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으로의 매각반대 연대투쟁에 나선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4개사 근로자들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 앞에서 2차 공동 상경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근로자들의 의견을 배제한 삼성그룹의 일방적 매각결정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이처럼 분명 갈등은 벌어졌는데 삼성과 한화 어느 한 곳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게 문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위로금을 줄 법적 근거도 없다. 만약 대규모 위로금을 주게 되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SDI 등 주식자산을 한화에 매각하는 계열사 주주들로부터 회사의 이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는 삼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 확고하다. 한화 관계자는 “거래를 매듭짓기 전에 삼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4사는 한화 측의 현장 실사도 막고 있어서 경영권 인수 절차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팔리지도, 안 팔리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황인 셈이다. 4사의 직원 수는 7000여 명에 달한다. 코닝처럼 1인당 6000만 원을 준다면 4000억 원이 넘는 현금이 필요하다. 매년 조(兆) 단위 이익을 내던 삼성코닝과 달리 4사의 경영실적은 초라하다. 4사의 지난해 경영실적은 매출 13조 1585억 원에 228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이익이 7728억 원이나 줄었다.
빅딜 자체가 어려운 문제다 보니 삼성은 일단 빨리 팔아 치우려 하고, 한화는 혹 달린 상황에서는 받지 않으려고 하면서 양측간 이견이 노출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삼성종합화학 대주주인 삼성물산과 삼성SDI는 한화로의 주식매각 계약내용 일부를 변경했다. 그런데 삼성 측 공시에는 주식처분예정일이 4월 3일, 한화 측 공시에는 6월 말로 달리 표기됐다. 양측 모두 실제 처분날짜가 변경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분명한 입장 차이다. 결국 2일 한화는 삼성 측의 이 공시에 대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확실히 선을 그었다. 매각되는 4사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일단 빨리 팔아 공을 넘기고 싶어 하고, 한화는 위로금 문제를 둘러싼 직원 반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사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은 사측에서 약 2500만 원의 위로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의 현금보유고는 지난해 말 기준 약 3200억 원이다. 삼성토탈의 최대주주인 삼성종합화학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3200억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2000여 명의 직원에 2500만 원씩 지급해도 500억 원이면 된다. 물론 직원들은 턱 없이 낮은 금액이라며 거부하고 있지만, 일단 위로금 제시가 이뤄진 만큼 추가적인 협상이 예상된다. 실제 2일께에는 사측 제시금액이 3000만~4000만 원 선까지 올라갔다는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삼성테크윈이다. 직원수가 5000명이 넘는데 지난 연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채 2000억 원이 안 된다. 대규모 위로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삼성전자가 돈을 보태면 될 듯하지만 쉽지 않다. 직접 돈을 보태면 배임 논란이 일 수 있고, 사업구조조정을 하면서 위로금을 주는 선례가 될 수 있다. 삼성테크윈이 차입을 해서라도 위로금을 마련할 수 있지만, 상장사여서 두 화학회사와는 경우가 좀 다르다. 돈 많은 삼성전자야 매각대금이 줄어드는 것을 감당할 수 있지만, 삼성테크윈 일반 주주들은 현 경영진이 기업가치를 훼손했다며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된 후 삼성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4사 매각 외에도 앞으로 또 다른 인수합병이 있을 여지는 충분하다. 이건희 회장 때는 몰라도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는 M&A 때 위로금을 지급하는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전례가 생기면 M&A 협상과정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M&A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 부회장에게 ‘전례’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4사 가운데 한 곳에 근무 중인 한 간부는 “삼성과 한화 모두 이번 딜은 깨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삼성은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한화도 김승연 회장 경영복귀 후 거둔 가장 큰 성과라는 점에서 포기가 어렵다.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이지만, 결국 묘안은 클라이맥스에서 나오지 않겠느냐”라고 내다봤다.
물론 위로금을 요구하는 직원들의 부담이 없지는 않다. 지난해 직원평균 급여는 삼성테크윈이 7500만 원, 삼성토탈이 8400만 원이다. 고임금을 받는 직원들이 돈 문제로 갈등을 일으킨다는 사회적 비판이 일 수도 있다. 삼성과 한화 관계자는 모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듯하지만 어차피 깰 수 없는 딜이고, 물밑 협상도 벌어지는 만큼 결국엔 타협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일각에서는 삼성테크윈이 방산업체인 만큼 파업 등으로 조업차질이 빚어지면 정부에서 개입, 갈등을 중재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방산사업부 직원들의 파업은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다른 사업부의 파업이 이뤄진다면 방산부분에도 타격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