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4월 1일 광주에 방문해 4·29 재보선에 나서는 조영택 후보를 지원했다. 문 대표가 광주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아요?”
한 정치권 관계자가 기자에게 대뜸 던진 질문이다.
“한 몸 아닐까요?”
“오히려 그 반대죠.”
“어떤 뜻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능성이 하나도 안 보이는 선거라도 명분이 되면 떳떳하게 나가서 지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요즘 문재인 대표를 보면 그 반대인 것 같아요. 명분이 없어도 꼭 이기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이게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차이죠.”
최근 문재인 대표의 관악을 재보궐 선거에서의 동교동계 지원 요청 논란을 보면서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가 너무 상황논리에 빠져 자신의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단 문 대표의 ‘상황논리’를 살펴보자.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아무리 이상을 얘기해도 현실에선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계파로서 DJ계 보스는 없지만 호남 정서가 있긴 하다. 그걸 표상하는 게 화요모임이고 그런 점에서 동교동계는 상징성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표가 동교동계를 버리고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의 호남 정치 분포는 동교동계와 박지원 의원 계 등으로 나뉘어 있다. 문 대표로서는 양측 모두 껴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한 세력이 이탈한다면 총선 때 야권의 표가 사분오열되기 때문이다. 문 대표로서는 마뜩치 않아도 일단은 포용하는 쪽으로 가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핵심 당직자 역시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로서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당의 본류가 호남이니 호남을 껴안아야하는 게 당연하다. 문 대표도 통합을 강조해 왔으니 이것도 통합의 과정으로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가깝게는 재보궐, 멀게는 총선을 앞두고 당 대표로서 당연히 통합의 행보를 해야 한다는 현실논리가 새정치연합과 친노그룹에 두루 퍼져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했는데 동교동계와 손잡는 게 뭐가 어떠냐”며 노골적으로 반문하는 친노그룹 관계자도 있다.
하지만 문 대표가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동교동계와의 관계 설정을 고려했다면 다른 해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소 “정치인에게는 서생적인 문제의식과 상인적인 현실감각의 조화가 중요하다”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는 관악을 재보궐 선거에서 동교동계 지원 논란을 겪은 문재인 대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가 이번에 보여준 동교동계에 대한 손 내밀기는 상인적인 현실감각의 발현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일각에서는 “서생적인 문제의식이 더 결여된 소탐대실의 선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여기서의 ‘서생적인 문제의식’이라는 말은 문 대표가 동교동계를 어떤 문제의식으로 바라보고 있느냐는 말과도 통한다. 재보궐 선거 승리를 위해 명분(구시대 정치와의 결별과 새정치로의 쇄신)을 잠깐 접어두고 협력을 해야 하는 사이냐, 그렇지 않으면 새정치를 열기 위해 구시대 정치와의 과감한 단절을 선언해야 하느냐의 문제의식이다. 정치권에서 이번 문 대표의 동교동계 구애에 대해 ‘서생적인 문제의식’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도 ‘탈 여의도 정치’와 새정치를 위한 쇄신을 하는 데 앞장을 서야 할 문 대표가 오히려 선거를 앞두고 구시대 세력과 연합을 하는 ‘정치공학적’ 선택을 했다는 데 있다. 오히려 당 일각에서 “동교동계와 호남 민심은 다른데, 문 대표가 동교동계와 박 전 원내대표의 ‘몸값 높이기’에 휘말린 측면이 있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실 동교동계와 호남 민심은 엄연히 다르다. 한 친노성향의 의원은 이에 대해 “실제 호남인들은 권노갑 박지원이 찍으라면 찍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DJ 정권 때 단물 빼먹은 사람들이고 우리는(비 동교동계) 사비 털어가며 DJ를 끝까지 지킨 사람들인데 우리가 언제까지 그들의 오더를 따르느냐는 반감이 있다. 마치 동교동이 모든 걸 좌우하는 것처럼 언론에 장식되는데 실제로는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밑바닥 호남은 동교동 거부정도가 더 세졌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호남민심=동교동계’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상황에서 문 대표가 선거공학적으로 접근, 동교동계의 손을 덥석 잡으려한다는 것은 일의 선후가 잘못됐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사실 친노그룹과 동교동계의 구원은 오래된 이야기다. 친노그룹은 동교동계와는 이미 지난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결별한 ‘남남’ 사이다. 동교동계는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창당을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믿는다. 그 전에 양측은 대북송금 특검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박지원 의원은 “특검 때문에 DJ가 투석을 시작했고, 나도 감옥에서 13번 수술을 받았다. 내 눈이 이렇게 된 것도 특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동교동계가 문 대표의 지원요청에 대부분의 구성원들이(3월 31일 화요모임에서 거수로 전원 ‘지원 반대’를 할 만큼) 거부정서를 보이는 것도 친노의 배신행각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교동계 일각에서 문재인 대표의 ‘호남 홀대’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문재인 대표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여기에 문 대표의 수순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 대표가 총선 승리와 대선 ‘재수’를 앞두고 통합 행보를 진정성 있게 보이려 한다면 동교동계와도 큰 틀에서 사과와 화해의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표가 그런 행보를 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문재인과 호남은 안 맞는다. 심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문재인이 반성문 써야 된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재인이 호남을 홀대하고(여기에는 문재인 대표가 참여정부 민정수석을 할 때 호남 인물들의 중용을 반대했다는 말들도 붙어다닌다. 주로 ‘비노’ 진영에서 이런 분석이 나온다) 대북송금 특검 그런 것들에 대해 크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런데 문재인은 그런 것에 반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문재인의 정서와 호남의 정서가 물밑에 깔려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재보궐 지원 논란 과정에서 문 대표와 동교동계는 서로 어정쩡한 봉합을 통해 협력 관계를 이뤄냈다. 이는 문 대표가 목전의 선거 결과에 연연한 일종의 ‘비겁한 타협’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당장의 전투에 집착하다보면 큰 전쟁에서 승리를 놓칠 수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의 차이가 무엇인 줄 이제 알겠죠?”
“….”
“정치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싸움이 아니라 명분을 쥐기 위해서 하는 싸움이 돼야 한다는 게 두 사람의 차이점이죠.”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