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검찰은 언론 등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과 자신들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 중 겹치는 부분을 찾아내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박 전 수석의 혐의를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검찰이 지난 2일 수사 대상을 두산그룹으로 확대한 것도 이 같은 방식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란 후문이다.
또 당초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해선 언급을 자제했던 검찰이 두산그룹 수사를 공식화하면서 “(혐의 추가 여부는) 수사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힌 것도 박 전 수석의 혐의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이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는 박 전 수석이 무리하게 직권남용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그를 통해 받은 수혜는 또 무엇인지, 중앙대에 준 특혜가 누구의 경제적 이득으로 돌아갔는지, 중앙대와 교육부, 두산그룹 외에 또 다른 연루자는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대학교 총장을 지낸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비리수사가 그와 중앙대학교-두산그룹의 ‘커넥션’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입구와 두산타워 전경. 우태윤·박은숙 기자
#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 자료 이미 확보한 듯
서초동 내에선 검찰이 이미 지난번 압수수색을 통해 박 전 수석의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중앙대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 통합 특혜 의혹과 중앙대와 적십자간호대 합병 특혜 의혹, 전통음악 및 창작 국악 보급 등을 목적으로 청와대 퇴직 후 설립한 뭇소리재단의 운영비 등을 횡령한 의혹에 대해선 사실관계 확인이 거의 끝났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박 전 수석에 관한 첩보를 입수한 후 내사를 진행해온 만큼 속도감 있게 사실관계가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뭇소리재단 공금 횡령 의혹의 경우 지난해 내사를 진행한 서울남부지검이 관련 자료를 최근 서울중앙지검에 모두 넘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팀이 박 전 수석의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에 대해선 거의 확실하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며 “남은 과제는 박 전 수석이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특혜를 줬는지 그 배경을 파악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중앙대 특혜의 배경에 두산그룹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무엇보다 박 전 수석이 청와대에서 퇴직한 뒤 1년여 만인 2013년 3월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엔진의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 전 수석이 청와대 재임 시절 중앙대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 통합 및 적십자간호대학 인수 과정에서 교육부에 압력을 넣은 것에 대한 두산그룹의 대가성 인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두산은 2013년 말 기준으로 사외이사에게 평균 5800만 원 상당의 연봉을 지급했다. 박 전 수석이 올해 3월까지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이사회에 참석한 횟수는 8차례로 알려졌다.
박범훈 전 교육문화수석, 이재오 새누리당 국회의원.
검찰이 두산을 예의주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박 전 수석이 청와대 재임 시절 대형 쇼핑몰인 동대문 두산타워의 상가 두 곳의 임차권(전세권)을 부인 명의로 취득했기 때문이다. 두산타워가 2009년과 2014년, 5년 주기로 상가 임대분양을 했고 2011년에는 정기분양 시기가 아니었던 점을 감안하면 두산그룹이 청와대에 몸담고 있던 박 전 수석에게 사실상 ‘건물 로비’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일각에선 제기하고 있다.
박 전 수석의 부인 장 아무개 씨(62)가 2011년 분양받은 두 상가는 각 면적이 16.20㎡(약 1.22평)로 한 곳당 분양가가 1억 6500만 원이었다. 평균 수익률은 연 12%를 상회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전 수석은 임명 직후인 2011년 4월 <관보>에는 이 상가를 신고하지 않았지만, 이듬해 3월 부인 몫으로 건물을 신고했다.
검찰은 박 전 수석의 장녀(34)가 나이나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중앙대 예술대 교수로 정식 채용된 것도 두산그룹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박 전 수석의 차녀가 용인대 교수가 된 것도 두산그룹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김정행 대한체육회 회장이 용인대 총장이었고,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김 회장 전에 대한체육회 수장을 맡았던 사실을 감안한 것이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기업에 관계된 사람이 중앙대 재단에 있으니깐 수사를 안 할 수 없다”며 “두산그룹 전체로 확대되지는 않겠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결국 박용성 회장 측에 이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박 전 수석이 무리하게 직권을 남용했고 그에 대한 대가로 사외이사, 큰딸 교수 채용, 두산타워 임차권 등이 주어졌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추론했다.
검찰은 이렇듯 박 전 수석과 두산그룹 간 대가성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 수사 초기부터 재단 소속 회계 및 경리 담당 실무자들을 연일 소환조사하고 있다.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인 만큼 검찰이 박 회장과 박 전 수석을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가 현재로선 이 사건의 최대 관건이다. 이 경우 박 전 수석의 혐의는 직권남용과 횡령에 이어 알선수재(포괄적 뇌물죄) 혐의가 더 늘어나게 된다.
# 문체부 외압 등으로 확대 가능성도
박 전 수석이 이명박 정부 실세이며 현재 여당 내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과 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의원 또한 이번 수사의 타깃이라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 의원은 중앙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가뜩이나 포스코 수사 등 사정 드라이브가 이명박 정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이 정설로 굳어진 터다.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의 비리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이 3월 27일 중앙대학교를 압수수색하고 압수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검찰은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 전 수석이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거나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내면서 외연을 상당히 넓힌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권한 밖의 일까지 감행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지 정치권 로비 등을 통해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여타 부정한 행위를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현재로선 박 전 수석, 그리고 그와 관련된 고위 공직자, 기업 관계자 등으로 수사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이 의원의 이름이 나오는 건 박 전 수석과 친분관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와 경쟁해야 하는 친박계의 의도된 펌프질일 수 있다”며 “검찰 수사 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관련 의혹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정치인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은 아니더라도 이번 사건이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미 박 전 수석이 문체부 등에 압력을 넣어 정부 사업에서 특정인 또는 단체에 이권을 고려한 정책을 수립토록 하거나 특혜를 준 의혹 등이 제기된 데다, 이번 사건 수사 흐름이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두산그룹에 대해서도 수사 초기에는 매우 소극적인 입장이었다가 일주일 만에 적극 수사로 선회한 바 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들 중에서 확실한 자료가 있는 것들에 대해선 들여다보지 않고 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두산그룹을 수사하겠다고 한 것처럼 어떤 자료가 얼마나 축적돼 있느냐가 결국 수사 방향을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의 이 같은 입장에 따르면 박 전 수석이 뭇소리재단의 중앙국악연수원 부지를 편법으로 이전 또는 소유한 의혹이나 두산그룹에서 지원금 1200억 원을 유치해 수림장학연구재단으로 출연한 배경, 국립전통예술고를 국립학교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 등이 모두 수사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다른 수사팀 관계자는 “사실 검찰 입장에서는 이 사건의 경우 언론에 보도되지만 않았다면 천천히 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라며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비리백화점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의혹이 제기된 박 전 수석의 실체를 파헤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자신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