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동교동계 인사들이 4월 7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이날 권 상임고문은 4·29 재보선에서 문재인 대표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매주 화요일 조용히 치러지던 동교동계의 김 전 대통령 묘소 4월 7일 참배 모임은 그 어느 때보다 북적였다. 권 고문이 이날 모임에서 문재인 당 대표에 대한 4·29 재·보궐 선거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존 동교동계 인사들은 물론 국회 출입기자들까지 당 버스를 대절해 대거 몰려든 것이다. 이희호 여사가 묘소에 도착하는 동안 동교동계 인사들은 옛 동지들과 인사를 나누며 오랜만에 활기에 찬 모습이었다.
일명 ‘화요 참배 모임’으로 불리는 동교동계의 DJ 묘소 참배는 지난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부터 시작됐다. 이희호 여사와 가족들이 매주 화요일 DJ묘소를 찾는 자리에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상임고문과 전직 의원들이 동참하며 소문이 퍼지자 전국의 동교동계 인사들까지 모임에 참여해 정례 모임이 됐다. 이희호 여사는 5년여의 기간 동안 감기로 인한 불참을 제외하고 꾸준히 참배 모임에 참여했고 동교동계 인사들도 참배 모임 참여를 위해 KTX를 타고 올라오는 등 묘소 참배에 정성을 들여왔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참배 일정 후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형님, 아우’의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동교동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 재·보궐 선거에 ‘구원투수’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화요 모임의 존재감도 급부상했다. 이날의 관심사는 동교동계 큰형님인 권노갑 고문의 ‘입’이었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선거의 판도를 결정하게 되면서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동교동계의 결정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DJ 묘소 앞에 모인 기자들과 동교동계 인사들도 권 고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희호 여사가 참배 후 빠르게 자리를 빠져나가자 그를 따라 묘소 아래로 내려갔던 주변인들 사이에서는 “이희호 여사가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탄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 여사가 떠난 후 권 고문의 입이 열렸다. 권 고문은 “동교동계의 의견이 거의 모아졌다.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당을 도와주자는 뜻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호남 홀대론에 대해서는 “그런 것은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고 모든 계파 초월해서 서로 배려하고 당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화합하자고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간 의견을 본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권 고문은 “조용한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해 논의한 후 입장을 발표하겠다”며 묘소를 떠났다. 그를 따라 동교동계 인사들도 점심식사 자리로 향했다. 식사 장소는 물론 대화 내용까지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문 대표를 도울지의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만큼 당시 상황에는 동교동의 내부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기자는 해당 자리에 참석한 한 동교동계 인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문재인 대표
해당 자리 분위기를 전한 동교동계 인사는 “당 소속이니 도와야 한다는 데 나도 의견이 같다. 내부에는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권 고문이 참석자들에게 의사를 물었지만 시끄러워질 것 같아 (측근이) 질문할 것이 없다고 먼저 말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다시 전직 의원들끼리 모여 의견 조율해서 공식 발표하겠다고 공지하고 자리가 끝났다”고 설명했다.
사실 지난 주 화요모임 당시 관악을 지원에 대해 동교동계가 반대 의견을 결정했던 터라 이번 모임에서는 격론이 예상됐다. 하지만 정작 점심 식사 자리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끝났다고 한다. 내부에 강하게 반대하는 인사들이 여전히 많이 있긴 했지만 권 고문을 비롯한 ‘고참’들이 ‘이의 제기’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결국 문 대표를 돕는 쪽으로 서둘러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대표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고 여전히 미운털로 볼 게 아니라 향후 동교동계의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협조 모양새를 취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반영된 결과다. 이 때문에 동교동계가 6대 4 지분 논란 등 문 대표와 ‘정치적 거래’를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하루 만에 의견 조율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정작 동교동계 내부에서는 친노 세력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앞서의 한 동교동계 인사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동교동과 민주당 인사들을 털어내는 작업을 했다. 17대 국회에서부터 친노가 당을 꿰차면서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며 “지난주는 우리가 반대를 하고 이번 주는 ‘선당후사’로 의견을 모았는데 전체적으로 동교동계가 나서서 도와줄 형편도 아니고 권 고문과 박 의원 둘이 알아서 도울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 대표를 돕는 일에 대해 그는 “우리에게 득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로는 화합 하겠다 하는데 나중에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며 강한 불신을 보였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난 형제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았지만 언제 또 팽 당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호남 민심과도 맞물린다. 해당 인사는 동교동의 호남 대표성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옛날보다 호남 대표성이 많이 희석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친노가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갑자기 동교동계에 손을 내미는 것은 그동안 당에서 호남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김대중 정부 지나고 노무현 정부가 정권 잡자마자 (호남을 홀대해) 일부 호남인들의 마음이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그들에게 DJ정부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인 것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