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의장을 지낸 미국 집권당의 거물 정치인이 서울 한복판에서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또다시 국내외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한국·일본 정부의 입장은 명료하다. 한국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과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일본은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위안부 문제를 놓고 양국의 견해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과 국민들이 어떻게 되어야만 해결됐다고 생각하겠느냐는 것 또한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2일 청와대에서 펠로시 원내대표 등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90세에 가까운 고령임을 감안할 때 이 문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며 시급성을 상기시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에 <일요신문>은 대한변호사협회 일제(日帝)피해자특위에서 활동하면서 일제 피해자들에게 법률지원을 하는 등 일제피해 문제에 오래 천착해온 양정숙 변호사를 만나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한 견해를 들었다.
사진=양정숙 변호사
-지난해 4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문화포럼이 주최한 ‘기억을 넘어 미래로-일본군 위안부 해법을 모색한다’ 세미나에 양 변호사가 토론자로 참석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자신들의 범죄로 인정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강제로 모집됐다는 점 등을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하며, 비슷한 피해를 당한 대만 등과 국제연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아베총리는 지금도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부인하고 있는데, 일본이 어떤 식으로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하나?
“일본은 이 문제에 관해 입장을 계속 바꾸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을 할 때는 일본국가의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은 다 끝났다고 주장했고, 1993년 고노담화에서는 불법행위 자체를 인정했다. 그래 놓고 지금 와서 아베총리는 고노담화가 잘못됐다며 이를 수정·번복하고 있다. 일본정부 입장을 뒤집는 것이다. 일관성 없이 입장을 번복하는 것만 봐도,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일본은 그간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을 펴왔나?
“한국정부에서 사죄하라고 하면 일본 아베정부는 처음에는 위안부 모집에 군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국제여론이 들끓자 슬그머니 민간업자가 인신매매한 것이라고 일보 후퇴한 주장을 한다. 결국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과 일본이 일 대 일로 싸워서는 더 이상 진행이 어렵다. 결국 피해국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 중국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갈수록 강경한데 한국 정부는 입장 변화가 별로 없다.
“위안부문제를 한국은 1980년대부터 제기했고, 중국은 최근 제기했다. 일본이 항복하면서 중국 내에 두고 간 일본 재산이 많았다. 그것에 대해 일본이 반환청구를 할까봐 중국이 조용한 상태였는데, 요즘 남경학살 등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서 활발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대만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대만은 일본의 경제 원조를 많이 받았다. 홍콩은 대만과 같은 입장이다.”
- 일본정부가 메이지시대 근대화 산업 시설물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오는 6월 하순 독일 본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매우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근대화 산업시설이라는 게 결국 탄광, 조선소 같은 위험시설이다. 가스 폭발사고도 있었고 갱도 붕괴로 사망사고도 많았던 위험지역이다. 이런 시설에서 실제 인한 사람은 일본인보다 식민지에서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한국인은 6만 명 정도가 동원됐다. 이 중 사망했거나 생사불명인 분들이 많다.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2012년 소송을 냈다. 일본 근대화시설을 만들었던 일본 기업들에 의해 강제 징용돼 일했던 피해자들 가운데 미쓰비시에 동원됐던 분들이 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 이겼다. 일본정부에서는 오히려 이런 사실을 희석하거나 무마하려고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했던 시설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물밑작업을 한 것 같다.”
사진=수요집회 1000회째를 맞은 지난 2011년. 이날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 제막식과 함께 일본의 사죄를 다시 한번 촉구했다.
-당시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문화유산’으로 덮어 숨기려는 꼼수인가?
“그렇다. 세계문화유산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을 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인류가 대대로 보존하자는 취지인데, 일본에서 등재를 추진 중인 근대화 산업시설은 이런 취지와는 무관하게 비인도적인 만행이 저질러졌던 곳이고, 인권이 유린됐던 곳이다.
-일본이 등재시키려는 시설 28곳 가운데 40%가 일제강점기 강제 징집 피해자들의 한과 눈물이 서린 곳이라고 한다. 독일은 슈레더 총리가 직접 나서서 “나치정권이 저지른 전쟁과 대학살을 상기할 의무가 우리의 현행 헌법에 포함되어 있다”라고 사과했다. 일본은 어떤가?
“독일에서 아우슈비츠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과, 이번에 일본이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추진하는 것은 목적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독일은 역사를 반성하고 전쟁범죄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것인데, 일본은 과거 만행 자체를 부인한다. 일본군위안부, 강제 징용 희생자들에 대한 범죄를 부인하면서 산업화시설이라 우긴다. 등재를 추진하는 취지 자체가 자기들이 저지른 인권유린을 반성하는 차원이 아니다. 한 마디로 등재 의도가 독일과는 정반대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저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저지른 불법행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 사죄와 피해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불법상태가 계속 유지돼 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에 의한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한 국가차원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민간차원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다른 나라들과 연대해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고, 한국 정부차원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반대운동을 벌여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센터 위원들은 일본 정부 말만 듣게 돼 있다. 한국 측 희생자들이 세계문화유산센터에 부당성을 호소할 통로는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진상을 알려야 한다.”
- 정부 차원에서 외교력을 발휘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강경한 대처가 필요하다.”
-일본에서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내용을 교과서에 넣겠다고 했다.
“후손들이 지나간 역사를 정확히 인식하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과거 일본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기억하게 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인들을 비인격적으로 다룬 것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깨우쳐줄 수 있다. 교육이야 말로 똑같은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후세들을 위해 중요한 일이다.”
-한국의 역사교육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현재를 지탱하고 미래를 지향하려면 과거를 보면 된다. 과거에 대한 인식의 토대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에 잘못됐던 역사를 계속 묻어둔다면 국가 간 관계개선이 있을 수가 없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미래를 향한 이웃 나라로서의 동반자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발뺌하고, 부인하고 지난일이라고 묻어두자고 해서는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
-일본 변호사들은 위안부 문제 등 자국의 과거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나?
“내가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일본 여성 변호사들에게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 피해구제에 관심이 많고 피해자들을 도와주려 한다’고 했더니, 그 중 한 일본 여성변호사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1995년 처음 들어봤다’고 하더라. 1995년 세계여성대회에서 반복해서 ‘Japanese(일본의)’가 언급되서 들어봤더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군대 성노예)’문제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일본 여성변호사들은 위안부와 관련해서 역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1995년에 비로소 알게 되서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피해자 인권회복을 위해 한국 변호사들과 같이 일하게 됐다. 그래서 2010년 한일변호사 공동선언도 발표하게 됐다. 일본 지식인들도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모르고 있었다. 일본 대다수의 국민도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한다.역사가 사실 그대로 교육이 되었으면 이렇게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정부도 문제지만 일본 지식인들의 역사인식이 한심하다.
“그렇다. 일본 대다수의 국민들은 물론 지식인들도 일본군위안부, 강제징용자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일본 국민들은 ‘한국정부가 잠자코 있다가 왜 수십 년이 지나서, 얘기를 꺼내나,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다 해결된 것 아니냐, 한국인들은 국제간 협정도 부인하고 뒤집는 것이냐‘하는 식이다. 그래서 한일양국 국민들의 인식차이가 큰 것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