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관악을에 출마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왼쪽)가 10일 개최한 선거대책위 출범식에 문재인 대표와 권노갑 고문이 참석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로 인해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 김대중 정부 핵심 인사들이 결국 구속됐고 동교동계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배신’이 뼛속 깊이 사무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의 경우, 그해 연말 공판에서 검찰에 의해 징역 20년이 구형됐고, 재판부는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도 양측 갈등의 큰 변곡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이었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당내 신주류가 주도한 열린우리당 창당이 사실상 ‘노무현의 작품’이란 동교동계의 따가운 시선이 있었고, 결국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갈라졌다.
평행이론도 아니고 그로부터 정확히 12년이 지나, 또 양띠의 해가 됐다. 새정치연합과 같은 색깔인 푸른 양의 해(을미년)를 맞은 2015년. 2·8 전당대회를 필두로 동교동계와 친노 진영의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전당대회 며칠을 앞두고 불거진 ‘룰 변경’ 논란 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박지원 후보 사이에 새로운 ‘감정의 골’이 추가됐는데, 박 후보는 “친노의 반칙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중도 사퇴’ 가능성까지 시사했고, 문 후보 측은 “여론조사 중 ‘지지 후보 없음’을 유효 투표로 보지 않는다”는 결정이 “룰 변경이 아니라 룰 해석”이라고 맞대응했다.
박지원 후보는 전당대회 당일 마지막 연설에서 “특검 때문에 DJ가 투석을 시작했고 나도 감옥에서 13번 수술을 받아 눈이 이렇게 됐다”고 친노 진영을 향해 비수를 꽂았다. 물론 박 후보가 패배하긴 했지만 결과만 보면 나름 선전, 예상보다 근소한 3.5%포인트 차이로 문 후보가 신승했다. 이러한 결과는 아무리 강력한 대권 주자라 할지라도 여전히 친노 주자로서 호남과 동교동계의 지지 없이는 대권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했다.
그리고 4·29 재보궐 선거 기간에 접어들면서 그 갈등은 또다시 반복됐다. 동교동계 인사들 50여명이 3월 31일 국립서울현충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이번 재보선 지원에 나서면 안 된다”는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그러자 문재인 대표가 4월 5일 동교동계 원로들을 만나기로 했다가, 돌연 만남이 취소되면서 재보궐 전패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했으나, 그날 저녁 문 대표가 박지원 의원을 직접 찾아 재보선 유세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고, 박 의원은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간신히 봉합됐다. 물론 그 이후에도 추미애 의원이 권노갑 고문의 지분 발언에 대해 비난한 것에 대해 권 고문과 이훈평 전 의원이 공식해명을 요구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양측 갈등의 큰 불길은 일단 잡힌 상태다.
이로써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무소속 천정배 전 장관과 국민모임 간판으로 관악을에 출마한 정동영 전 장관은 호남 민심을 얻기 어려워졌다. 내심 동교동계와 친노 간의 갈등을 기대했던 두 후보 입장에서는 아쉬운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이 있었던 시기의 호남에서의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어땠었는지 살펴보자.
동교동계와 친노 간의 갈등이 심화됐던 4월 1일(3월 31일 동교동계는 화요모임에서 재보궐 지원 여부에 대해 ‘지원반대’에 만장일치로 손을 들어 불가 입장을 표명, 그 뒤 여론 반영 조사) 리얼미터 일간조사에서 호남 지역의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36.9%였고,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파 층은 38.5%로 무당파가 오차범위 내인 1.6%포인트 더 높았다. 천정배 전 장관은 반색하고, 조영택 후보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양측 갈등의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힌 4월 7일 조사에서는 새정치연합의 호남 지지율이 49.9%로, 무당파층 29.6%보다 20.3%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치연합 입장에서는 집나간 호남민심이 동교동 어른들과 다시 들어온 격이다. 0 대 4 전패 가능성에서 2 대 2, 혹은 3대 1로 무승부 내지 승리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는 동교동계가 호남민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노갑 전 고문 등이 문재인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며 재보궐 지원 여부에 대한 일종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게 되면서, 호남민심도 ‘호남이 아니면 문재인은 힘들다’는 인식을 재확인시킨 것에 일단은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 긍정적 해석이 새정치연합 후보들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양측 갈등이 봉합되기 전인 4월 초에 조사된 CBS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은 네 지역 모두에서 열세를 보이던 상황(여론조사 표 참조)이었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이 봉합된 이후에 조사된 결과를 보면 위에서 언급한 최근 호남 지지율과 마찬가지로, 새정치연합 소속 후보들이 초반 열세에서 회복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럼으로써 새정치연합은 전패의 그림자에서는 일단 차츰 벗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며칠 안남은 4월 29일은 노무현의 사람이었던 문재인과 정동영, 천정배 중의 최소 한 사람 이상을 정치권에서 물러나게 할 운명의 날이다. 그게 한 사람이 될지, 아니면 두 사람이 될지는 지금 상황에서 예측은 어려우나, 그게 누가 될지를 결정하는 변수는 바로 호남민심이다.
문재인 대표가 만일 광주 서구을에서 1석을 지켜내고, 나머지 다른 지역에서 최소 1석 이상, 혹은 2석을 얻을 경우에는 문 대표는 대선 1위 주자에서 문재인 대세론의 길로 갈 것이고, 반면에 1석이나 0패로 귀결될 경우 1위 자리가 위태로워지거나 정치권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정동영 후보 역시 승리할 경우 다시 유력 야권 주자로서 기지개를 펴겠으나, 본인이 낙선하고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거나 혹은 3위에 그치고 새누리당, 혹은 새정치연합 후보가 당선될 경우, 모든 비난의 블랙홀이 돼서 정치권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정배 후보 역시 무소속으로 당선될 경우 목포의 아들에서 호남의 아들로서 자리매김하며 대선주자로서 급부상하겠지만, 패배할 경우 그 역시 당분간 정치권에서 그를 찾는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4·29 재보궐 선거는 향후 총선과 대선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어느 때보다 호남민심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호남은 민도가 높고 미세한 정치 현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동교동계와 문재인 대표 간의 재보궐 지원 논란 이후 그 갈등이 봉합되면서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에 미세한 요동이 있었다는 것은 향후 호남민심과 문재인 대표 간의 관계 설정에 중요한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