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법사위 간사(가운데)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참여정부 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두 차례 특별사면 의혹 제기에 대해 “특사 절차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물타기”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구나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정권 때 경남기업을 인수한 데다 특사도 2번이나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가 야권 인사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불법자금을 건넸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수사 여부에 따라 야권도 피바람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야권은 청와대에 대한 비난성 공격만 해댈 뿐 이렇다 할 대응책이나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할 경우 ‘줄줄이 사탕’으로 검찰 문을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특검을 수용할 경우 여권의 물타기 전략에 말려들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면서 야권은 일단 관망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권력형 비리 정국으로 가는 듯했던 ‘성완종 게이트’가 예측불허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 9일 자살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지’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친박 실세들에 대한 불법자금 수수 여부가 성완종 게이트의 1차 서막이었다면 2차 드라마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성 전 회장의 불법 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정치인들이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야권의 경우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을 연일 규탄하며 고고한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에 성완종의 유탄이 자신들에게로 튈 경우 그 후유증은 여권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야권의 우려는 결국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 발화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다음날인 4월 17일 정치권에 퍼진 성완종 전 회장의 또 다른 로비장부 존재 여부였다.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그 로비 장부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게 불법자금을 제공한 내역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알려진 내용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에게도 금품을 준 내역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져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졌다”라는 대목이 새정치연합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있다. 거명된 의원들은 대부분 ‘사실무근’이라며 극력 부인하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하지만 이미 이 리스트는 SNS 등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면서 야권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야권 인사들에 대한 불법자금 수수 정황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검찰이 확보한 로비 장부에는 성 전 회장이 경남기업 회장과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해당 정치인에게 언제, 어디에서, 얼마를 무슨 명목으로 줬는지 등 구체적인 로비 내역이 담겨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자금전달 내역을 담은 ‘성완종 장부’는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장부 형태로 일일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최측근에게 로비를 한 정치인들과 관련된 자료를 구두 혹은 서면이나 메모 형태로 급히 만들어 넘겼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권이 검찰의 수사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정치권 인사들이 명백하게 불법자금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일어났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검찰 수사가 불법 정치 후원금까지 확대될 경우 야권도 초비상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실제로 성 전 회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친분이 있거나 회사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고액의 정치후원금을 차명으로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충남 공주 출신인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성 전 회장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2013년 8월께 성 전 회장이 전화를 걸어와 “후원자 두 명을 소개했으니 그렇게 알라”고 했고 이후 다른 사람 명의로 각각 300만 원, 200만 원이 입금됐다고 박 의원은 전했다. 일종의 차명 후원금이라는 것이다. 이완구 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다른 의원들은 (성 전 회장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고 밝혀 성 전 회장의 후원금 대상이 한두 명이 아님을 시사했다. 정치자금법상 국회의원에게 차명 후원금 제공은 불법이며 어기게 되면 2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 법에는 차명 후원금 수수자에 대한 별도의 처벌 조항은 없다. 제공된 후원금에 대가성이 있다면 받은 사람도 처벌할 수 있다. 성 전 회장이 의원에게 청탁하며 후원금을 낸 것이라면 수사 대상이라는 얘기다.
현재 일부 의원들이 성 전 회장의 차명 후원금을 받았다고 인정하고 있어 검찰이 수사 자체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성 전 회장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야권 인사나 의원들도 줄줄이 수사 선상에 오른다. 앞서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는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이달 13일 수사 착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성 전 회장의) 메모지 리스트에 없다고 해서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며 수사가 불법 정치자금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검찰 수사가 불법자금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들도 ‘모르게’ 들어올 수 있는 차명 후원금에게로까지 확대될 경우 야권도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성 전 회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원금을 통해 꾸준히 인맥을 관리해 왔고 ‘보험금’ 성격으로 출판기념회에서 거액의 출판 후원금을 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걸려드는 야권 인사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성 전 회장 성향상 현재의 야당에도 필히 입질을 했을 것이다. 특히 권력실세였거나 충청지역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느냐. 틀림없이 검찰은 그들을 수사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 일각의 특검 요구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왜 우리가 특검 요구를 안 하는 줄 아느냐. 특검으로 가면 반드시 여야 물타기로 간다. 노무현 정권 때 특사나 경남기업 인수 등이 다시 불거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완종 게이트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또한 야권에서는 이번에 야권인사도 포함된 성완종 리스트 등이 흘러나온 배경을 ‘선거용’으로 보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이 문제가 선거에는 작용할 수 있어도, 그게 끝나면 유야무야될 수도 있다. 일부 보수언론 쪽에서도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더라. 선거가 끝나면 현 정권도 꼬리 자르기 식으로 타협점을 찾아나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비자금 수사로 촉발된 당시의 대선자금 수사는 안대희 중수부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의 ‘의지’와 노무현 정권의 ‘검찰 독립’ 의지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친노그룹들도 대거 구속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견제’와 ‘복수’라는 해석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성완종 게이트와 그에 따른 대선자금 수사 여부는 당시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현 정권은 집권하면서 검찰에 대한 강력한 친정체제 구축이 첫 번째 핵심 사안이었다고 할 만큼 검찰에 대한 컨트롤을 중요시했다. 검찰이 이번 성완종 게이트에 대해 정무적인 ‘마사지’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검찰 특유의 ‘균형 맞추기’도 정치 비자금 수사에서 중요한 관행으로 꼽힌다.
청와대의 검찰에 대한 정무적 컨트롤 시각에서 보면 성완종 게이트 수사가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처럼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의 ‘균형 맞추기’ 측면에서 볼 때 야권 인사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1차 드라마가 친박 실세들의 비리에 의한 박근혜 정권의 수세국면이었다면, 2차 드라마는 야권을 포함한 정치판 전체를 진흙탕으로 몰고 가는, 본격적인 물타기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