‘2NE1숲’이 조성된 것을 시작으로, 국내에는 스타 숲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숲에는 팬들이 기금을 모아 조성한 숲이라는 표지판이 걸려있고, 나무마다 스타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달려있다. 팬들은 이곳을 찾아 스타의 상징색깔 리본을 나무에 걸어놓거나 ‘인증샷’을 찍기도 한다. 숲을 만드는데 드는 최소 모금액은 500만 원부터다. 동방신기 팬들은 4000만 원을 모아 최고액을 기록했다.
팬들은 스타들의 취향을 ‘저격’해 숲을 꾸미기도 한다. 동방신기의 팬클럽은 상징인 빨간색의 홍매화를 심어줄 것을 주문했다. 하정우의 팬들은 식재 가능한 나무 리스트를 뽑아 하정우에게 직접 골라줄 것을 요청했다. 트리플래닛 관계자는 “팬들이 암암리에 더 크고 예쁜 숲을 꾸미고자 모금액을 두고 선의의 경쟁을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제는 흔해진 ‘쌀화환’도 사실 팬클럽이 만든 문화다. 행사 때마다 의미 없이 소진되는 화환 대신 쌀을 기부해 이웃을 돕고, 행사도 기념하자는 취지다. 쌀화환을 시작한 건 장수 아이돌 그룹 ‘신화’의 팬클럽 ‘신화창조’다. 지난 2007년에 열린 신화의 멤버 신혜성의 단독 콘서트에서 팬들은 쌀화환을 만들어 소외계층에 기부했다. 신화창조는 콘서트마다 라면, 연탄 등 생필품을 모아 스타가 지정하는 기관에 기부한다. 쌀화환은 이제 팬클럽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스타의 주요 행사 때마다 등장하는 기본 아이템이 됐다. 콘서트나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는 수십 톤의 쌀화환이 등장한다.
때론 스타의 말 한마디에 팬클럽이 선행으로 뭉치기도 한다.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은 생일마다 많은 ‘조공’을 바치는 팬들에게 선물 대신 좋은 일에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팬들은 스타의 생일을 기념일로 삼아 기부에 나섰다. 지난해 생일(8월 18일)에는 루게릭병 전문병원 건립을 위해 ‘승일희망재단’에 818만 원을 기부했다. 그룹 ‘2PM’의 멤버 준호는 2012년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을 만나러 에티오피아에 다녀오면서 트위터를 통해 “식수펌프가 있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계기로 전 세계 팬들은 힘을 합쳐 2600만여 원을 모아 에티오피아에 식수 펌프를 선물했다.
스타가 한류를 타고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팬클럽의 기부문화도 덩달아 퍼져나갔다. ‘동반신기’의 멤버 정윤호의 생일인 지난 2월 6일에는 중국, 일본, 미국에 있는 팬클럽 회원들이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돕는 사업에 나섰다. 배우 이민호의 칠레 팬클럽인 ‘미노스칠레’는 아프리카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성금 1700달러(약 186만 원)를 기부했다. 또한 칠레 파타고니아 지역에 큰 산불이 났을 때도 이민호의 이름으로 수백 그루의 나무를 기부해 ‘이민호 숲’을 만들었다. 중국의 ‘미노즈차이나’ 역시 윈난성 지진현장에 이민호의 이름으로 라면과 생수 등의 구호물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열성적인 팬 덕분에 전 세계에 배우의 이름을 한 번 더 알린 셈이다.
박유천의 팬들이 흑산도에 개관한 ‘박유천 도서관’.
스타의 이름을 딴 도서관 만들기 사업도 대세다. ‘JYJ’의 멤버 박유천의 팬들은 섬마을에 ‘박유천도서관’을 개관했다. 한 곳은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또 하나는 장산도에 있다. 박유천의 팬클럽은 현금 1000만 원과 책 6600여 권을 기증하고,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영화관을 대신하는 등의 선행을 실천했다. 이민호의 중국 팬클럽 역시 중국 저장성 안지와 내몽고자치구에 도서관을 건립했다.
팬들의 기부활동은 주로 ‘삼촌팬’, ‘누나팬’을 위주로 이뤄진다. 대표적인 선행 팬클럽 ‘블레싱유천’의 구성원은 30대 이상의 여성들이다. 2010년 1500만 원 상당의 기부금을 모아 소외계층 아동을 도왔던 것을 시작으로, 4년 넘게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운영자 이미영 씨는 “엄마 회원이 대부분이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장근석의 팬클럽 ‘크리제이’는 지난해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수상할 정도로 공로를 인정받았다. 크리제이 운영자 홍정아 씨는 “중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팬들도 있다. 격월로 30명씩 모여 봉사활동을 나간다”고 전했다.
기부활동은 팬클럽이 똘똘 뭉치기 위한 전략으로 쓰기도 한다. 선행을 통해 연예인과 팬클럽 이름을 알리면서, 팬들의 ‘팬부심(팬+자부심)’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누리는 것이다. 한 배우의 팬클럽 회원은 “기부 활동을 하고 회원의 단체사진과 함께 정산보고를 올리면서 팬클럽 분위기도 좋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