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4개국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현지시간) 첫 순방국인 콜롬비아 보고타 엘도라도 국제공항 군항공수송사령부에 도착, 올긴 외교부 장관 등 콜롬비아 측 환영인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공항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 운영의 투톱이라고 할 수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리스트’에 오르면서 ‘식물 국정’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터다. 여기에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물론 그간 새누리당내 친박(친박근혜)계 실세로 통했던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홍문종 의원 등이 모두 ‘성완종 리스트’의 대상자로 지목되면서 박근혜 정부 출범의 정당성까지 흔들리고 있다.
청와대가 ‘성완종 정국’의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출국을 해버려 여권의 컨트롤 타워는 사실상 그 전원이 꺼진 셈이다. 그동안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집중돼 왔던 각종 의혹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있는 상황인 데다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병기 비서실장과 관련해 “얘기하면 그 사람이 물러날 텐데…”라고 발언하는 등 청와대 핵심인사들에 대한 예상치 못한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고민은 더욱 깊어 보인다.
이로 인해 청와대는 최근 각종 의혹에 대해 언급을 자제한 채 ‘침묵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검찰 등의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것은 없이 계속 의혹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청와대에서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 15일 오후 베일에 가려졌던 성 전 회장의 인터뷰 전문이 공개됐지만 추가적인 폭로는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청와대로선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왼쪽부터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비서실장.
이 비서실장은 성 전 회장이 숨진 다음날인 10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최근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수사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을 때쯤 구명을 요청하는 성 전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며 “(성 전 회장에게) 결백하고 오해가 있다면 검찰 수사에 당당하게 임해 사실을 명백하게 밝히는 게 좋겠다.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성 전 회장에게) 앞으로 연락을 취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비서실장은 성 전 회장의 메모에 이름이 언급된 데 대해선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에 대해 섭섭함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상황 반전의 계기를 잡은 청와대는 현 상황에 대한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의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나올 것은 없는 것 같다”며 “이제 이번 상황의 반전을 꾀하고, 국정운영의 동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세월호 같은 참극도 문제가 쌓이고 쌓인 부정부패와 비리, 적당히 봐주기로 인해 빚어진 것 아니겠느냐”며 “부정부패와 적폐는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그런 문제로,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았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번 수사과정에서도 최근에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 문제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한번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특정하진 않았다. 다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고 언급한 것은 참여정부 당시 성 전 회장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특별사면을 받는 등 야권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방문한 데 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전격 회동을 갖고 현 정권과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커지고 있는 비판적 여론을 일단 차단하는 한편, 성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총리를 제외하고 김 대표와 만나면서 이 총리의 자진사퇴를 우회적으로 유도하는 포석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정면돌파’ 시도가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예정됐던 해외 순방 출국 시간까지 미루고 찾았던 진도 팽목항에선 유족들과 만남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빛이 바랜 데다 김 대표와의 전격적인 독대에서도 뚜렷한 해답은 없이 김 대표로부터 이 총리의 금품 수수 의혹 등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관한 당내 의견을 전해 듣고 “잘 알겠다. (중남미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답만 내놓으면서 ‘성과 없는 독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특히 금품 수수 의혹에 더해 거짓말 해명 논란이 일고 있는 이완구 총리에 대한 사퇴론이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아무런 조치 없이 해외순방을 떠난 것은 “무책임하다”는 정치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박근혜 정부의 실세들이 연루된 데 대해 아직까지 사과 한 마디 없는 것도 비판받을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김 대표를 만난 것은 이 총리 거취와 관련한 ‘조치를 위한 협의’의 성격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아무런 결론이 없었던 것은 독대에 대한 주목도에 비하면 빈 수레만 요란했던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내에서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할 것이면 다녀와서 만나도 되는데, 왜 만나자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내 의총 소집 요구에 “대통령이 저렇게 말씀하시면 의총을 지금 당장 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한 것도 박 대통령의 대응에 대한 불만이 섞여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다만 또 다른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일단 박 대통령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한 것은 이 총리에게 ‘시한부’라는 꼬리표를 달아준 것 아니겠느냐”며 “다만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달린 이 총리가 쉽게 물러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12일간의 해외 순방기간 동안 어떤 해법을 갖고 돌아올지 주목된다.
박현경 언론인
이완구 거취 어떻게 될까 27일까지 ‘숙제’ 못풀면 아웃?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만나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와 관련해 ‘해외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언급을 내놓으면서 이 총리의 거취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16일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나기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전격적으로 40분간 독대한 자리에서 이 총리의 거취문제 등을 논의하고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의 언급은 여야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 총리 경질론’을 일단 진정시키는 한편, 자신의 결단 시점을 순방 이후로 유예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박 대통령은 김 대표가 이 총리의 사퇴 필요성에 대한 당내 여론을 전달하자 “검찰에서 수사를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결국 박 대통령은 ‘선 검찰수사, 후 책임론’에 방점을 두고 있는 분위기로 읽힌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자신이 27일까지 해외순방을 나서는 데다 지난 15일 국제회의 참석차 출국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22일 출국할 예정이어서 국정의 2인자인 총리직마저 궐위가 발생할 경우엔 ‘국정공백’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김 대표와의 독대에서 이 총리 사퇴론을 곧바로 내치지 않고 수용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순방 기간 진행될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자진사퇴를 유도하거나 경질하는 등 중대결단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이 총리가 박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오는 27일까지 검찰수사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소하거나 악화된 여론을 돌리는 반전 카드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시한부 총리’의 운명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단 박 대통령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이 총리는 ‘시한부’라는 의미와 함께 순방에서 돌아올 때까진 ‘기다려 달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현 상황에서 이 총리를 경질하게 될 경우, 후임 총리를 인선하는 작업이 난제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결단이 쉽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안대희 전 대법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등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검증 과정에서 각종 의혹에 휩싸이며 낙마한 바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 총리를 둘러싼 의혹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총리가 자진사퇴하거나 이 총리를 경질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총리가 물러나더라도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대로 된 후임을 정하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라면서 당분간 이 총리의 유임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박] |