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의 비사를 모아 엮은 책 <더 레지던스>.
브라워가 인터뷰한 백악관 직원들은 집사를 비롯해 가정부, 요리사, 플로리스트, 도어맨 등 다양했다. 또한 로라 부시, 바바라 부시, 로잘린 카터 등 영부인들과 대통령 자녀들과의 인터뷰도 싣고 있다. 대통령 내외를 옆에서 지켜본 직원들이 지하 주방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면서 공유했던 ‘비밀’들을 다룬 이 책은 사실 대통령의 사생활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백악관 직원들의 일상(가령 가정부와 엔지니어의 러브 스토리)을 함께 다루면서 백악관에서의 생활 전반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6층 건물인 백악관에는 132개의 방과 35개의 욕실이 있다. 방대한 규모이긴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 모두 그렇듯 사실 완벽한 비밀이란 있을 수가 없다. 더욱이 부부 싸움이 잦은 경우라면 큰소리가 방문 밖으로 더 많이 새나갈 터. 바로 빌 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그러했다. 클린턴 부부는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지자 심각한 부부 싸움을 벌였으며, 힐러리는 스캔들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 분노와 우울증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브라워는 책에서 “클린턴 부부는 때때로 심하게 싸웠다. 상대에게 심한 저주의 말을 퍼부어서 백악관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때로는 바위처럼 무거운 침묵 기간을 갖기도 했다”라고 적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전 국무장관.
그런가 하면 백악관의 플로리스트였던 론 페인은 복도에서 클린턴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페인은 “갑자기 힐러리가 ‘이 망할 놈’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무거운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 후 직원들 사이에서는 힐러리가 램프를 집어 던졌다는 소문이 돌았다”라고 말했다.
1998년 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클린턴은 서너 달 동안 2층 침실 옆에 붙어 있는 서재 소파에서 잠을 자야 했었다. 브라워는 “대부분의 백악관 여직원들은 클린턴이 그래도 싸다고 생각했다”라고 적었다.
백악관 침구 담당 직원은 어느 날 침대 시트를 교체하러 방에 들어갔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클린턴 부부의 침대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클린턴은 “한밤중에 화장실로 달려가다가 다쳤다”라고 공식 해명했지만 백악관 직원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한 직원은 “우리들은 힐리러가 책으로 클린턴의 머리를 내리쳤던 것이라고 확신했다. 침대 협탁에는 성경을 포함해 두꺼운 책이 스무 권은 넘게 있었다”라고 말했다.
‘르윈스키 스캔들’과 관련해서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백악관 직원들이 스캔들이 터지기 전부터 이미 둘 사이의 묘한 관계를 눈치 채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캔들이 터진 것은 1998년 1월이었지만 백악관 직원들은 이미 1995년부터 낌새를 채고 있었다.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백악관 곳곳에서 시시덕거리는 것을 목격했던 직원들은 때문에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브라워는 “집사들은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가족용 극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둘이 지나치게 자주 만나기 시작하자 언제 르윈스키를 목격했는지에 대해 서로 알려주기 시작했다”라고 적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민망한 기억을 떠올렸다. 백악관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케네디는 재클린이 집을 비울 때면 백악관 수영장에서 종종 내연녀들과 누드 파티를 즐겼다. 이 여성들 가운데는 백악관에서 일하고 있는 비서들도 여럿 있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영부인 재클린이 집을 비울 때면 백악관 수영장에서 종종 내연녀들과 누드파티를 즐겼다고 백악관 전직 직원들이 증언했다. AP/연합뉴스
브라워는 “한 직원은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충격을 받고 나왔다. 케네디의 고문이자 가까운 친구인 데이브 파워가 케네디의 여비서 두 명과 함께 알몸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니 재클린이 백악관을 비울 때면 직원들은 일부러 백악관 2층을 피해 다녔다. 언제 알몸 여성들과 마주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의지조차 소용이 없을 때도 있었다. 한 직원은 가스불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주방으로 가던 중 알몸의 여성이 주방에서 나오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기도 했다.
케네디에 대한 직원들의 기억이 다 추잡한 것은 아니었다. 1963년 케네디 부부가 생후 이틀밖에 안 된 아들 패트릭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자 직원들은 재클린이 병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아기방의 카페트, 요람, 커튼 등을 치우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대통령 부부가 백악관으로 돌아왔을 때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별난 집착 때문에 백악관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 뜨거운 고압력 스팀 샤워를 즐겼던 존슨은 특수 제작한 샤워기로 씻는 것을 고집했다.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집착은 직원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다. 백악관에 들어오기 전에 사용하고 있던 샤워기와 똑같은 샤워기를 제작하는 것부터가 힘든 일이었다. 이 샤워기는 바늘처럼 가느다란 여러 개의 구멍이 촘촘하게 나있었으며, 압력이 센 데다 여러 방향으로 물줄기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었다. 어떤 구멍 하나는 정확히 존슨의 페니스를 향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구멍 하나는 엉덩이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샤워기를 새로 설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샤워기를 대통령의 취향에 맞게 제작하려면 우선 배관과 펌프를 완전히 새로 설치해야 했다. 수만 달러의 비용이 드는 대공사였다. 결국 이 비용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경호 예산에서 책정되었다.
존슨의 재임 기간이었던 5년 동안 백악관 직원들은 모두 다섯 개의 샤워기를 교체해야 했다. 심지어 압력을 높이기 위해서 분당 수백 갤런의 물을 퍼붓는 특수 물탱크를 설치했다. 이는 소방 호스보다도 압력이 센 것이었다. 그럼에도 존슨은 만족하지 못했다. 5년 동안 완벽한 샤워기를 제작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배관 담당 직원인 레즈 애링턴은 결국 과도한 스트레스 탓에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렀으며, 급기야 신경쇠약에 걸려 며칠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직원들의 이런 고충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존슨은 때때로 알몸인 상태로 직원들 앞에서 샤워기를 점검하곤 했으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즐긴 탓에 주기적으로 화재 경보가 울리곤 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부의 관계는 다소 흥미로웠다. 백악관 안내 담당이었던 넬슨 피어스는 어느 날 대통령 부부의 방을 찾았다가 충격을 받았다. 방문 밖으로 낸시 레이건이 남편을 향해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낸시는 레이건이 TV를 켜놓은 채 잠들었다며 호되게 야단치고 있었으며, 이런 낸시에게 레이건은 “여보, 그냥 뉴스를 보고 있었던 것뿐이야”라고 말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부부.
낸시는 지난 반세기를 통틀어 백악관 직원들을 가장 엄하게 다루었던 영부인이었다. 아주 작은 일까지 꼼꼼하게 챙길 정도로 엄격하고 냉정했다. 패스트리 총주방장이었던 로널드 메스니어는 국빈 만찬을 준비하던 중에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메스니어가 여러 가지 디저트 후보들을 낸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대통령 부부를 찾았을 때 대통령 부부는 마침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낸시는 이미 세 차례에 걸쳐 메스니어의 디저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거절했었다. 그러자 레이건이 말했다. “여보, 주방장이 하자는 대로 합시다. 그 디저트 아주 괜찮던데. 그걸로 해요.” 하지만 낸시의 반응은 싸늘했다. 낸시는 “여보, 그냥 드시던 수프나 드세요.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라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레이건은 접시로 눈을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수프 접시를 비웠다. 마침내 낸시가 디저트를 결정했지만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촉박한 시간이 문제였다. 메스니어가 “이틀밖에 시간이 없다”고 말하자 낸시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찬까지는 아직 두 번의 낮과 두 번의 밤이 남아 있잖아요.”
엄했던 낸시와 달리 레이건은 늘 다정했으며, 직원들과도 자주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때로는 직원들을 붙잡고 너무 수다를 떨었던 탓에 멀리서 레이건을 보면 몰래 도망치는 직원들도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세 아들은 마리화나 골초들이었다. 때문에 방 안은 늘 마리화나 연기로 자욱했으며, 백악관 직원들은 방에서 마리화나를 치우느라 바빴다.
또한 백악관 플로리스트 론 페인은 재임에 실패했던 카터가 매우 슬퍼했다고 전하면서 “카터 가족은 낙선 후 2주 동안 매일 흐느껴 울었다. 얼마나 심하게 울었는지 2층에 올라갈 때마다 울음소리가 들렸다”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백악관에 들어온 후 얼마 동안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시중 받는 것을 불편해 했다. 때문에 오바마 부부와 직원들 사이에는 어색함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분위기는 변해갔다. 적어도 인종적인 동질감을 통해서 직원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집사인 제임스 제프리스는 “오바마 부부와 흑인 직원들 간에는 암묵적인 이해와 존경심이 형성됐다”라고 말했다.
또한 안내 담당인 워싱턴 화이트는 대통령 부부가 흑인 알앤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백악관에서 흑인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2009년 1월 취임식 파티를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온 부부는 편한 추리닝 차림으로 메리 제이 블라이즈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오바마는 “내가 해냈어, 해냈다고. 지금 우리는 백악관에 들어와 있어”라고 말하면서 춤을 추었다.
이와 관련, 책에는 부시가 직원들에게 얼마나 관대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되어 있다. 한 번은 호스 슈즈 놀이를 하던 부시가 직원의 실수로 살충제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직원 한 명이 실수로 강력한 성분의 살충제를 대통령을 향해 뿌렸던 것이다. 부시의 얼굴은 벌겋게 변했으며, 신속히 샤워를 해서 살충제 성분을 씻어내야 했다. 위험한 상황이 지나자 부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말했다. “자, 이제 다시 호스 슈즈 경기를 하러 가볼까.”
당시 이 일로 일자리를 잃은 직원은 아무도 없었으며, 또한 징계를 받은 직원도 없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힐러리의 미셸 따라잡기 차도녀서 따도녀로 변신중 2016년 대권 야망을 품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미셸 오바마 따라잡기에 나섰다는 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셸의 ‘평범한 미국인 여성’ 이미지를 벤치마킹해 자신의 강인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부드럽고 친근하게 바꾸겠다는 것이다. 가령 편한 차림으로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TV에 출연해 코믹 댄스를 추거나, 트위터 계정으로 국민들과 소통하거나, 패션지 표지를 장식했던 미셸의 일련의 행동들은 모두 셰이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미셸은 미국인들에게 ‘친근하고 평범한 아줌마’로 각인 될 수 있었고, 이런 이미지는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셰이크의 이런 마법이 힐러리에게도 필요하다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상태. 이와 관련, 지난 2008년 경선에서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패했던 이유가 강인하고 너무 유식한 이미지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서는 힐러리가 자신이 ‘충분히 호감이 가는 인물 그 이상’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면서 따뜻하고 유쾌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국무장관 시절 사용했던 개인 이메일 계정과 PC 서버 문제가 이런 이미지 쇄신 노력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한 유권자들이 과연 클린턴 부부를 ‘평범한 미국인’으로 여길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재산 문제가 그렇다. 클린턴 부부는 2000년 백악관에서 나온 후부터 지금까지 1억 달러(약 1000억 원)가 넘는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워싱턴, 차파콰, 뉴욕 등지에 집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부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전히 한 번 강연회를 열 때마다 20만 달러(약 2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서민과 동떨어진 이미지를 타파할 묘수는 어쩌면 ‘취미’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가령 수영을 좋아하는 클린턴의 열정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수영 자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이미지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